은퇴는 가능한 늦게, 평생 현역으로 사는 게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은퇴해야 하고, 일찍 은퇴하는 게 좋은 분야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자녀 문제다. 무한한 사랑의 대상인 자녀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녀는 노후 설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요, 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사교육비 부담이 상당히 크다. 남들만큼 공부시킨다는 생각으로 따라가다 보면 웬만한 사람은 노후를 위해 저축할 여력이 없게 된다. 또한, 결혼하는 연령이 점점 높아지면서 늦게까지 부모님과 함께 하며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대부분 자녀 대학 졸업과 결혼까지는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교육과 양육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그 기간이 길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은퇴설계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자녀와 돈의 지원 규모·시기 미리 의논해야
그렇다면 자녀에게서 은퇴해서 합리적인 노후설계를 하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자녀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줄여서 은퇴 준비 자금을 확보하는 게 첫 번째일 것이다. 개인과 가정 차원에서 분명한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사교육비는 적정한 범위를 정해놓고 그것을 넘어서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결혼 비용도 마찬가지다.


자녀와 함께 가계의 재정 상황, 부모의 노후 목표, 여기에 따른 돈의 운용계획을 밝히고 지원해줄 수 있는 규모와 시기에 대해 미리 의논하는 게 현명하다. 이것은 무책임하거나 자녀를 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두 손 들고 일방적인 포기 선언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자산을 연금화 하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장 목돈으로 만들 수 있는 재산을 연금 형태로 조금씩 천천히 나올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면 자녀가 막연히 기대하는 부분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일찍부터 자녀에게 경제적인 자립심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교육을 하면 된다. 부모가 어느 날 돌변해서 태도를 바꾸는 건 좋지 않다. 따라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립의 가치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교육하는 게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재산을 꼭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현실을 따지자면 높은 교육비와 결혼비용으로 사전 상속을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자녀 역시 내 부모님의 은퇴설계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스테판 폴란의 ‘다 쓰고 죽어라’라는 책이 있다. 이 제목처럼 하나도 남길 것 없이 가치 있게 다 쓰시길 권한다. 그 대신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지혜와 가치, 숭고한 인격을 남겨주면 어떨까.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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