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m Sixty-Four”라는 비틀즈의 유명한 노래가 있다. “먼 훗날 내가 늙어서 머리가 다 빠져도, 내게 발렌타인 초콜릿, 생일상과 술을 주겠소?” 등과 같은 가사다. 폴 매카트니가 곡을 썼고 1967년 노래다. 20대의 매카트니에게는 64세 정도면 굉장한 노인으로 느껴졌나 보다. 물론 지금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나 대중매체는 이런 편견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나이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 없이 적극적으로 삶에 도전하고 삶을 누리는 게 공통점이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지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분들에게 큰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부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통합해나가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분들은 또래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귀감이 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지적으로 나이 들기’는 교육기관을 통한 교육,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심층적이거나 광범위한 독서, 강의나 토론, 집필 등에 즐거움과 열정을 느끼고 노년의 삶을 이런 지적 활동으로 채우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일본의 존경 받는 인문학자 와타나베 쇼이치는 여든이 넘는 나이에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이라는 책을 집필해서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 품격 있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 인생 후반기를 멋지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이런 지적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적으로 나이 들기를 꼭 학문적으로 나이 들기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학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평생 일하다 은퇴 후에 지적인 세계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뜻밖에 많이 있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주변 도서관을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지성의 현장에 한발 가까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정신적인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식처럼 알고 있다. 적당한 지적 긴장감은 오히려 삶을 여유롭게 해준다.


공부하는 노년이 품격이 있고 건강하고 멋있다. 열정적인 젊음도 찾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와타나베 쇼이치는 “여생은 지적 깨우침으로 완성된다. 장년에 배우면 노년에 쇠하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발은 공부나 지적인 삶을 특정 사람만 하는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 심어준 편견일 수 있다. 공부를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점점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관련된 기관이나 프로그램도 더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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