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남성을 풍자한 말들이 많다. 매일 세 끼 다 찾아 먹는다고 해서 ‘삼식이’나 ‘남편 세끼’가 있다. 반면에 집에서 한 끼도 안 먹고 밖에서만 식사하시는 ‘영식님’은 인기라고 한다. 아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고 해서 ‘젖은 낙엽’도 있다.

 

대개는 은퇴 남성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지만, 남편을 돌보아야 하는 아내의 입장을 반영하기도 했다. 어쨌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말이다. 준비 안 된 은퇴의 결과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은퇴한 남성들은 사업이나 직장생활, 조직관계 등은 이미 익숙하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이나 업무에 적응할 때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고 아내와 함께 하루 내내 생활하는 것엔 익숙하지 않다. 이건 은퇴한 남편과 함께 생활하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기 쉽다.


실제로 상담을 해보면 은퇴 후 어려움 중에서 가장 빈번한 것이 부부 간 갈등이다. 이 부분은 경제적인 준비가 잘 됐든 안 됐든 공통적이다.


은퇴한 남성들은 대개 평생을 일이나 회사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것을 내려놓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심각한 부적응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여유나 휴식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다. 그 대신 무료함과 허탈함, 우울함 등이 찾아오곤 하는 것이다. 남성적 조직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수직적 상하관계, 지시와 복종이 중심이다. 그래서 은퇴한 남성의 상당수는 권위주의적인 인간관계에 길들어져 있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군림하고 소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은퇴 전에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숨어 있다가 은퇴 후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가족 특히 아내와 마찰을 일으킬 때가 많다.


학자들이 아담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남성들은 노화가 진행되면서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는데 그러면 마음이 섬세해져서 사소한 데 잘 토라지고 잔소리도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 노화는 은퇴와 함께 빠르게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할 일이 끝났다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순간 신체적으로도 급속도로 늙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상실감이 크다. 은퇴는 기존의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면 수입도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누리던 지위, 권위, 명예 같은 것에서도 물러나야 한다. 이제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게 된다.

 

노화에 따른 변화와 상실감, 변화 부적응 등이 합쳐지면 이른바 ‘은퇴 증후군’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은퇴 증후군을 이겨내고, 준비 안 된 은퇴자를 일컫는 말들이 추억 속의 유머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그러려면 은퇴 후의 가족 관계, 특히 부부 관계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하고, 훈련도 필요하다.


▶다음 호에는 ‘은퇴 증후군을 이겨내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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