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부족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더 나은 원자력발전기술에 투자해왔다. 미국, 한국, 프랑스, 일본 등 9개국이 창설한 ‘제4세대 원자력시스템 국제포럼(GIF)’은 4세대 원전의 경우 사용한 핵연료를 또다시 활용해 핵폐기물이 거의 발생치 않고 사고시 원전시스템을 곧바로 폐쇄해 안전성을 보장한다고 자부한다. 여전히 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관련기술이 어디까지 진보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세계적으로 150개에 이르는 가동중단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하는 일인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해체 시장 규모를 약 1000조원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도 1978년 첫 선을 보였던 고리1호기가 40여년 만에 가동중지 되면서 원전해체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현재 국내 운영 중인 원전은 24기에 달하며, 1기당 해체비용은 평균 6000억원 정도로 예상한다. 그동안 원전부지선정에 반대했던 지자체들도 앞 다퉈 원전해체센터 유치에 나서고 있다. 원전해체는 경제 규모도 대단하지만 원자력뿐만 아니라 기계, 화학을 비롯한 연관 산업 파급효과도 커 국내에서 원전해체 시장이 제대로 움직일 경우 경제 활성화에도 적잖은 역할이 기대된다.

정부는 고리1호기 해체를 시작으로 해외 원전해체시장에 적극 진출해 2030년 이후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우리는 원전해체 관련 기술도, 경험도 없다. 한국이 보유한 원전해체핵심기술은 21개로 아직 17개 필수 기술이 부족하다.

예산확보도 이슈다. 정부가 예상한 원전 1기당 약 60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999년 산출한 고리1호기 폐로 비용은 9860억원으로 16년이 지난 현재 기준으로만 봐도 1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사용후핵연료 및 중저준위폐기물 처리비용을 더하면 예상 금액은 헐씬 더 늘어날 수 있다.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국내 대기업 건설업체들이 원전해체 시장을 겨냥해 해외 기업들과 기술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 자칫 국내 시장 잠식뿐 아니라 독자 해체기술 자립의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원전 16기를 해체한 경험이 있고 영국, 독일 등도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가 확실한 전략없이 해체를 시작하면 해체기술의 해외수출은 고사하고 국내시장도 지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은 부지선정과 건설과정에서 큰 갈등과 아픔이 수반됐던 뼈아픈 경험들을 갖고 있고, 아직도 고준위방사능폐기물과 관련해 처리방식이나 처리장소 등에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추진 중인 고리1호기 원전해체가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과거의 아픈 경험이 재현돼선 안된다. 정치적 목적으로 지역분열과 갈등을 조장해서도 안되고, 지나친 장밋빛 청사진으로 국민을 호도해서도 안된다. 원전해체 전과정을 투명하게 유지하고, 정확하고 신뢰할 자료들을 근거로 해당지역 주민들을 포함해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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