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는 안 될 근원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

“작품에서 빛은 생명, 생명은 나에게 예술”

 


[환경일보] 송진영 기자 = 가을이 절정을 이루는 11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금빛큐브로 입체적이고 화려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채은미 작가의 17번째 개인전 때문이다.


채 작가는 금과 자개 등 전통적인 소재로 빛을 담아 굴절시키는 독창적인 기법과 금빛큐브(Cube, 입방체)를 반복해서 배치함으로써 특유의 조형성을 보여준다. 금빛큐브 사이의 빈 공간이 반사된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 빛이 가진 무언의 힘이 발현된다.

전시 대표작 ‘Cube TV Table’은 최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시도한다. 물, 빛, 바람, 불, 구름, 나비, 꽃의 영상 위로 금빛 입방체가 수놓아진 형상은 그야말로 빛의 리드미컬한 향연이다. 음악 '라벨의 물의 요정'도 이 향연에 스며들어 함께 춤을 춘다.

 

LG전자의 협찬으로 벽지처럼 얇고 가벼운 월페이퍼TV(Wall Paper TV)를 활용한 영상작품은 보다 선명하고 화려한 가상의 빛을 구현한다. 가상의 빛과 현실의 빛이 만나 마법 같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2012년 전시 이후 3년 만에 국내에서 선보이는 채은미 작가의 개인전에는 대표작 ‘Cube TV Table’ 이외에도 영상작품 6점, 자개에 색을 입힌 항아리 작품 40점, 각도의 변화 시리즈 5점, 총 52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전시는 오는 14일까지 계속된다.


본지는 빛의 연금술사 채은미 작가를 직접 만나 그의 작품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Q. 17번째 개인 전시회다.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A. ‘물, 빛, 불, 구름, 바람’을 표현했다.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리플렉션 매핑(Reflection – Mapping)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영상 작업을 내 시그니처 작업물이라 할 수 있는 금빛큐브와 접목한 새로운 도전이다. 큐브 안에 반사되는 면들에 움직이는 영상이 비추면 어떤 모습일지 굉장히 궁금했다. 오래전부터 가져온 생각을 올해 구현하면서 전시회를 갖게 됐다.

Q. 리플렉션 매핑이란?

A. 평면에서 입체적인 형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매핑이 가미되면서 더욱 4차원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됐다. 쉽게 말하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3D 개념보다 한 차원 발전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LG전자의 최첨단 디스플레이 월페이퍼에 흐르는 영상과 금빛큐브를 접목해 만든 ‘물, 빛, 불, 구름, 바람’

<사진제공=진화랑>


 

“표현에 한계가 없는 것은 굉장한 매리트”


Q. 혁신적인 월페이퍼로 작품을 구현했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A. 입체적인 것이 영상에 들어가게 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조적인 형태 안에 구조적인 흐름이 들어오면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것들을 고심하다가 LG전자 측에 제안하게 된 것이다. LG전자에서 긍정적 검토를 통해 출시 전인 ‘월페이퍼’ 모델을 내 작품에 지원을 해줬다. 월페이퍼 모델은 굉장히 얇아 종이처럼 말리는 디스플레이다. 말 그대로 예술·기술 협업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월페이퍼라는 기술은 굉장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예를 들어 미디어아트 전시 등을 천장에도 설치할 수 있고, 이동이 자유로워져 한계가 없어질 것 같다. 한계가 없어진다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굉장한 매리트다.

 

이번 전시 주요 작품 ‘Cube TV Table’. 채은미 작가는 영상을 접목해 처음 만든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고 전했다.<사진제공=진화랑>


 

Q. 영상 작품이 한 벽면에 커다랗게 전시되면 압도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 중인 것이 있나?

A.
다음에는 그런 작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밖에서도 좋고, 실내에서 어떠한 빛을 받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나 아니면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머무는 호텔과 같은 곳에 전시 설치될 경우 작품을 마주한 모든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금빛큐브 안에 흐르는 영상은 굉장히 환상적인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 같다. 정말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미묘한 차이가 전체를 좌우한다”

Q. 금빛큐브를 작품에 접목시키는 과정은 어땠는지?

A. 13년 이상 큐브 작업을 이끌어 왔다.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고, 금형을 본떠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큐브를 만들 때에도 굴곡이 있는데, 아주 미묘한 차이로 빛의 반사와 형태가 달라진다. 전체적인 느낌이 그 작은 차이 하나로 달라지기 때문에 굉장히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작업이다. 사각형에 굴곡진 부분이 있어 멀리서 보면 원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측면을 보면 더욱 깊이 있는 형상을 볼 수 있다.

reflection - 각도의 변화<사진제공=진화랑>



금으로 작업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통 종이보다 얇게 제작하기 때문에 손에 염분과 습기가 있으면 금방 금이 붙어 버린다. 금을 접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옻칠이 가장 궁합이 맞더라. 둘의 관계가 유연하다. 옻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스레 자개에도 시선이 갔다. 자개는 자연의 아름다운 빛을 잘 구현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Q. 작품에서 ‘빛’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빛은 어떤 의미인가?

A.
나는 빛을 생명으로 연관 지어 작업한다. 금, 옻, 자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적인 작업들을 해오면서 ‘빛’이 주는 평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생명이 모든 것과 연결돼 있듯 빛은 내 작업과 작품에서 그러한 의미다.

“꿈을 꾸는 것보다 꿈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Q. 환경과 연결된 작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인가?

A. 환경 관련 행사에 예술을 접목시켜 전시 기획을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예술이 갖는 힘은 전천후라고 생각한다.

미래숲에서 중국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막에 나무를 심으면 잘 자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고 들었다. 대단한 일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 또한 환경을 생각한 작업을 구상해봐야겠다는 동요가 크게 일어났다. 그래서 그냥 함께하고 싶다는 어찌 보면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예술로 작품으로 무언가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내가 보는 시선이 개인적인 것에서 주변으로 또 다른 시선으로 확장돼 가고 있는 것 같다.

 

자개 위에 소소한 일상들을 일기 쓰듯 표현한 ‘The jar’. 조형적 배치까지 고려한 작품이다.

<사진=송진영 기자>


Q. 앞으로의 행보와 목표는 무엇인지?

A. 이번 전시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근원적인 것은 나에게는 곧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자 사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 예술에 몸담아 왔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더 오래 예술에 매진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꿈을 꾸지는 않는다. 그동안 꿔왔던 꿈을 유지하고 이루는 것이 내 최종 목표다. 꿈은 꾸는 것보다 유지하고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렵다. 그러므로 생명·사명과도 같은 예술을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주저함 없이 발걸음을 앞으로 옮겨 나갈 것이다.

예술가가 만들어지는 것도 힘들지만 예술가가 오랜 시간을 거쳐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소통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몰입과 집중을 다 해 하나씩 이뤄나갈 것이다.

 

 

 

songjy@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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