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원숭이 해의 태양이 떠올랐다. 원래 해는 매일같이 떴다가 지는 것. 새해 첫날이라고 별다를 바 없건만 우리는 애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시작의 설렘이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불길 같은 뜨거움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새로운 다짐을 새기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도전의 용기로 벅차오른다. 이 감격은 험난한 일상을 헤쳐나갈 동력이 되기에 충분하다.

평생 일해 온 직장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을 돕는 걸 업으로 삼는 필자에게도 ‘뜨는 해’의 의미는 남다르다. 제대로 준비된 상태에서 은퇴하는 분들은 뜨는 해처럼 새롭고 역동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딴죽을 건다. “은퇴하는 분들은 ‘지는 해’와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은퇴를 적나라하게 목격해 온 필자의 관점에서 이 말은 부당하기 그지없다. 지난 세월 쌓여온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 편견은 우리 언어 속에도 녹아있다. ‘은퇴(隱退)’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이다. ‘숨기다, 희미해지다, 사라지다’ 등의 뜻을 지닌 ‘은(隱)’과 ‘그만두다, 물러나다, 피하다’ 등의 뜻을 가진 ‘퇴(退)’가 합쳐진 한자어가 바로 은퇴이다. 그래서 나는 은퇴라는 한자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어 표현인 ‘retire’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 단어는 ‘다시’를 나타내는 ‘re’와 ‘타이어(tire)’가 합쳐진 말이다. 즉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뜻이다. ‘끝’이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표현한다. 나이가 들고 은퇴를 맞는다고 지는 해처럼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새로운 길을 달린다.

은퇴가 뜨는 해처럼 되려면 잘 준비해야 한다. 즉 은퇴설계가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삶을 향한 전인적 차원의 생애설계를 하시길 바란다.



은퇴설계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그 출발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해 첫 결심을 다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은퇴 후 내가 어떤 삶을 살지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면 된다. 여기에는 설렘과 기대가 포함돼야 한다. 또한 자신이 그 새로운 삶을 누리며 가족과 사회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자존감이 뒷받침돼야 한다. 부정적 환경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돌파구를 찾는 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이렇게 긍정적 자아상이 확립된 가운데 은퇴의 비전과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은퇴설계의 문을 열게 된다. 다음 단계는 이 비전과 목표를 구체적인 계획에 담는 것이다. 영역별로 시기별로 구분해 실행의 청사진을 만들어간다면 도움이 된다.


<글 / 한국은퇴설계연구소 권도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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