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민 극지연구소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

진동민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

남미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브라질, 페루 등을 여행하고 칠레에 와서 온라인에 남긴 소감을 보면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물가가 비싸고 불친절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칠레는 남미 유일의 OECD 회원국으로,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6년 국가별부패지수에서 한국이 29위인 반면에 칠레는 21위로 우리보다 높다. 문화적으로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파블로 네루다,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16년 약 1만4000불로 우리나라보다는 낮지만 정치·경제적으로 투명하고 안정돼 있으며, 많은 광물자원과 수산자원을 갖고 있다.

칠레, 우방국으로서 남극활동 불가분의 관계
칠레는 1949년 남미 최초로 신생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한 전통 우방국이다. 우리나라가 2004년 FTA를 처음 체결한 국가로 2013년 기준 한국은 칠레에 5번째 수출 대상국이며, 6번째 수입 대상국으로 우리나라의 약 30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무엇보다 칠레는 우리나라 남극활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88년 2월 남극반도 킹죠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한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종기지에 출입하기 위해 칠레를 이용하고 있다. 칠레 최남단의 도시 푼타아레나스는 남극의 관문으로 킹조지섬까지 약 1240km 떨어져 있으며, C130이란 군용기를 이용할 경우 2시반30분, 제트기를 이용할 경우 1시간50분이면 남극에 도착할 수 있다.

흔히 남극의 관문으로 푼타아레나스와 더불어 남아공 케이프타운, 호주 호바트,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아르헨티나 우슈아야를 이야기하지만, 푼타아레나스는 마젤란 해협 중간에 위치해 있고, 남극반도의 거리가 짧아 남극활동 초기부터 거점으로 활용됐다. 요즘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중국, 브라질 등 전통적 남극활동 국가뿐만 아니라, 새롭게 남극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터키, 몽골과 같은 국가도 푼타아레나스를 기반으로 남극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나 보니 칠레는 자연스럽게 이들 국가와 남극활동에 대한 협력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칠레는 남극조약의 논의 초기부터 참여했고 처음 서명을 한 12개국(원초 서명국) 중 하나이며 남극의 일부가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7개 영유권 주장국의 하나다.

칠레는 남극반도 일원에 해군, 공군, 육군이 각각 상주기지를 운영하며 자국 과학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칠레남극연구소는 남극의 하계기간에 남극반도 일원에 3개의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극내륙 유니언빙원에 하계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칠레는 오래된 쇄빙선인 오스카비엘호를 대신할 쇄빙선 건조 계획을 확정했으며, 또한 남극연구 조기투입을 위한 중고 쇄빙연구선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

푼타아레나스에는 2020년 오픈을 목표로 국제남극연구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칠레남극연구소와 칠레연구재단은 매년 남극연구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칠레와 더불어 남미 국가 중 남극에서 실질적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남극에 대한 투자가 주춤한 것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남극반도에서 하계기지를 운영하는 페루, 에콰도르와 같은 남미권 국가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불가리아와 같은 국가의 남극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칠레가 이렇게 남극활동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은 남극, 특히 남극반도 지역의 변화가 자국에 여러 면에서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과 남극조약의 협의당사국으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극에서는 흔히 연구활동이 화폐 혹은 영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남극환경보호를 위한 연구에 공동 관심 표명
2017년 4월 우리나라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제3차 남극연구활동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존 등 전지구적 문제에 대응하고, 남극과학과 거버넌스에서 우리나라의 리더십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4년 극지연구소의 부설기관 설치 이후, 2010년 아라온호 건조, 2014년 장보고 과학기지 건설, 2018년 세종과학기지 대수선 등을 통해 극지인프라와 연구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칠레는 자국을 통해 남극활동을 하는 국가 중에서 이런 우리나라의 모습에 주목해 왔다. 남극에서 기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연구활동을 통해 기후변화가 남극 생태계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 등에 대해 우수한 연구결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인프라 확충을 통해 남극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있는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종과학기지와 칠레가 다수의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남극반도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5년 라슨A, 2002년 라슨B에 이어 올해에 제주도 3배 크기의 라슨C가 깨져 나갔다. 펭귄들의 서식환경과 해양 생태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양국은 세종과학기지 주변의 육상 생태계와 극한 생명체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양국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남극 연안 생태계의 반응 등 남극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연구에 공동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건설 30년을 맞아 현대적인 시설로 새롭게 단장하는 세종과학기지가 양국의 공동연구를 촉진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칠레의 남극반도 일원 기지와 캠프 <자료제공=진동민 센터장>

 
<글 / 극지연구소 한-칠레 남극협력센터장 진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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