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과 내륙을 통한 가야와 백제의 교류 증거 확인

[구례 = 환경일보] 현용일 기자 = 구례군은 지난 1월 29일 토지면 용두리에서 ‘구례 용두리 고분’ 유적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하고, 현장설명회를 통해 ‘구례 용두리 고분’ 긴급발굴조사 중간성과를 공개하였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군과 (재)마한문화연구원(원장 조근우)에서 추진하는 ‘구례 용두리 고분’ 긴급발굴조사는 구례 용두리 고분이 1980년대부터 경작과 개간 과정에서 가야계의 많은 유물이 수습되어 알려지면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유적의 정확한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추진하였다. 이번 조사를 통해 ▲ 가야계 토광묘(목곽묘, 목관묘), ▲ 청동기시대 집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섬진강과 인접한 용두마을 남쪽의 낮은 구릉(해발 45m)에 위치하며, 구례읍을 관통하는 서시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넓게 형성된 충적지의 단독 구릉에 해당한다. 용두마을의 강변에는 하동에서부터 섬진강을 드나들던 배를 매는 ‘배틀재’라는 지명과 함께 선착장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왔던 곳이다.

토광묘는 3기가 확인되었으며, 모두 등고선과 나란하게 조성되었고, 묘광과 곽(관) 사이는 회색점토로 채워 넣은 구조이다. 대표적인 3호묘는 구릉의 남사면부에 조성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중복되어 있다. 

전체적인 묘광의 규모는 길이 330cm, 너비 130cm, 깊이 20cm이고 그 내부의 목곽 규모는 길이 280cm, 너비 80cm이다. 유물은 머리 쪽에 목짧은항아리, 손잡이잔, 바리모양토기, 가락바퀴, 쇠칼을 매납하였으며, 발 쪽에는 목짧은항아리, 굽다리접시 2점을 매납하였다. 출토상태로 보아 목곽 내부에 안치했던 유물로 판단된다.

2호토광묘는 3호와 바로 인접하여 나란하게 위치해 있다. 전체 묘광의 규모는 210cm, 너비 74cm, 깊이 18cm이다. 3호토광묘에 비해 규모가 작으나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하였고 묘광과 관 사이에는 회색점토로 채워 넣은 점 등 축조방법이 동일하다. 유물은 머리 쪽에 목짧은항아리와 굽다리단지를 매납하였고, 발 쪽에는 굽다리접시와 굽다리입선단지를 매납하였다.

구례 용두리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목짧은단지, 목긴항아리,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등 대부분 가야계토기이다. 이들 토기는 어느 특정한 시기와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아라가야계, 소가야계, 대가야계 등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는 구례 용두리 일대의 집단이 섬진강뿐만 아니라 내륙을 통해서도 가야지역과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유지해 왔음을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양식과 출토유물은 추후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가야지역과 백제지역과의 교류관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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