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라이스베르만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사무총장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프랭크 라이스베르만 사무총장 /사진=김봉운 기자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프랭크 라이스베르만 사무총장 /사진=김봉운 기자

[환경일보]  ‘배고픈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없다.’

지난 40년간 환경 및 개발 분야에 종사하면서 위 인용문과 같은 발언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여러 시급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으나, 국제개발협력(공적개발원조, ODA) 분야에서 환경과 기후행동을 배제하는 구실로 이 말을 이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같은 기간 동안, 기후를 미래 세대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으며 주로 학계가 관심을 갖는 사안으로 치부하다가 이제는 기후를, 특히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대적 위기요인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다.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은 오염과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여러 시급한 우선순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난한 이들이 대기오염, 홍수, 가뭄, 태풍, 기후변화의 전반적인 영향으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음이 그간 증명됐다. 한 예로 무려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조리용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그 결과 실내 대기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추산에 따르면, 매년 대기오염으로 700만 명, 실내 대기오염으로 16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5세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의 기후난민 2500만 명 중 상당수가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이었다.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있다. 2017년 남아공의 농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 중 90% 이상이 기후변화를 인식하고 있었고 3분의 2 이상이 심각한 기후현상을 겪었으며 최소 절반이 스스로 대응전략을 실천했다[엘룸(Elum) 등, 2017년].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은 기후위기 책임이 가장 적은 계층이다 

이들은 차를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비행기도 이용하지 않으며, 에어컨도 없다. 사실 아프리카 인구 중 3분의 2 는 전기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초래한 온실가스를 배출한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겠다고 공약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선진부국들은 저개발국에 연간 1000억 달러의 기후재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재원 중 절반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투입돼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개도국의 가난한 이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홍수, 가뭄, 태풍이 초래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함으로써 수백만 기후난민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데 투입돼야 한다.

기후변화적응 재원 투입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추산에 따르면, 개도국에 지원된 기후재원의 총액이 789억 달러로 증가했으나, 그중 70%는 온실가스 감축에 투입됐고(완화) 겨우 21%만이 기후변화 적응에 투입됐다(나머지는 여러 측면을 아우르는 사안에 투입). 기후변화 적응에 투입된 168억 달러는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동원한 10조~12조 달러에 비하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수치이다. 

유럽 각국과 대한민국 정부는 이 기회를 통해 회복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코로나19 이후의 ‘발전적 재건(Build Back Better)’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 기회를 활용해 친환경 경제로의 이전을 가속화하고 기후행동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유럽연합(EU)과 대한민국이 발표한 그린뉴딜에 구체화돼 있으며, 또한 경제 활동 시의 탄소 배출을 계속 줄여 2050년 또는 그 이전까지 탄소배출 제로(Net Nero)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에도 구체화돼 있다. 이 탄소배출 제로 공약은 세계가 최악의 기후변화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남은 방안 중 최선의 대안이다. 

녹색성장을 통한 발전적 재건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는 회원국이 녹색 성장 및 개발 모델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우리는 회원국들에게 녹색회복이 자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Climate Change Agreement)에 따른 국가별 자발적 감축 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에 부합하는 전력 분야 관행 실천이 멕시코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신흥국에서 수백만 개의 녹색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사태에서 회복하는 작업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가속화하는 일과 병행할 수 있다. 이는 EU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멕시코,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의 신흥국에서도 가능한데, 이들 국가는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당하나 아직 온실가스 배출 제로 정책을 본격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 발전을 위해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아프리카 인구의 3분의 2가 개방형 석탄화로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면 이들의 에너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진제공=GGGI
아프리카 인구의 3분의 2가 개방형 석탄화로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면 이들의 에너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진제공=GGGI

아프리카 저개발국 또는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군소도서 개도국에, 녹색 일자리 창출과 기후변화 회복력 강화는 온실가스 감축보다 중요한 우선순위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역시 위대한 기술이다. 아프리카 인구의 3분의 2가 개방형 석탄화로로 요리를 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를 활용한다면 이들의 에너지 접근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군소도서의 호텔에서 태양광 조명 그리고 냉장고와 냉동고 등의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어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실내 공기오염을 줄이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1석 3조의 효과가 달성되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게는 녹색회복과 기후행동이 결합된 수많은 여타 우선순위가 있으며, 여기에는 태양광 관개시설, 기후 스마트농업, 삼림과 피트 지대 등의 파괴된 생태계 복원 등이 포함된다. 

GGGI는 올해 전체 회원국 중 12개 국가의 녹색회복 계획과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가능하면 자체 그린뉴딜까지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는 EU와 대한민국의 그린뉴딜과 유사하나 기후 스마트농업과 자연 기반 해결책을 통한 녹색 일자리 창출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는 모범 그린뉴딜 모델을 개발했다. 

ODA는 친환경적인가? 

OECD는 ODA가 환경과 기후변화에 중점을 두는지 여부를 추적한다. 추척 분야는 상당 부분 중복되며, (1)환경 (2)기후변화완화 (3)기후변화적응 (4)생물다양성 (5)사막화, 이렇게 5가지 분야가 그 대상이다. 환경에 중점을 두는 양자개발원조 총액은(UN을 통해 전달되는 다자원조 및 유사 재원 제외) 1130억 달러 중 350억 달러로 31% 정도이다. 또한 기후변화 관련 원조 총액은 290억 달러로 약 26%를 차지한다(이 두 수치는 대부분 중복되며 합산이 불가능함). 위에 언급한 대로, 기후재원 중(780억 달러) 겨우 20%에 해당하는 168억 달러가 기후변화 적응에 투입되나 민간 기후재원이 거의 기후변화 완화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기후 관련 ODA의 약 절반이 기후변화 적응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린뉴딜을 계기로 ODA의 친환경성이 증가할 것인가?

녹색 ODA의 선도 공여국은 대부분 유럽국가이며(프랑스 67%, 독일 42%, 스웨덴 47%, 영국 42%), 캐나다(42%)와 일본(48%)도 이 부문의 선도 공여국이다. 2018년 EU 기관의 녹색 ODA 비중은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34%였으나, EU 그린뉴딜이 유럽 녹색회복의 중추가 되고 ‘녹색성장전략’이 모든 EU 정책의 근간이 돼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 수치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공식적인 녹색 ODA 비중 목표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유럽의 개발 파트너들은 환경과 기후재원 ODA를 합산한 녹색 ODA의 비중이 최소 50%는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ODA의 친환경 수준은? 아직 개선의 여지 많아

KOICA의 재정지원으로, GGGI는 필리핀 오리엔탈 민도로 소재 칼라만시 재배농가와 함께 농가의 기후변화 회복력을 높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GGGI
KOICA의 재정지원으로, GGGI는 필리핀 오리엔탈 민도로 소재 칼라만시 재배농가와 함께 농가의 기후변화 회복력을 높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GGGI

대한민국이 공여한 환경 관련 양자 ODA의 비중은 2018년 10%였고 OECD 평균은 33%였다. 또한 한국의 기후재원 관련 ODA 비중은 7%였고 OECD 평균은 26%였다. 간단히 말해 대한민국의 ODA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친환경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녹색 ODA 선도 공여국 대비 4분의 1에 그칠 정도로 크게 뒤쳐져 있다. 

2월 19일 개최된 대한민국 녹색 ODA 현황과 전망 회의에서, 박재신 한국국제협력단(KOICA) 상임이사는 대한민국의 녹색 ODA가 증가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향후 녹색 ODA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위 수치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녹색 ODA 확대가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기는 하겠으나, 심지어 2018년 기준으로 봐도 여전히 선도 공여국뿐만 아니라 여타 ODA 공여국들의 평균에 비해 크게 밑도는 수준이며,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EU 기관들의 녹색 ODA 비중에 비해서도 매우 낮다.

대한민국의 ODA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친환경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녹색 ODA 선도 공여국 대비 4분의 1에 그칠 정도로 크게 뒤쳐져 있다. /사진제공=GGGI
대한민국의 ODA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친환경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녹색 ODA 선도 공여국 대비 4분의 1에 그칠 정도로 크게 뒤쳐져 있다. /사진제공=GGGI

대한민국의 녹색 ODA와 관련한 권고사항 

그린뉴딜과 2050년 탄소배출 제로 공약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걸맞게 대한민국의 ODA를 녹색화하기 위해서는 아래 사항의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 녹색 ODA 비중 50%로 증가. KOICA, KDB, 수출입은행, 정부부처 등 모든 재원출처를 망라한 대한민국의 녹색 ODA(환경 및 기후재원 합산) 비중은 최소한 여타 OECD ODA 공여국들의 평균 수준까지 증가해야 하며(예, 2018년 31%), 대한민국이 그린뉴딜과 탄소배출 제로 관련 정책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자 한다면 여타 선도 공여국들이 2018년에 이미 달성한 수준인 40%를 훨씬 상회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2050년까지의 녹색 ODA 비중 목표치를 50% 또는 현 수준의 5배로 증가시켜야 한다. 

둘째, 환경을 해치는 재정지원 금지. 대한민국의 ODA 사업 지침에 모든 사업이 반드시 기후·환경을 보호하고 회복력을 높이는 사업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해야 한다. 이는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화석연료가 활용되는 국제사업에 더 이상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세째, 기준 적용. 대한민국의 ODA는 모든 ODA 사업 추진 시 환경영향평가와 기후리스크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러한 권고사항을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녹색 ODA의 후발주자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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