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다양한 문제 해결에 시민의 권한과 역할 보장해야
관료적 접근만으로는 역부족··· 지역공동체 단위 대응 필요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자치분권은 기후위기 시대의 핵심 요건이다. 전 지구적인 문제는 곧 우리 동네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다양한 공동체로 모여 기후위기를 일상의 문제로 논하고 대응해 갈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주민과 함께하는 정부’, ‘다양성과 새로움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방자치법 제1조(목적)에는 ‘주민의 지방자치 행정 참여를 통한 민주적인 발전’이란 근거도 있다. 하지만 자치분권의 정착은 말처럼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지난 7월22일 비대면으로 열린 녹색전환공론장(주최: 녹색전환연구소)에서는 이 문제가 깊이 있게 논의됐다. 

허승규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이 실제 지역과 현장 속 시민들의 삶의 언어로 치환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진영이 단결해서 각 지역을 끈끈히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고 진단했다.  

김지안 녹색전환청년그룹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기술적, 관료적 접근만으로는 역부족인 불평등의 문제”라면서 “지역공동체 단위의 대응이 중요하지만 지방자치는 여전히 관(官) 위주로 돌아가고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과 정신적인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자치분권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있었던 지방자치법 등 자치분권 주요 입법 과제 논의 당시 /사진출처=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있었던 지방자치법 등 자치분권 주요 입법 과제 논의 당시 /사진출처=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기후위기 시대 자치분권 중요성 부각 

시민들이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조건에서 대책이 나와야 하지만 이를 가능케 할 시스템이 없다는 건데, 시스템이 없으니 지역공동체는 물론 참여 유도부터가 어렵다. 

허승규 대표는 ‘정치적 평등’에 주목해 이 문제의 해법에 다가갔다.

그는 1인1표라는 공통된 합의와 현실속 불평등의 간극을 줄이는 것을 민주정치로 정의하면서 ‘참여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지방정치 구조는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돈과 시간이라는 일상 속 제약을 이유로 들면서 대신 자치분권의 담론을 확대하자는 논리를 폈다. 

시작은 지방정치에 관심이 떨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허 대표는 “실제 지방의회가 꼭 있어야 하냐는 회의적인 시각과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인식이 강하다. 내가 사는 곳에 어떤 지역의원이 있는지 또 그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대다수는 잘 모르고 있다”며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현실적 대안이 나오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실 파악을 토대로 선거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지방 정치의 도입을 제안했다. 읍·면(동) 단위에도 직선제로 장을 선출하고 의회를 도입해서 차별화 시키자는 것이다. 

지난 7월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녹색전환공론장에서 인천시의회 소속 조선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온라인 캡처
지난 7월22일 온라인으로 열린 녹색전환공론장에서 인천시의회 소속 조선희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온라인 캡처

가난한 자들이 활동 자금을 모을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부패정치와 혼동하지 말자고도 당부했다.

허 대표는 “일상적인 정치 활동을 후원하게 할 수 없는 한국의 왜곡된 부패정치담론이 있다”며 “부패는 없어야 하지만, 정당하게 돈을 끌어들일 수단까지 막아버리면 가난한 이들은 정치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동네’와 ‘지구’가 연결돼야 하는 문제로 해석, “참여불평등 문제의 해결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면서 “‘풀뿌리’가 ‘뿔뿔이’ 민주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이었다.  

실제 지방정치가들의 목소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훈 단장(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기후위기 대응 그린뉴딜 TF)은 “이제는 시민이 권한을 가지고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일상생활 속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자치분권적 수단 그리고 실행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선희 위원장(인천시의회 기후위기 대응 특별위원회)은 “그린뉴딜, 로컬뉴딜, 돌봄뉴딜이 연결될 때 기후위기 시대의 지방분권적 의미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요지는 이렇다. 개발과 발전 중심의 사고와 정책에서 탈피해 지방분권의 핵심을 ‘서울처럼 바꾸자’로 두는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야 하고, 청년의 정치 참여가 더 이상 끼워주기식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풀뿌리’민주주의, ‘뿔뿔이’로 변질 우려

중앙집중형인 에너지정책도 지역분산형으로 과감히 전환시켜야 시민들이 단지 소비자로서 만이 아닌, 문제해결의 당사자로 인식하고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아울러 돌봄은 취약한 누군가를 살피는 행위와 함께 자기 돌봄까지 내포한 포괄적 개념으로 ‘덜 소비하는 사회’와도 연결된다. 

조 위원장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기후위기와 돌봄공백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다”며 “아무리 비대면 시대라고 하지만 아이들 밥을 온라인으로 먹일 수 없고, 어르신 목욕 역시 비대면으로 할 수 없다”고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후위기시대, 지방분권의 일환으로 시민의 영향력이 강조되는 것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수페리야(Superilla·슈퍼블록)’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공 공간을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사회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는 장소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둔 이 프로젝트는, 어린이와 노인의 요구사항과 지역상권이 같이 고려된다. 이미 바르셀로나 전역의 도시모델로 확대 중이다. 

모든 이들이 접근 가능한 ‘사람 중심의 거리’인 이곳에서 차량은 손님이 된다.

아스팔트가 아닌 도로포장용 타일이나 화강암이 적용됐다. 좀 더 많은 자연 공간을 위해 도로의 한 가운데도 녹지를 적용시켰고, 도시 서비스 및 구급차 등에 필요한 통로 공간은 따로 확보해뒀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토양의 적용 범위를 가능한 넓히면서 빗물의 재사용도 늘렸다. 어린이 놀이 공간이 들어간 것도 특징이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은 대중의 참여와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사진출처=Ajuntament de Barcelona
바르셀로나 슈퍼블록은 대중의 참여와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사진출처=Ajuntament de Barcelona

Xavier Matilla 바르셀로나 시의회 수석건축가는 “우리는 슈퍼블록 사업이 모든 이해당사자 그리고 대중의 참여와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도시 프로젝트가 되기를 원한다”며 “슈퍼블록 사업의 핵심은 지역 주민과 단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들의 요구에 맞게 설계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수용 장담 못해

우리도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있다. 허승규 대표는 지방의 소도시일수록 대중교통에서 소외된다는 점에 착안, 청소년과 어르신들을 위한 전용 버스노선을 개설해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 녹색교통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를 동네와 지구를 연결하는 사례로 보며 기후위기 대응이 우주적인 문제가 아닌, 동네의 언어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다만, 자치분권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당장 탄소중립 전략 추진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은 불가피하다.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수용이 수반된다.

허 대표는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등 민감한 주제를 놓고 나오는 온라인 악성 댓글 기반의 설전을 쉽게 마주한다. 이럴 때면 동네 단위에서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슈라도 일상에서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경험들이 쌓이면, 적어도 무작정 악플은 못 달게 되지 않을까”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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