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화 방지 NGO 미래숲 권혁대 중국본부장

한·중 수교 청년들의 땀···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희망의 숲 이뤄
“삭막한 코로나 시대, 서로 존중하며 미래 이끌 교류 프로그램 늘려야”

권병현 대표(오른쪽)와 권혁대 본부장
미래숲 권병현 대표(오른쪽)와 권혁대 중국본부장

[환경일보] 2006년 처음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바람에 불어오던 황사 때문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봄에 난생처음 사막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 한 점 없어, 마치 가상현실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딱 두 가지 색으로 이등분된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높은 하늘이 반, 끝없이 펼쳐진 베이지색 사막이 반이었다. 

초속 수십 미터의 강한 바람이 불면 싯누런 황사가 되어 멀리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황사의 발원지라고 불린다. 따라서 이곳에 나무를 심어 바람을 약화하고 땅을 잠재우기로 한 것이다. 어렵게 산림청의 지원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과연 여기서 나무들이 살 수 있을까 걱정됐다.

지평선 끝까지 무한하게 있는 모래언덕 사이를 운전사의 사정없는 드리프트로 몸이 좌우로 쏠리며 30분을 달려 점점 더 사막의 안쪽으로 이동했다. 밖의 광경은 약 5~10m 높이의 수백수천개 모래언덕만이 빠른 속도로 무한 반복됐다. 여느 테마파크의 거친 라이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사막에 부는 강한 바람과 황사
사막에 부는 강한 바람과 황사

손잡이를 꼭 잡은 손이 저려올 때쯤 도착한 곳은 지나온 사막 광경과 다를 바가 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어느새 바람이 일어 뿌연 하늘 아래는 수많은 모래언덕뿐이었다. 그중 제일 가까이 있는 비스듬한 언덕 경사면에 묘목 수천그루가 수십줄로 끝없이 놓여 있는 것이, 그렇게 심으라는 것 같았다.

오기 전에 듣기론 여긴 물이 많아서 사막에 나무가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모래는 전혀 물기가 없고, 삽으로 파면 구덩이가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새카맣게 탄 얼굴을 한 드리프트 운전사는 사실 이 프로젝트 현장의 책임자인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노, 노, 노~” 하고 손사래를 치며, 바로 모래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으로 마른 모래를 걷어 냈다. 그리고 그 밑의 젖은 모래를 한 움큼 보여줬다. 표면의 마른 모래층 밑에는 젖은 모래층이라서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빨아들여 생존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나무로 황사 방지 방풍림을 만드는데, 이 정도의 물이라면 가능해 보였다.

사장을 치는 조림팀
사장을 치는 조림팀

사실 물이 풍부한 쿠부치는 물 부족 때문이 아니라 강한 바람이 사막화 원인이다. 강한 바람이 모래를 파내어 뿌리까지 드러내거나 아예 모래언덕을 통째로 밀어 애써 심어 놓은 나무들을 덮어 버린다. 그리고 사시사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뿌리에서 끌어올리는 물의 속도보다 잎에서 증발이 더 빨리 일어나 바싹 말라 죽기 일쑤다.

이동을 위해 뿌리가 잘린 묘목은 사막에 다시 심겨 뿌리가 자라서 스스로 버틸 수 있게 될 때까지 걸리는 첫 3년이 아주 중요하다. 생존한다면 바람도 막아 주고, 땅도 고정하며 그늘을 만들어 자기 주변의 땅의 수분 증발을 막아 준다.

하지만 처음엔 증발이 일어나는 잎사귀에 비해 뿌리도 적어서 인위적으로 물을 주고 사장(沙障)을 설치해서 바람을 막아줘야 한다. 갓 심어진 묘목의 뿌리가 충분히 자라서 바람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년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문제없이 무럭무럭 자란다.

사장 조성 후 전경
사장 조성 후 전경

이처럼 사장치기는 나무 생존의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에 한여름과 같이 나무를 심지 못하는 계절의 현장 자원봉사팀에게는 최적의 작업이 된다.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로 사장을 엮어서 모래를 고정하면 바람이 불어와도 모래의 이동을 막을 수 있고, 뿌리가 드러나지 않으며 오히려 바람에 모래와 함께 풀씨들이 날려와 사장에 걸려 풀이 자랄 수 있게 된다.

[현지 에피소드] 사막을 처음 체험한 뒤 해가 질 무렵 숙소에 체크인하는데, 앞으로 협력할 현지 팀원 청년과 인사를 나눴다. 로비의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릴 때 그 청년이 옆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다.

나는 그래도 중국 생활 수년짼데, 아무리 심한 방언이라도 한두 마디 정도는 알아듣게 마련이건만, 기묘한 조합의 자음과 모음의 따라 할 수도 없는 발음은 전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광둥어 저리 가라 할 내몽고 사투리의 장벽을 인정할 즈음에, 그 친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런데 그가 유창한 표준 중국어로 답을 하며 눈으로 양해를 구하고 급히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몽고서 갈고 닦은 영어를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이 일은 향후 종종 회자되어 조림팀에 웃음을 선사했다. 그 후 10여 년간 사막 현장을 누비며 작업을 같이할 조림팀 청년과는 그렇게 재미있게 알게 됐다.

사막 환경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들
사막 환경을 견디고 살아남은 나무들

[심은 나무들이 자라다] 16년 전 첫해에 심은 포플러들은 현재의 톨게이트 양옆에 십수미터 높이의 포플러 숲이 되었다. 사류들도 대부분 살아남아 바람막이 역할을 잘하고 있다. 시작 당시 현장 책임자가 보잘것없는 사류 묘목 두 개를 보여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이 도로 양옆을 덮어 버리는 사류숲이 될 줄 믿지도,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나무와 풀이 우거지게 되기까진 현지 조림팀의 피나는 노고와 양국 관계자들의 노심초사가 있었다. 갓 심어진 나무의 생존율은 60~70% 정도로 여름까지 살아 있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지만, 죽은 나무쪽에 대한 대책 마련 비중이 크다.

열악한 환경 속에 생존해서 몇 달간 실처럼 뿌리를 키운 묘목들이 강풍에 뽑힌 채 수백그루씩 드러누운 모습을 보면, 나무가 심어지기까지의 수많은 노고가 물거품이 되어 허탈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20% 정도의 나무는 이렇게 쓰러진다.

현장 점검 때 당황하는 얼굴로 황급히 쓰러진 나무들을 집어 들고 어쩔 줄 모르던 현지 담당자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사막은 생물이 살기 어려운 곳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생존환경을 제공해서,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능력을 키우게 하는 곳이다. 환경이 이기느냐, 회복이 이기느냐의 전쟁터에서 고민과 고생은 당연지사 같다.

조림 후 쿠부치 사막
조림 후 쿠부치 사막

사막에는 2명의 바보가 살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현지에 돌았었다. 한 바보는 낮 동안 내내 사막에서 모래를 처먹고, 두 번째 바보는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바보가 합쳐지면 우리 현장 담당자라는 것이다.

첫 번째 바보는 이해가 가는데, 두 번째 바보는 뭔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작업은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사막 주변 몇몇 마을 주민들과 마음을 맞추기 위해 밤에는 하루가 멀다고 술을 마시고, 그렇게 해야 필요한 조림 인력이 동원되고, 또 그 인력 풀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누가 땡볕에 사막에서 일하고 싶고, 영하 20도의 추위에 나무를 심고 싶겠는가. 같이 일하다 보면 다툼도 있고, 각기 자기 사정이 있는지라 팀 조직을 운영해 조림프로젝트 일정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두 번째 바보의 노력으로 극복해 내는 것이다.

사막 조림팀이 모여 있으면 항상 시끌벅적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사막에서의 고된 노동을 이겨내는 조림팀원들은 성격들이 매우 직선적이고 포장이 전혀 없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미가 넘친다. 그렇게 해서 나무들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조림 전 26km 지점 입구(왼쪽)와 조림 후 26km 지점 입구 모습.
2011년 조림 전 26km 지점 입구(왼쪽)와 조림 후 26km 지점 입구 모습.

어느 해 일이었다. 설이 한참 지나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영하 20도의 거센 바람이 사막에 모질게 불어대서 어렵사리 모집한 작업 인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오인데도 하늘은 황사로 저녁처럼 어두컴컴하고 5m 앞도 안 보이는데, 모래 섞인 얼음 바람에 손과 얼굴이 찢어질 듯 아프고 눈을 뜨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업은 무리이기 때문에 오전 작업은 일단 철수된 상태였다. 작업반원 모두 사막 한가운데에 임시로 쳐놓은 군용텐트 안에서 대피하며 바람이 잠자길 기다릴 방법밖에 없었다.

모랫바닥에 친 텐트 속은 칼 같은 바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조명도 없고 밖의 모래 먼지가 그대로 자욱했다. 이 가운데 설치된 작은 석탄 난로는 5m x 5m의 공간을 데우기엔 부족했다. 오전에 작업반 인원의 주머니 속에서 얼어붙은 만토우(중국 빵) 10여개가 난로와 연통 위에 줄지어 놓여 있었지만, 영하 20도에 언 것이 쉽게 녹지는 않았다.

그래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하는 사이 누군가 만토우가 하나하나 데워졌고, 바람도 잠잠해져 오후 작업이 개시됐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지난 15년간 계속해서 작업해 왔기에 지금 나무숲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작업반원들의 노고와 두 바보를 위시한 현장에서 고생하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깨끗한 사막 샘물
깨끗한 사막 샘물

쿠부치 사막은 물탱크라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수십미터 깊이의 모래가 바람에 황사로 날아가는 황사발원지지만, 사실 표면의 10cm 정도만 건조하고, 그 밑의 수십미터는 젖은 모래다. 그리고 다 아래쪽 지하 암반에는 청정 지하수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연적으로 솟는 샘이 모래 군데군데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이겨낸 나무들은 땅속의 물을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게 뿌리를 내려 3년 차가 지나면 무럭무럭 잘 자란다.

물이 이렇게 풍부한데 왜 사막이 된 것인지 의문이 간다. 시경(詩經) 등 중국 고대 문헌은 쿠부치 초원의 풍부한 수목 자원과 400여년 전 명말 청초의 계속된 전쟁 그리고 무분별한 토지개간을 언급하고 있는데, 사막화에 인간이 크게 일조한 것 같다.

진흙층 위에 발견된 녹슨 못
진흙층 위에 발견된 녹슨 못

어느 해인가 무척 거센 바람이 며칠을 물어서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도보로 사막을 조사하러 들어간 적이 있다. 몇 시간을 걸었는데, 회오리처럼 바람이 불었는지 모래가 십여 미터나 파여 지름 20m의 분지가 형성된 것을 발견했다.

사막 모래의 깊이는 십여미터에서 수십미터에 달하는데, 맨바닥의 마른 진흙층이 드러나 있었다. 호기심에 구덩이로 들어가서 바닥을 살펴보니 강가에서나 볼 수 있는 둥근 돌들과 깨진 도자기 파편들 그리고 투박한 녹슨 못 등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원래 사람이 살던 곳에 모래가 덮쳐서 사막이 된 것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구덩이는 바람이 불어 다시 원상복구가 되었지만, 원래 사막의 상당 부분이 사람이 살던 곳이며, 사막모래층 밑에는 오래전의 유물들이 수십미터의 축축한 모래 아래에서 지금도 잠들어 있다.

묘목 활동 모습(왼쪽)과 높이 자란 포플러
묘목 활동 모습(왼쪽)과 높이 자란 포플러

매년 봄, 100여명 규모의 한국 미래숲 녹색봉사단과 중국 측 청년대표단이 사막 조림을 거들기 위해 온다. 한중청년대표단 교류프로그램은 한중간의 우호 교류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베이징의 중국 측 대표인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과의 청년포럼, 청년 기관 방문 등 공식 방문 교류가 다소 형식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도시의 공식 일정 후 황사의 발원지를 향해 밤새도록 달리는 침대 기차 속에서의 분위기는 아주 자연스러워진다. 새벽에 기차에서 내려 황하를 건너 도착한 사막을 다시 도보로 몇 시간을 횡단해 도착한 조림 현장. 어떤 해엔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뚝뚝 흐르는 더위에, 어떤 해에는 손이 얼어붙어 삽도 쥐기 힘든 혹독한 강풍 속에서 꾸준히 나무를 심어 왔다.

포플러 숲을 걷는 자원봉사단
포플러 숲을 걷는 자원봉사단

삽질은 해본 사람은 알지만, 2~3분만 지나도 허리가 아프고 숨이 차오르는 고된 노동이다. 국적과 나이, 신분과 관계없이 모두 체력적 한계에 도달하긴 마찬가지다. 모래를 뒤집어쓰고 땀 흘리는 한국 청년을 인터뷰했다.

“나 하나 심는다고 세상의 사막이 다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퍼져서 많이 알려지면 미래에는 숲이 될 것이다.” 중국 청년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국적을 불문하고 우린 모두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사막에서 묘목을 운반하는 자원봉사자들
사막에서 묘목을 운반하는 자원봉사자들

삽질에 몸과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손 악력이 마비될 때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뒤로하고 호텔에 도착해 땀과 모래로 범벅인 몸을 씻는다. 진흙 같은 모래와 진한 땟국이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물 사용에 등급을 매긴다면 이 정도면 특급을 부여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막 작업 마지막 날, “이거 드세요” 하고 중국 봉사자가 한국 친구에게서 받은 사탕을 준다. 땀을 흘리며 고생하던 중에 어느덧 간식도 나눠 먹고, 땅도 서로 파주고 하면서 국적의 장벽 없이 자연스러워졌다.

숲으로 변한 사막
숲으로 변한 사막

마지막 밤 환송 만찬 때는 바쁜 일정 틈틈이 연습한 공연무대가 펼쳐지는데, 제일 인기인 케이팝(K-pop) 공연 때에는, 그야말로 떠나갈 듯한 환호와 따라 부르는 노랫소리 그리고 수십 대의 카메라로 혼합된 열기의 도가니가 된다.

정직한 봉사를 한 이들만의 에너지는, 함께 한 고생과 인내에 대한 상호 존중이 저변에 깔려 있다. 우리 사회 내의 젊은이들의 이런 자연스러운 에너지의 발산 기회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공항에서의 아쉬운 작별
공항에서의 아쉬운 작별

[마지막 작별] 사막을 떠나 마지막 목적지는 공항 출국장, 최종 작별의 장소다. 빠듯하고 힘겨운 일정을 소화하느라 인식하지 못하다가 막상 비행기를 타고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야 이젠 못 본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고 많이들 울곤 한다.

더러는 대학생이 정말 맞는지 싶을 정도로 엉엉 우는 친구들도 있는데, 옆에서 동료들이 그걸 보고 웃다가 덩달아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부둥켜안고 끝까지 울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다 들어간 후에도 남아서 우는 친구들을 달래서 돌아가던 중국 측 청년대표들을 기억한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심은 나무들은 이제 약 20m가 넘는 나무숲이 되었고, 그 젊은이들도 40대가 되어 사회 구석구석에서 활약 중일 것이다. 함께 고생하며 나무를 심은 한국 청년, 함께 땀 흘려 지구를 살린 중국 청년들의 마음속에는 상대방이 어떻게 남이 있을까.

요즘 세상이 너무도 암울하다. 바로 옆 나라면서도 민간교류가 거의 없고, 부정적인 뉴스만이 무책임하게 난무하며 양국 간의 감정이 표류 중이다. 미래를 짊어질 양국의 젊은 세대가 서로를 존중할 이유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청년 간의 교류프로그램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림 후 복원된 올해 사막 마을의 모습
조림 후 복원된 올해 사막 마을의 모습

[사막마을의 복원] 2009년, 프로젝트 지역 내의 사막마을 ‘롱토과이촌’은 지속가능성을 모두 잃고 주민이 다 떠나게 됐다. 원래 옹기종기 서 있는 진흙 벽돌집에서 가족 단위로 30마리 정도의 양을 치며 작은 옥수수밭을 가꾸고 산다. 여름에는 오아시스의 풍부한 풀을 먹이고, 영하 20도의 겨울에는 수확한 옥수수 대를 먹이는데 물이 넘쳐나게 풍부해서 집마다 손잡이를 두세 번 펌프질하면 특급의 깨끗한 식수가 콸콸 나온다.

그런데 수 대째 살아온 터전을 떠나게 된 것이다. 곽씨 할아버지네 부부는 마지막 남은 집이었는데,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멀리 있던 모래언덕들이 차츰 다가와 봄마다 모래바람이 집과 밭에 쌓여 가더니, 이제 아예 모래언덕 자체가 집과 밭까지 다가와 덮어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막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수확한 수박
사막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수확한 수박

2009년부터 마을에 영향을 미치는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나무가 자라면서 마을이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5년 정도가 지나자, 심은 나무가 마을을 충분히 보호하게 됐다. 물과 사막 그리고 숲이 공존하게 된 이 마을은 주말이면 수천명씩 차로 방문하는 곳이 됐다.

마을 주민들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민박과 양고기 꼬치 그리고 맥주 등으로 수입이 꽤 쏠쏠해졌다. 방문객의 증가로 쓰레기 문제가 새로 대두되긴 했지만, 떠났던 주민들이 모두 돌아와 마을이 다시 활력을 찾게 되었다.

한중 우호 녹색장성 포플러 숲  /사진제공=미래숲
한중 우호 녹색장성 포플러 숲  /사진제공=미래숲

[마무리]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사막 지역 기자가 인터뷰를 정기적으로 청해 온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 쿠부치 사막에 한중 녹색장성이 세워졌습니다. 그동안 사막의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대답하기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1200만 그루의 나무가 5000헥타르 면적(종로구의 약 두 배)의 모래를 고정하는 살아있는 숲이 형성됐고, 이 과정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남북으로 평균 7km 동서로 평균 7km 길이의 한중우호녹색장성, 녹색생태원에는 지난 15년간 혹독한 환경 속에서 나무들이 생존했다. 풀과 이끼가 자라나고, 그 속에 다양한 생물들이 살게 됐다.

한국 산림청 자금으로 처음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젠 둘러봐도 사막이었다고 보이지 않을 숲을 이뤄냈다. 사람의 손으로 심어 한 치의 움직임 없이 긴 세월을 자라 준 나무들과 이러한 숲이 가능하게 공헌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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