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안전성 개선 및 원전폐기물 처분 책임 등 까다로운 조건
[환경일보] 지난 2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집행위)가 원전과 천연가스발전에 대한 투자를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지속가능 금융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 Green Taxonomy) 최종안을 발표했다.
이 최종안은 향후 4~6개월간 EU의회의 검토를 거쳐 과반수가 거부하지 않는 이상 확정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원전을 포함시킨 최종안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회원국들은 물론 상당수 유럽 민간 및 기관 투자자들도 반대입장을 밝혀왔고 확정 여부와 무관하게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원자력계와 일부 언론은 국내 녹색분류체계도 EU 그린 택소노미를 참고해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이번 최종안은 강화된 원전 안전성 개선 및 핵폐기물 처분책임 방침이 반영돼 있어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국내 원자력계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고강도 방침이다.
특히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확보 및 운영 세부계획 제출과 심의조건, ‘사고저항성 핵연료 사용’ 조건은 국내외 원자력계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그간 이 조항들의 삭제를 요청해왔으나, EU 집행위는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점만 2025년으로 연기했을 뿐 그 외 조항들은 최종안에 그대로 유지했다.
EU 그린 택소노미는 금융지원 조건이지만 각국 전력시장의 참고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이 조항들은 오히려 향후 신규 원전과 수명연장에 실질적인 규제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적 난제인 고준위 방폐장은 지리적으로 유리한 핀란드와 스웨덴만 확보했고, 이들조차 반세기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사고저항성 핵연료’도 국제적으로 반세기 동안 사용된 핵연료 설계와 원자로 설계코드까지 변경해 인허가과정을 거쳐야 하는 큰 변화로 개발시간과 비용은 물론 상용화 여부조차 불확실하다.
따라서 국내 원자력계는 전후 맥락과 내용을 무시한 채 'EU 그린 택소노미 원전 포함'이라는 헤드라인만 떼어 “EU가 원전으로 회귀했다”는 홍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보다 한세대 앞선 설계 반영
우리나라 원전은 이번 그린 택소노미 논란 이전에도 유럽이 요구하는 안전설계 기준과 큰 격차가 있어 유럽 전력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낮았다.
최근 준공된 핀란드의 올킬루토, 아직 건설 중인 프랑스의 플라망빌, 영국의 힌클리포인트 원전은 모두 프랑스전력공사의 EPR원전으로 이른바 선진피동형에 ‘코어캐처’까지 적용된 국내보다 한세대 앞선 설계다.
선진피동형이란 원전이 재난으로 정전상태에 들어가도 전력 공급 없이 자연대류와 중력을 사용해 원자로 노심을 지속 냉각시키는 설계개념이다. 또한 코어캐처는 원자로 노심이 용융하더라도 이를 더 확산시키지 않고 차단하는 설계개념이다.
그럼에도 EPR 원전들은 후쿠시마사고 이후 강화된 유럽의 안전규제로 인해 건설 공기가 무려 15년 이상 지연되고 있다.
거기에 이번 사고저항성 핵연료가 의무화될 경우 국내 원자력계가 수출할 유럽 원전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여기에 2050년 핵폐기물 처분장 확보조건까지 담겨있는 이번 EU의 보완위임법안의 엄격한 전제조건들을 감안할 때, 유럽 사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우리 정부가 안과 밖에서 지속가능성 부합 논란을 낳고 있는 EU 보완위임법안에 과도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이미 구축한 녹색분류체계의 일관성을 유지해 대내외적인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며 “녹색분류체계의 시작은 EU가 먼저였지만, 일관성과 신뢰성을 유지해 국내에서 먼저 실효적인 지속가능 금융체계를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