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사업장, 감정노동자, 건설노동자 안전보건관리 시급
서비스업 노동자 1000명당 보건관리자 1명꼴 적당···법개정 노력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일상회복.’ 늦추위를 보듬는 차 한 잔과 함께 김숙영 회장이 가장 먼저 건넨 단어다. 그는 2020년 6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속에 (사)직업건강협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하루 20만에 달하는 오늘날까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수호’라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해 왔다.

(사)직업건강협회 김숙영 회장 /사진=박선영 기자 

일상회복,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지친 이들에게는 다디단 기대로, 이를 실현시키려는 이들에게는 쓰디쓴 부담으로 다가오는 단어다. 을지대 교수로 생활단장을 맡고 있는 김숙영 회장은, 이날 인터뷰를 위해 의정부시에서 출발했다. 3월 개강을 앞두고 일상회복지원단 회의에 참가하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김 회장 자신은,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건강과 안전을 충분히 보장받고 있을까? 그는 지난 2년간 코로나 시국 속 노동자의 건강을 확인하고, 사업장 내 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김 회장은 택배노동자와 동행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에게는 기저질환이 있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한 노동을 한 것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27일 시행됐다. 그러나 50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고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 노동자’ 대부분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택배노동자 등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한 달간 50인 이상 사업·사업장 산재사고사망자는 11명, 50인 미만의 경우 16명으로 50인 이상에 비해 약 45% 높게 나타났다. 인원수를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2024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포함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 체계 구축 컨설팅을 시행할 계획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인터뷰가 이뤄진 만큼 김숙영 회장은 대선후보에게 전달하는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의 공약에 직업건강협회의 견해를 더했다. 우선, 그는 보건관리자의 정규직 채용을 제안했다.

보건관리자가 팬데믹 일선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기여한 공로와 헌신을 인정함과 동시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정규직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보건관리자 배치 확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 많은 업종에 더 많은 보건관리자들이 배치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제22조)을 개정해 보건관리업무에 감염병 관리를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보건관리업무 및 직업건강협회의 추진 사업에 대한 김숙영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직업건강협회 보건관리자 활동 모습 /사진제공=직업건강협회 

Q. 취임 인터뷰에서 보건전문가 현장 배치를 더욱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 수 대비 보건관리자, 안전관리자 수는 적절한가, 또 이들 간 협력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올해로 코로나 팬데믹 3년차에 접어듭니다.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로 우리 사회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업장에서 대규모 집단감염이 많이 발생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직업건강협회 회원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업장 보건관리자들입니다. 이분들은 각 사업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감염병 관리를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인력으로서 각 사업장에서 노동자들 감염병 관리를 해줬기에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정되게 작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올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습니다. 노동자들을 감염병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업종에, 더 많은 보건관리자들이 배치돼야 합니다. 특히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서비스업의 경우 노동자 5000명까지 보건관리자 1명을 배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자 1000명당 보건관리자 1명 정도가 적당합니다. 법개정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Q. 산업안전보건법 정착을 위해 협회에서 진행한 사업이라면

2020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의 책임 확대, 특수고용형태종사자의 보호, 발주자 및 기업대표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협회는 지난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예방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협회가 운영하는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했습니다. 고혈압, 당뇨 등 기초질환이 있는 분들의 건강관리가 되지 않고, 여기에 과도한 업무가 더해지면 뇌심혈관 질환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 연구소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택배노동자의 적정 노동강도를 위해서는 현재 업무에서 분류작업을 분리시키고,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사업국에서는 택배노동자들을 위한 맞춤형 보건교육 자료를 개발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습지교사, 대리운전기사 등 다양한 특수고용형태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직업건강가이드라인을 개발했습니다.

Q.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안전보건관리 사각지대에 대한 질 높은 감독과 실질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에 관한 목소리가 높은데, 협회 역할은 무엇인지

협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투 트랙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협회는 전국 사업장 보건관리자들이 회원인 조직입니다. 회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잘 알고 사업장에서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회원 역량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세미나를 진행했고, 매달 월례교육, 전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트랙은 안전보건관리 사각지대인 중소 규모 사업장에 협회 직원들이 방문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컨설팅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는 50인 이상 중규모사업장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하고, 노하우를 쌓아 내년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직업건강협회 보건관리자 활동 모습 /사진제공=직업건강협회
직업건강협회 보건관리자 활동 모습 /사진제공=직업건강협회

Q. 고위험 사업장, 취약계층 노동자의 안전보건 강화를 위한 사업 추진은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회 주요 사업 중 하나는 전국 22개 보건안전센터에서 실시하는 소규모사업장 안전보건기술지원사업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80%는 노동자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장을 방문해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안내하고 노동자와 사업주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행하고 건강관리도 실시하는 서비스입니다. 더불어 코로나 시기 과로사로 위험에 처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보건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의 뇌심혈관질환 예방과 정신건강을 위해 금연지원사업, 마음건강힐링센터에서는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 측정 및 관리사업, 자살예방사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Q. 노동자의 정서적 지원, 신체적 문제 보살핌 등에 관한 보건관리 비용이 현실적으로 너무 적다는 의견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업장들이 지출하는 노동자 보건관리 비용을 보면 법적으로 꼭 해야 하는 사항에 지출되는 비용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건강진단, 작업환경측정 비용이 보건관리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다양한 건강증진프로그램 운영비용, 감정노동이나 직무 스트레스, 우울감 등을 측정하고 예방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 비용,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는 보건교육 프로그램 개발 비용, 적정 인력 채용 비용 등 더 많은 비용이 투자돼야 합니다.

Q. 중대재해법 시행, 코로나19 3년 차에 달라진 보건관리자 역할과 이에 따른 역점사업이라면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보건관리자 역할이 더욱 중요해져 사업장 감염병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산업안전보건법의 보건관리자 업무에는 감염병관리 업무가 없습니다. 이런 부분이 법에 반영돼야 합니다. 그리고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합당한 지위와 권한이 부여돼야 합니다. 이러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직업건강협회는 협회 인력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TFT를 구성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다. /사진제공=직업건강협회 
직업건강협회는 협회 인력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TFT를 구성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다. /사진제공=직업건강협회 

Q.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안전보건기술지원사업의 지난 2년간 성과와 과제는

전국 22개 보건안전센터에서 소규모사업장 보건관리 기술지원사업을 진행하다보니 각 센터 인력 역량에 따라 서비스의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표준화하기 위해 2021년에는 본부에 ‘소규모사업장 보건관리기술지원 Task force team’을 구성했습니다. TFT에서 기술지원 사업의 업무 절차와 방법을 프로토콜화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소규모사업장 운영의 어려운 점이라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위탁 받아 운영하는 이 사업이 단가가 낮아 수행인력에게 충분한 보상을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업 노하우를 가진 경력자들이 계속 남아 이 사업을 해 주어야 사업의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이 남아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 직업건강협회에서 대선후보에 제안한 공약 5가지 >

 

1. 보건관리자의 업무에 감염병 관리 포함

2. 사업장 안전보건 인력의 고용 안정화로 직장인 건강관리 강화

3. 취약계층 노동자 안전보건관리 강화

4. 보건관리자 선임 전 업종으로 확대

5. 사업장 규모에 따라 보건관리자 적정 인원 배치

Q. 임기 내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과 진행 예정인 사업이라면

현재 건강증진개발원 등 보건복지부 산하기관들과는 사업장 건강증진사업, 자살예방사업, 결핵예방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환경부와는 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상담서비스(콜링유)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신규화학물질 증가, 장시간 근로로 인한 과로, 직장 내 괴롭힘 등 직장 문화적 요인, 미세먼지, 폭염·한파 등 자연적 유해요인의 등장에 따른 문제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업들을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1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끝에 김숙영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이루고 싶은 협회 사업으로 시대변화에 맞춘 노동자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들었다. 비대면 또는 원격으로 노동자 건강관리를 하는 스마트헬스케어가 그것이다. 김 회장은 “비대면 건강관리는 코로나 시기가 지나가도 여전히 시간을 내 건강을 관리하기 쉽지 않을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며 우선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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