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도 피할 수 없는 기후재난··· 근본적 원인은 기온 상승
민간 산불보호 계약제도 도입 및 산불진화 임도 마련돼야
[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올해 대형 산불은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
기후환경·산림·생태 분야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경고했다. 지난 4일에 시작된 강원도 삼척·강릉·동해, 경북 울진에 걸친 동해안 초대형 산불은 장장 9일 만에 진화됐다. 역대 최장기(231시간) 진화, 동시간대 최대(서울 면적의 41.2%, 2만4923ha)의 대형 산불로 기록된 이번 재난 사태는 이미 이전부터 예견돼 왔다.

최근 3년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발생이 확연히 빈번해졌다. 작년 러시아 연방 사하공화국에서는 228건의 산불이 나, 서울시의 20배 크기가 넘는 150만ha 가량의 산림이 소실됐다.
또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는 300곳 이상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며, 미국은 이미 12개 주에서 초대형 산불만 71건으로 4047㎢ 면적이 훼손됐다. 이 외에 중국 쓰촨성,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그리스 등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나타났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게 되고 겨울이 짧아지고 메말라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지질·해양 과학 연구소인 스크립스 해양연구소는 북미 서부 산맥에 설치된 400여개의 강설량 측정 센서 등을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봄이 예년보다 앞당겨 지면서 겨울에 쌓인 눈이 금방 녹아버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국내 산불의 피해 지역인 경북 울진군 덕구1리의 한 주민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아 마을 사람들 모두 걱정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산림청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금년도 3월까지 건조주의보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유엔 환경계획(UNEP)은 올해 열린 유엔환경총회에서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기후변화와 토지이용 변화로 인해 극대화된 산불이 최대 14%, 2050년까지 30%, 21세기 말까지 50% 증가하는 등 산불이 더 빈번하고 강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도 찾아온 기후재난··· 근본적 원인은 기온변화, 토양질
기후재난은 다른 얘기 같았던 우리나라에서도 눈의 띄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정 시기에 주로 발생했던 산불이 점점 예측 불가능한 시기와 장소에서 발생하고, 빈도와 강도 또한 강해지는 추세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예방 진화 연구실 권춘근 박사는 “매년 4월 봄철에 발생하던 산불 흐름이 점점 변하고 있다”며 “작년 2월에는 경북 안동에서, 2017년과 2020년는 5월에 강원도 강릉과 고성에서 산불이 난 적이 있다”며 “여러 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배경이 생기게 된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온도 상승, 풍속 강화, 습도 하락 등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1년부터 2020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30ha 이상을 태운 큰 산불은 대략 35건 정도 있는데 이 중 94%(33건)이 논두렁·쓰레기 소각이나 입산민의 실화다. 하지만 똑같은 불씨라고 하더라도 온도 상승, 가뭄으로 인한 낙엽 및 가지 연료화 등 자연조건이 받쳐줘야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산불에 취약하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3년 1차 치산녹화계획부터 국내 토양의 토대적 척박함으로 인해, 활엽수보다 화염 유지 시간이 긴 소나무가 잘 자랄 수밖에 없는 산림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이우균 고려대 환경생태공학과 교수는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종을 다양한 활엽수로 갱신해야 하지만 이는 토질부터 바꿔야 가능하다. 2000년도 동해안 산불 피해지역에도 이러한 문제에 입각해 참나무 등 활엽수를 다수 조림했으나, 20년이 지나보니 대부분이 죽고 다시 자생수종인 소나무 숲이 된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즉 산림청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활엽수가 자랄 수 있는 토양 개선 연구가 진척되기까지, 소나무 가지치기 및 밀도 조절 등으로 숲 가꾸기를 해야 어느 정도 산불 대형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간 산불보호 체계 강화 및 진화용 임도 개선 시급
산림생태 전문가들은 서둘러 민간 산불보호 계약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산림의 절반 이상인 67%가 사유림이다. 마땅한 정부의 관리 체계 없이 지번·지적에 근거해 파편적인 조림과 벌채가 이뤄지고 있다. 또 임산물 분야에서도 사유림을 통해 적극적인 사업을 벌이는 경우도 90%가 채 넘지 않는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아무리 좋은 산림정책이 있어도 현장에서 제대로 산림을 관리하기란 한계가 있고, 또 소유주는 소유주대로 인센티브 등 보상이 없으니 평소 책임과 권한을 갖고 산림 관리하는 동기 부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윤여창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불 관리’는 결국 ‘사람 관리’다. 정부에서 농촌에서 자행되고 있는 쓰레기 소각, 논두렁 태우기 등을 현실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로 설립된 산불 보호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 며 “산불은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사회가 동참해야 한다. 산불 보호 자원 조직이 참여하는 가구들에게 국유림·공유림 안에서 산나물이나 버섯 등을 생산, 판매할 수 있는 이용 접근권을 제공해 자발적인 ‘산림 보호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산불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산불진화 구조를 마련할 수 있으며,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가 도래할수록 식량 자급률이 20%채 안 되는 국내 식량위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산불 발화 이후 진화 체계 측면에서 ‘임도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에 전문가들을 모두 적극 동의했다. 이는 예전부터 수차례 나온 얘기지만, 정부 측에서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음에 전문가들은 다소 아쉽다는 입장이다.
대형 산불의 근원지에 가장 많이 서식하는 소나무의 경우, 과거에는 사람의 키 정도밖에 안됐지만 현재 별도의 소방장치 없이는 진화하기 어려운 크기로 변화했다. 적절한 임도 없이는 이번 산불처럼 연료가 다 탈 때까지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임도 개설은 초기 진압뿐 아니라 자연적으로 방어선 역할을 한다. 이는 인간 감시 수준 및 체계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로써 산불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는 없지만 도시·농촌, 초·중·고 등 계층별 안전소방 교육을 통해서도 대국민 인식 전환 등 여러 방면에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울진·삼척과 같은 대형 산불이 발생해서 150만톤의 CO2가 배출됐다. 이는 지구온도를 상승시켜 땅을 메마르게 해 산불을 극대화하는 등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 곧이어 다가올 4, 5월 달에도 이러한 대형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정부의 빠른 대책과 실행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