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안방마님이라 부르고픈 사람이 있다. 얼핏보면 후덕한 동네아주머니 같다가도 알고보면 잘잘못은 절대 그냥 못 넘기는 호랑이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채찍질 하면서도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인자한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바로 김명희 원장이다. 보건환경연구원이 생긴 이래 최초의 여성 원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됐지만 감투보다는 ‘일’ 그 자체를 더 즐기는 듯하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김명희 원장
“ 나는 일에 올인했다 ”

’78년 봄, 지금의 보건환경연구원에 연구사로 들어온 김명희 연구사가 25년만에 김명희 원장으로 탈바꿈했다. 보건환경연구원에 있는 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지만 아직도 일이 좋아 손을 뗄 수가 없다고 하니 천상 ‘일꾼’이다.
“저는 어떻게 보면 다른데 신경 쓸 일이 없어서 연구원에만 빠질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도 지금의 외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요. 아직까지도 후회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기에 후배들에게도 항상 ‘품삯받고 일하는 삯꾼이 아닌 일이 좋아서 하는 일꾼이 돼라’고 강조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서울시를 위한 진정한 일꾼이 되라고 당부하며 그에 못지않게 강조하는게 바로 ‘인간관계’이다. 일을 잘못하거나 업무의 실수는 윗사람이라도 나서서 책임져 줄 수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돌이키기 어려운 만큼 인화(人和)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명희 원장이 부임하기 3년 전만 해도 연구원내에서 소란스런 일들이 종종 발생했었지만 지난 3년간 별 탈 없이 지나온게 너무나 다행스럽고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아끼지 않는다.
이는 포용도 중요하지만 옳고 그름은 확실히 분간한데 따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서울시민 건강지킴이’

점차 무더위가 빨라지면서 보건환경연구원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총대를 둘러맨 김명희 원장. 아무래도 여름철 보건에 있어 식중독 예방이 중요한 만큼 현재 여름철 식중독 및 질병예방을 위해 비상근무를 하고 있을 정도다. 이와 더불어 최근 불거진 지하역사내 공기질에 대해서도 한마디 전했다. 
“전년에 비해 일부 수치가 낮아졌다는 결과를 발표했을뿐이데 ‘일부 역사내 수치가 빠졌네’, ‘수치가 다르네’ 등 의도적으로 속였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그런 말을 들으려고 조사한 수치를 공개하진 않죠. 국민들이 공기질에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그만큼 상대적으로 불신도 커지는 것 같아요.”
김 원장은 은폐할 것이었다면 애초에 공개하지도 않았을 것임을 강조하며 측정 방법이나 기준의 차이로 인해 빚어진 오해인 만큼 보다 표준화된 방법이 마련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고 전한다.
“예전에야 정책의 일거수일투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시정방침도 그렇고 오히려 ‘무조건 시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로 나가고 있죠. 그런 차원에서 공개를 하는 것인데 채소의 농약수치나 약수터에서 발견된 오염물 등 관련 사실을 알리면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시민들 역시 극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입니다. 더 조심하고 살피라는 의미에서 알리는 것인데도 말이죠. 결국 이러한 오해는 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하는게 아쉽습니다.”
의도와 다르게 시민들에게 알려질 때가 아쉽고도 힘들때라고 전한다.
올해 보건환경연구원에서는 실내에 존재하는 위생해충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골자로 한 실내공간에 대한 환경조사를 금년 안에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하는 일이야 너무 많죠. 하지만 저만 하나요. 직원들이 더 고생이죠. 하지만 천만 서울시민이 먹는 것 마시는 대기. 물, 쓰레기를 포함한 폐기물까지 보건원과 관련이 되는 만큼 시민 건강의 파수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18번 ‘여자라는 이유로’

여성최초의 연구원장으로 임명되고 3년이 지난 지금... 김명희 원장은 그간의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애창곡도 ‘남자라는 이유로’가 아닌 ‘여자라는 이유로’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개사한 노래를 악을 쓰고 부르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한다.
“초반에는 보다 힘들었었죠. 하지만 점차 시대가 여성관리자를 필요로 하고 여성우대정책을 펼치는 등 여성이 사회에 발 디딜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운이 좋아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현재 OECD 가입국중 여성관리자 비율이 최하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시대가 요구하는대로 여성관리자를 뽑으려 해도 정작 준비된 인재가 없는 실정에서 김명희 원장은 분명 준비된 인재였다.
어쨌건 내년 퇴임을 앞두고 김 원장의 마음이 심란할 것 같지만 오히려 초연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원장으로서 이제껏 펼쳐 놓고 마무리 짓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웠기에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김명희 원장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고픈 일도 많이 포기하고 오로지 일만 해왔으니까요. 회사에서 짬짬이 즐기던 그림도 직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안 비칠까봐 아예 접었고요.”
그림과 더불어 최근에는 고고학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예술활동만큼이나 운동도 즐기는데 그래봤자 퇴근후 집앞 실내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는게 고작이다. 이제야 배우는 중이라 잘 치지는 않지만 꾸준히 배워볼 계획이라고. 참고로 김 원장은 학생시절 농구선수로도 활약한 바 있으며 지금도 한강에 떨어뜨려도 헤엄쳐 나올 정도로 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퇴직후면 오죽할까’란 생각이 든다.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여행을 즐기고 꾸준히 붓도 잡고 운동도 부지런히 즐기는 등 계획을 빡빡하게 잡아놨으니 말이다.
이렇게 일이건 사생활이건 모든게 철저한 김명희 원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명 모두 그녀를 ‘여장부’라 부를 것이다. 본인을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 칭했지만 달리 말하면 치우침 없는 정도를 걸었다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그냥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김명희 원장의 말 한마디에서 직원들이 말하는 ‘욕심없는 원장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글·사진/강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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