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회장 정태헌

정태헌 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회장
정태헌 우리경제협력기업협회 회장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 땅에 꼭 묻히고 싶다···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가···
보리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었으면 원이 없겠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 초혼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작가 안부수)에 나오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처절한 증언을 전하는 글귀이다.

다가오는 6월3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16위, 강제동원 피해 생존사망자 유골 13위, 강제동원 피해유족의 유골 9위 등 모두 38위의 유골과 위패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잘못된 과거를 잊거나 되풀이 하지 말자”라는 의미와 함께 “타국이 과거 우리에게 저지른 치욕과 수모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와 함께 한일 간 관계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고, 전범국으로서 당연히 이행해야 할 피해국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포함한 관계 개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일본은 중일전쟁 이후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해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을 뒷받침했으며, 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조선인의 강제동원은 지속됐다. 강제동원에는 일본 정부와 재벌이 개입했는데, 조선총독부가 주축이 돼 우리 선조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해 조직적이고도 반인륜적인 행태를 저질러 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북 공동으로 유골봉환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아태평화교류협회(회장 안부수)의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동안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수는 800여만 명(국내외 포함 연인원)으로,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000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모든 노동력을 강제 동원해 전쟁을 위한 희생자로 삼았던 것이다.

특히 일본은 10대 소녀들과 유부녀들을 비롯한 조선여성들을 20여만 명이나 강제로 끌고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유린했으며, 강제로 연행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가족까지 노동현장에 불러들여 강제로 가정을 꾸리게 해 가족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약속한 임금마저 강제 저축 등 온갖 명목으로 착취했고, 저축이라는 명목하에 공제된 임금은 아직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 중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본의 혹독한 감시 속에서 전쟁터와 죽음의 고역장에서 총알받이와 노예노동을 강요 받았고,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기아와 질병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혹한 노동착취에 시달리다가 고통 속에서 원통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토록 그리운 고국에 살아서 못 가면 죽은 뒤에라도 고향 땅에 묻어 달라는 피맺힌 절규를 남긴 채 지옥 같은 강제노역 현장에 아직도 묻혀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선조들의 피땀으로 가꾸고, 지켜온 자랑스러운 이 땅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021년 7월 2일에는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만장일치로 우리나라를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우리나라의 높아진 위상을 인정받는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부는 우리가 개방성, 투명성과 민주성의 원칙을 통해 코로나19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해 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개방과 자유무역에 기반한 다자체제에 대한 일관된 정책과 행동이 이번 계기에 유엔 회원국들을 통해 인정받는 결실로 맺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 봉환은 국민과 국가의 의무

정부의 평가처럼 우리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며, 국제무대에서 요구하는 책임과 역할에 부합하도록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가교역할과 기여를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으로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고민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인정할 때 우리를 위해 희생한 선조들에 대한 예우에 대해서는 과연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이행해 왔었는가 하는 점이다.

2020년 8월19일 국회정책토론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및 명예회복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발표된 자료(허상수, 한국사회과학연구회)에 의하면, 해방 이후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발전을 거듭해 온 우리는 “2004년에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이’이 제정되면서 일본이 저지른 국가범죄의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특히 800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회’가 국무총리 산하조직으로 활동했으나 2016년 6월30일 자로 공식 해산됨에 따라 국가차원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직까지 일본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함께 피해를 준 전범 기업들조차 자국의 비호 아래 사실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본과 전범 기업들의 억지는 당사자인 우리가 명확한 사실 확인과 근거 제시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피해 사례의 체계적인 정리와 발굴을 위해서 국가차원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10여년간 활동 중이었던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회’를 정부의 상설조직으로 편입시켜 정예화 된 조직을 갖추지 않고, 민간에 떠넘기는 잘못을 저지른 결과가 크다는 것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 반도체 제재와 끊임없는 독도 도발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자평하듯이 우리는 국제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역할을 해야 하며, 우리 국가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K방역으로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 나가는 선도국의 이미지와 한류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문화선진국에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해서 태평양전쟁 피해국들과 연합해 일본의 잘못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파악해 국제사회에 알리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고향 땅을 밟게 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봉환도 우리 국민들은 같은 마음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더 이상 민간에게 미루지 말고, 그동안 미뤄 온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국민들의 유해 봉환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선조들의 피해 사항부터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각국의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정부 관계자들은 들어야 한다.

“역사의 진실 추구에는 시효가 없다”, “이것이다”라는 결론을 얻을 때까지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늦었지만 희생된 국민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한시 입법을 연장하든가 상설기구로 전환하든가 하는 대책을 제안한다”는 재일사학자 강덕상 교수의 제언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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