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를 넘어 생물다양성 평화를 향해

‘환경부와 에코맘코리아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녹색기자단=환경일보] 이주창 학생기자 = DMZ는 남북 간 정전협정으로 인한 비무장지대일 뿐만 아니라 인류와 생태계 사이의 정전지대이기도 하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 및 민족의 통일을 넘어 그 끝에는 인류와 생태계의 통일 역시 필요하다.

이 땅에 평화가 돌아올 수 있기를

지난 10월, 한반도의 가을은 고요를 잃었다. 9.19 군사합의를 어기고 여러 차례 이어진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한반도 생태계가 가진 슬픔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평화로운 땅과 바다를 흔든 수백 발의 포성은 산양과 반달가슴곰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고요한 가을하늘을 갈랐던 미사일과 전투기는 흰꼬리수리와 두루미의 귀를 찢었을지 모른다.

흔히 ‘전방’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북부 접경지역은 생태계의 보고다. 철원으로 시작해 화천, 양구, 인제, 고성, 연천까지 강원도 5개 군과 경기도 연천군 전역은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를 가른 248km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로 설정된 907만 제곱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 DMZ(Demilitarized zone)는 지구 전체에서도 손꼽을만한 생태적 가치를 가진다. DMZ는 1953년 7월 군사분계선과 함께 설정됐는데 내년이면 DMZ가 인류의 발걸음과 단절된 지 70년이 된다. 평화와 함께 이뤄진 인류의 번영에는 생태계 파괴가 따랐던 반면 전쟁으로 인한 인류와 자연의 단절은 미지의 공간 속 평화로운 생태계를 일궜다.

국립생태원은 2018년 DMZ 권역 조사 결과 종합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01종을 포함한 5,929종의 야생생물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는 한반도 멸종위기종 중 37.8%에 해당하는 종이 DMZ에 서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DMZ는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는 만큼 남북 생태계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겨울철은 북방지역에 서식하는 두루미와 독수리가 방문하며 여름철에는 동남아의 파랑새, 꾀꼬리 등이 머문다. 식물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재하고 있다. 김승호 DMZ 생태연구소장은 “폐허가 됐던 상태에서 생태계가 온전히 복원된 장소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비무장지대밖에 없다”며 DMZ의 가치를 강조했다.

희망의 땅 DMZ

야생에서 촬영된 산양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야생에서 촬영된 산양의 모습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DMZ의 생태계는 멸종위기종들에 희망의 공간이다.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산양 복원에 힘쓰고 있는 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는 2021년 복원한 산양 세 마리를 최초로 DMZ에 방사했다. 소목 소과의 포유류 산양은 환경 파괴와 무분별한 포획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종이다. 산양은 200만 년 전 지구상에 등장해 그 형질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유전학적 가치가 크다.

DMZ에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존재한다. 이번에 방사된 산양들은 DMZ를 통해 자유롭게 남북을 가로지르며 세력권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양구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는 이번 방목이 산양의 세력권 확산에 관한 연구로서 산양 증식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 전했다.

산양보다 앞서 종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멸종위기종으로 반달가슴곰이 있다. 식육목 곰과로 분류되는 반달가슴곰은 천연기념물 제329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이다. 반달가슴곰은 과거 한반도 전역에 분포했으나, 밀렵과 일제강점기 당시 감행됐던 해수구제사업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했다. 1996년 국내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6마리로 추정됐으나 2000년대 이후 활발히 진행한 복원사업을 통해 현재 지리산에 방사한 61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2019년 DMZ에서는 무인생태조사장비를 통해 최소 3마리 이상의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야생 반달가슴곰은 1999년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촬영된 이후 보고된 바가 없다. 환경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절멸된 종의 야생 서식이 확인됐다”며 “가능하면 유전자 조사 등을 시도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DMZ는 인류와 분리돼 생태계의 원시성을 유지한 한반도 멸종위기종들의 희망이다.

통일 그 너머로

천연기념물 제329호 반달가슴곰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천연기념물 제329호 반달가슴곰 /사진=이주창 학생기자

한반도의 평화 끝에 다다를 수 있는 DMZ는 남북의 정전 지역인 동시에 인류와 자연의 정전지대다. DMZ를 향후 생태학 연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자 한반도 생물다양성 및 멸종위기종 복원의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민족의 평화를 넘어 인류와 자연의 평화를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DMZ의 선례로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가 있다. 동독과 서독의 분리로 인한 비무장지대는 통일 이후 자연보존지역으로 설정됐으나, 그 과정에서 일부가 사유지로 팔리거나 개발되며 많은 생태계 파괴가 이뤄졌다.

생태학자들이 한반도 DMZ를 ‘그뤼네스 반트’보다 훨씬 큰 생태적 가치를 가졌다고 평가하는 만큼 인류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DMZ 생태연구소장은 “통일 이전에 ‘DMZ 자연생태 보호법’ 같은 법을 만들어 사전에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한반도 민족의 기원을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고 인간으로 변신한 웅녀라 묘사한다. 반달가슴곰의 절멸은 전쟁의 상처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우리 민족의 기원이 DMZ 속으로 숨어버린 것만 같다. 다시 돌아올 평화의 시대에서는 먼 옛날 한반도에 민족이 시작됐던 것처럼 DMZ를 시작으로 멸종위기종들과 한반도 생물다양성에 희망과 번영이 가득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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