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손실과 피해’ 보상 펀드 조성 합의

신탄소중립 국제질서 속 국내 기업 성장·도약 기회 찾아야

[환경일보]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갖는 합의들을 도출하고 막을 내렸다.

특히 개도국들은 이번 COP27이 30년 기후변화협약 역사상 가장 큰 성과를 도출한 회의였다고 칭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문제를 정식 의제로 논의했을 뿐만 아니라 손실과 피해에 대한 펀드를 만든다는 원칙적 합의까지 이끌어 냈으니 말이다.

COP27은 역대 어느 기후변화 총회보다 어려운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개최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며 국제적으로 유가와 가스 가격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에너지 위기에 대한 두려움은 고조되고,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펼치던 국가들조차 석탄발전소의 가동 기한 연장 또는 재가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도시의 문을 닫아걸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위기가 생기고, 범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히 다뤄야 할 사안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악조건에도 COP27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112개국 정상들이 참석해서 논의에 힘을 실어 주었다. 중간선거에서 선방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별도로 COP27를 방문,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는 강력하며 특히 최근 발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을 통해 청정기술과 인프라에 투자해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대통령에 재당선 된 룰라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도 첫 번째 해외 방문지로 COP27를 선택하고, ‘브라질이 돌아왔다’는 구호 아래 2025년 기후변화 총회를 아마존에서 개최할 의사가 있다고 발표했다.

신정부가 들어선 호주도 대폭 상향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함께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의사가 있음을 명백히했다. 한마디로 COP27은 탄소중립을 향한 전진은 결코 멈추거나 후퇴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 회의였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최근의 에너지 위기가 오히려 신기술 개발과 투자를 통해 인류가 처음 가보는 길, 즉 화석연료와의 결별과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 할 신사업, 신성장의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COP27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문제에 대응할 별도의 펀드를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24개국으로 구성된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1년 동안 논의한 후 2023년 하반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되는 COP28에서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손실과 피해는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에도 명시된 개념이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에도 반영돼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의제로 채택되어 정식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혹시나 이 사안이 개도국이 기후변화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 선진국이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의로 흐를 것을 우려해 미국과 유럽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토의 30%가 물에 잠기는 대홍수를 경험한 파키스탄의 사례나 날로 심각해지는 태풍, 홍수, 해수면 상승 등으로 개도국과 도서국들이 받는 고통이 가중되면서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물론 회의 기간 내내 몰디브, 투발루, 바베이도스 등 도서국들과 G77 의장인 파키스탄이 놀랄 만한 공조력을 과시하며 개도국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국제적인 NGO들의 지지를 받아 선진국을 압박하는 전략이 주효한 면도 있다.

대홍수로 물에 잠긴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 자파라바드 지역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대홍수로 물에 잠긴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 자파라바드 지역 /사진제공=세이브더칠드런

이 밖에도 선진국이 2025년까지 2배 증액하기로 작년 글래스고에서 약속한 개도국 적응 활동 지원도 가속화하기로 했고, 2025년 이후 대개도국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한 재원 규모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서 처음 논의된 선진국의 대개도국 기후변화대응 지원 금액은 연간 1000억불 이었는데, 2025년 이후 기후재원(Post-2025 Climate Fianance) 논의에는 4조 달러, 6조 달러 등 천문학적인 금액이 거론되고 있다. 화석연료와의 결별과 에너지 전환 등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이 그만큼 어렵고 대규모 투자와 기술개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 투자의 동원, 혁신 재원의 개발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개도국에 정책·기술 전파할 ‘그린 ODA 국가브랜드화’ 필요
GGGI·GTC·GCF 그린트라이앵글 적극 활용 가능

COP27은 우리에게 두 가지 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기후재원 문제에 있어 한국의 지위다. 손실과 피해 대응을 위한 펀드 설립을 두고, 미국과 유럽은 공여국 기반 확대가 추후 논의의 핵심임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30년 전에 채택된 기후변화협약 국가 구분을 가지고 자신들만 재원 공여의 의무를 지는 구조는 바꾸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피력한 바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주요 배출국 중 하나인 한국이 새로운 공여국으로 책임을 분담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 축소를 가속화한다는 우리 계획의 정교화 필요성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높은 수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계획(NDC)도 제출했다. 도전적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만들고 이를 매년 꼼꼼하게 점검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행 로드맵과 체계적인 점검이 없다면 우리의 목표는 목표에만 그치는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 가장 시급하게 다뤄지는 석탄발전 종식을 위해서는 어떤 시간표에 따라 진행할 것인지, 저소득층에 대한 화석연료보조금은 어떻게 전환시켜 나갈 것인지,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은 언제 종료할 것인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범정부적인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끝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탄소중립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기업과 기술이 성장과 도약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번 COP27에서 일본, UAE, 사우디 등 다수 국가들은 ‘기후 기술’을 주제로 홍보관을 구성하고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있는 기술을 홍보했다. 이미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선도자그룹(FMC), 글래스고탄소중립금융연합(GFANZ), RE100 등 다양한 이니셔티브들을 통해 탄소중립 전략과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변화를 기회로 삼아 도약하도록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개도국들의 모범이 되는 개발협력에서 우리의 지위를 활용해 그린 ODA를 국가 브랜드화 하고, 우리의 정책과 기술의 개도국 전파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 위치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녹색기술네트워크(CTCN) 송도사무소와 녹색기술센터(GTC), 녹색기후기금(GCF)도 적극 활용해 그린 정책, 기술, 재원의 3각 편대를 적극 활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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