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도시를 탐식하던 더위는 시원한 빗줄기에 잠시 주춤거리고, 그 틈새로 더욱 짙어지는 녹음이 가득한 오솔길.
알알이 상쾌함을 담을 바람 한 점이 귓전을 스치고, 길옆에서 하늘거리며 마중하는 꽃잎을 벗 삼아 사찰로 들어선다.
시야에 들어서는 정숙의 내음은 그동안 토닥이며 살았던 일상의 번뇌를 잠재우는 듯하고, 아까 그놈이 스치며 지나가는 풍경은 처마 끝에 걸려서 청명한 인사를 건넨다.
그래도 조금은 긴 여정이었기에 샘을 찾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약수 한 모금을 입에 물고 바라본 법당 안엔, 가족을 위한 염원을 손끝에 담아 엎드려 빌고 있는 어미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1208년(고려 희종 4) 원각(圓覺)국사가 창건하고 성창사(聖彰寺)라 불렀다. 1400년대 초에 봉덕사(奉德寺)로 이름을 바꾸었고, 1469년(조선 예종 1) 혜각(慧覺) 신미(信眉)가 중수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1971년 비구니 묘전(妙典)이 절을 확장하여 별당과 요사채를 새로 짓고 봉녕선원을 열었으며, 1975년에는 승가학원을 열었다. 뒤에 봉녕선원은 비구니 율원이 되고 승가학원은 1983년 승가대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9년 비구니 묘엄이 주지로 부임하고 1989년 도서관, 1991년에는 육화당(六和堂)이라는 대강당을 지어 비구니 교육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1999년 6월에는 봉녕선원을 금강율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개원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약사전·종각·금강율원·육화당·소요삼장원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상이 있고 불상 뒤로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등이 걸려 있다.
한편 약사전에 걸려 있는 영산회상도는 1878년에 제작된 것이다. 가로 198cm, 세로 124cm의 크기로 윗부분의 3분의 1쯤이 변색되었다. 칠성탱화 역시 1878년에 제작된 것으로 가로 118cm, 세로 144cm의 크기이다. 가운데에 치성광여래, 위쪽에 칠여래, 아래쪽에 칠원성군과 칠성을 그렸으며 인물 크기를 조절하고 구름을 이용하여 원근법을 사용한 점이 독특하다. 그밖에 1881년에 제작된 신중탱화와 1878년에 제작된 현왕탱화는 함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삼존불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삼존불은 대웅전 윗편 언덕에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모래가 많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마멸된 부분이 많다. 삼존불은 모두 편평한 느낌을 주는 양감 없는 신체, 턱을 앞으로 당기고 있는 모습, 옷 주름의 기법 등을 보이고 있어 같은 사람이 조각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전체적으로 양식과 표현기법에서 도식화된 느낌을 갖게 하는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봉녕사= 안규석 기자>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