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책 변곡점, ‘투명성·책임성·수용성’ 높일 기회

[환경일보] 우리나라는 경제 개발의 과정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취해왔다. 짧은 기간에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며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인프라 위주의 제도적, 사업적 관행 하에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해도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환경과 지역의 수용성 문제까지 고려하려면 신속이 능사가 아닌 ‘신중’한 의사결정이 기본이 돼야 한다.

정책이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기는 쉽지 않다. 때에 따라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환경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국민들은 탄소가 배출돼야 돌아가는 편리한 시스템 안에 갇혀 있었다. 불편이 수반되는 친환경의 생활양식을 유도하는 일은 어렵다.

소통을 통한 쉽고 명확한 전달. 이 원론적인 얘기가 결국 정책의 수용성을 높일 방법이다. 소수 전문가와 관료들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지 말고 수용자와 협업해야 가능하다. 일반 국민들의 의사를 신중히 반영해야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 절차에서 주민들이 참여한 것만 가지고 수용자와 제대로 협업했다고 하면 안 된다. 

환경정책은 변곡점을 맞고 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들에 스크리닝(screening) 제도 도입 의사를 밝혔다. 협의가 필요없는 사업은 평가 과정을 건너뛰되, 작은 사업이라도 환경적인 영향에 민감하다면 꼼꼼히 살피겠단 취지다. 사업의 환경영향을 미리 파악해서 그 정도를 상·중·하로 구별한 뒤 각각 차별화된 평가 절차를 진행한다. ‘열린 규제’ 콘셉트다. 

우려의 목소리는 작지 않다. 당장 정부가 입맛에 맞는 사업들의 환경영향평가를 면제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부처간 충돌도 예상된다.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하는 사업을 두고 왜 스크리닝 해서 못하게 하느냐라는 기싸움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정치권 등 국가가 미는 사업이라도 환경부가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스크리닝 제도 도입의 취지다. 다만 제도 추진의 과정에서 투명하고 책임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취지가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평가의 정확도를 높일 과학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중요하다. 또 이는 국민에게 알기 쉽게 전달돼야 한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의사결정에 귀 기울임과 동시에 그들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책 설계와 평가, 심의 등을 위한 여러 전문가 위원회는 대부분 비공개다. 참석한 전문가가 어떤 발언을 하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했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고 다양한 견해가 제기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과 국민 간 소통을 늘려야 의사결정은 신중해지고 그만큼 정책의 수용성을 높인다.

환경영향평가는 주민의견 수용 등 소통이 강조되는 환경정책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가 아닌, 사업 계획이 거의 끝나는 단계에서 이뤄져 왔다는 게 아이러니다. 신중한 의사결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환경부를 포함한 범정부는 스크리닝 제도에 대한 자구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자주 모니터링하고 결과에 책임지려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느리게 움직일수록 탁상행정 꼬리표를 떼는 기간도 길어진다. 환경정책은 소통을 통한 쉽고 명확한 전달이 분명 어렵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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