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변화에 대응한 도시재생 계획 필요
문화유산 접목한 ‘공공디자인’··· 원도심 활성화 기대

홍의택 가천대 교수 /사진=이채빈 기자
홍의택 가천대 교수 /사진=이채빈 기자

[환경일보] 전 세계 도시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유엔(UN)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4%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산업화로 도시는 끊임없이 발전했지만, 정해진 면적 안에 사람이 모이다 보니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노후 공간과 시설이 늘어나고, 녹지가 사라지면서 환경오염이 심각해졌다.

초기 도시계획은 사회적 기능 수행과 효율성만을 중시했다. 따라서 삶의 질을 높이고, 가치와 문화를 누릴 공간은 부족했다. 특히 집약적 성장을 이룬 한국의 경우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난개발과 좁은 도로, 밀집 주거 등으로 슬럼화 지역이 증가하고 있다.

도시 문제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기후변화로 재난재해가 빈번해지는 가운데 안전 기반 시설 없이 무분별하게 개발된 도시 곳곳에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점차 증가하는 도시 문제와 이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홍의택 가천대 교수는 “‘개발’보다는 ‘재생’에 초점을 둔 공공디자인이야말로 도시환경을 변화시키고, 우리 삶과 도시 문화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2000년부터 다양한 디자인 실험을 통해 현재 한국형 거버넌스 디자인을 추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 등의 디자인 관련 자문과 함께 판교교통시설물디자인(2006) 남한산성민속마을(2009) 등을 디자인한 공공디자인 전문가다.

공공디자인과 도시재생 분야 일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스웨덴 말뫼는 쇠퇴한 산업도시에서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거듭났다. 1985년 연간 2000t이었던 말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친환경 도시재생 이후 4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스웨덴 말뫼는 쇠퇴한 산업도시에서 신재생에너지 도시로 거듭났다. 1985년 연간 2000t이었던 말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친환경 도시재생 이후 4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스웨덴 유학 시절 ‘더 나은 세상’, ‘깨끗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한국을 돌아와 소셜디자인(사회적디자인)을 시작했는데, 외국과 달리 한국은 오피니언리더를 중심으로 거버넌스 디자인이 이뤄지고 있었다.

가천대(당시 경원대) 교수가 된 뒤 2004년 산업자원부는 지역사회와 산학협력이 활발한 대학 가운데 디자인 능력이 탁월한 대학을 선정, 지원하는 디자인 중심 대학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일종의 공공영역 디자인종합센터를 설립했다. 그중 하나가 가천대 퍼블릭디자인혁신센터다.

이때 만해도 공공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선진국에서는 이미 대규모 재개발 대신 지역 특성과 환경을 활용한 도시재생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시개발의 물결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한국의 도시개발이 대규모 수용 후 전면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도시개발은 토목 중심이 아닌 환경과 디자인과 문화예술, 지역균형발전 등 여러 가지 기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천대는 성남시와 협력해 간판, 버스정류장, 가로수, 보행자도로, 공원, 사회복지시설 등 도시경관을 디자인하고 지역 정체성을 높이는 도시브랜드를 개발했다. 이후 2기 신도시와 혁신도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판교라는 도시가 생기면서 공공디자인은 도시 건설에 있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공공디자인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한국은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성냥갑 아파트는 획일화된 도시공간의 상징이다.
한국은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성냥갑 아파트는 획일화된 도시공간의 상징이다.

도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이다. 기능적 측면만 고려한 과거 도시계획으로 난개발, 환경오염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밀고 다시 짓고, 밀고 다시 짓는 식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낙후된 원도심 재생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특성과 지역민 정서를 존중한 자족적·순환식 개발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달라진 모습과 변화에 대응해 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례로 초고령화 문제를 들 수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 대부분 도시가 40·50대, 그러니깐 산업 및 생산활동을 하기 편하게 조성됐다. 80·90대가 연금을 써가면서 사는 도시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초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면 어떻게 될까. ‘생산 중심의 도시’가 ‘소비 중심의 도시’로 살기에는 굉장히 불편하다. 귀농·귀촌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도시의 형태와 그 속에 사는 사람이 맞지 않는 ‘엇박자 시대’에 들어와 있다. 이에 대응한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최근 유니버설디자인이 화두다. 장애·연령·성별·언어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용자가 제품 및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다.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노화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겪듯 도시의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디자인에 있어 교수님이 가장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공리와 공생’이다. 모든 관점을 생태계로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실버타운과 장애인학교를 반대하는 이유도 공리와 공생이라는 가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나이가 들었으니 여기 모여서 사세요’라며 공간을 더하는 방식이 아닌, 도시 안에 노인들이 편하게 살거나 움직일 수 있는 계층이 설계돼야 한다. 20·30·40·50·80대가 각 계층을 이루면서 한 덩어리로 살아야 하는 거지, 분리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 학생들도 이 사회를 같이 살아가야 하는 구성원이다. 따라서 일반 학교에 들어가는 게 맞다. 물론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수업은 따로 편성해야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비장애인 학생들과 보낼 수 있도록 해야 사회 갈등과 차별을 줄일 수 있다.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유산을 보전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인상 깊다.

홍의택 가천대 교수는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한 공공디자인 전문가다.
홍의택 가천대 교수는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수행한 공공디자인 전문가다.

공공디자인은 ‘개발’보다는 ‘재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생긴 유산을 현대 문화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1970~80년대 선진국에서 낙후된 지역의 재생과 역사문화 인프라를 통한 지역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추진됐다.

이러한 공공디자인은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재활용하면서 현지인의 경제생활에 도움을 주고, 관광 특수까지 끌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근대산업유산 문화벨트화사업’을 실시, 다섯 곳의 사업대상지를 선정해 근대산업유산활용화를 추진했다.

다섯 곳은 ▷포천시 폐채석장(閉採石場) ▷군산시 내항일원 ▷신안군 증도(曾島) 태평염전 창고군 ▷아산시 도고온천역 중심의 폐철도부지 ▷대구시 옛 KT&G(구 담배인삼공사) 연초제조창 별관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선정 배경을 가지고 있다. ▷포천은 인간에 의해 황폐해진 폐채석장의 ‘치유(治癒)’라는 관점에서 ▷군산내항은 일제강점기 유산의 ‘다시보기’라는 관점에서 ▷신안증도염전은 유일한 ‘민족자본’이라는 관점에서 ▷아산 폐선부지는 철도유산의 ‘활용’ ▷대구의 연초장은 압축근대화 과정의 ‘도시산업의 현장’이라는 관점에서 선정돼 사업이 추진됐다.

아직 문화재는 아니지만 앞으로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유산 ‘서울의 찬가’(대중가요)처럼, ‘1호 육교’, ‘1호 편의점’도 미래유산이 될 수 있다.

전쟁 후 압축성장을 한 대한민국은 노동문제도 많았다. 서울시 동대문구 ‘평화시장’과 인근 일대에 조성된 ‘전태일 거리’는 산업화의 유물이자 노동운동의 역사로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미래유산이란 지금의 세대가 지혜롭지 못해서 이 가치를 알지 못하니, 이 가치를 알 수 있는 다음 세대로 이런 물건들을 송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게 보존해야 한다. 문화재에 대한 시대적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1960년대 만화를 문화재로 인식해 대영박물관에 전시했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로 어떤 것이 있나?

팬데믹이 완화되자 여러 곳에서 일이 몰아치고 있다. 학교 일도 있고 여러 과제를 맡고 있지만, 이 중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 곳이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인구소멸지역에 관한 프로젝트인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흐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올 한해 장수군을 들여다보고 면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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