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사로 세상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생물, 곰팡이

‘환경부와 에코맘코리아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문기훈 학생기자 = 지난 한 달의 날씨는 말 그대로 고온다습, 특히 습(濕)이 도가 지나치다고 느낀다. 공기를 가득 채우는 수분으로 항상 젖어있는 끈적한 느낌에 차라리 밖에 나가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비가 그친 날 아파트 외곽의 완충녹지 안으로 가보았다. 못 보던 것들이 하룻밤 사이에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버섯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색과 형태도 제각각에 어떤 것들은 강한 냄새를 풍기고 또 어떤 것은 만지면 먹물같이 녹아내렸다. 집에 돌아와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 볼수록 이질감과 의문도 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식물도 동물도 아닌 이것들은 도대체 어떤 녀석들일까?’

생물분류학에서 식물계와 동물계처럼 곰팡이도 균계라는 하나의 독립된 계를 차지한다. 곰팡이는 대부분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지만, 어디에나 있다. 흙 속, 깊은 바다 밑 충적층, 사막, 남극의 얼음계곡, 사람의 피부에도 있고 식물 속에서 살기도 한다. 변방의 존재가 아니라 동식물에 버금가는 큰 생물집단이다.

곰팡이가 무엇인지 규정하기란 간단치 않다. 하지만 곰팡이가 유구한 역사 동안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널리 퍼지고 번성할 수 있게 만든 두 가지를 꼽자면 균사라는 특징적인 구조 그리고 독특한 대사 능력이다.

균사와 버섯이 움직이는 법

원두 찌꺼기에 자란 곰팡이(상)와 확대경으로 본 균사체(하)
원두 찌꺼기에 자란 곰팡이(상)와 확대경으로 본 균사체(하)

효모처럼 일부 균류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곰팡이는 많은 세포가 실처럼 길게 연결된 미세한 관 구조인 균사를 형성한다. 균사는 가지를 치고, 융합하고, 서로 얽히는 과정을 통해 복잡한 그물 같은 구조인 균사체를 이룬다. 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1g의 흙속의 균사를 한 줄로 이으면 10㎞까지 이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아주 촘촘한 구조이다.

곰팡이는 외부로부터 먹이를 섭취해서 살아가는 생물이다. 곰팡이의 먹이는 식물의 죽은 조직에서부터 때로는 살아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균사체와 접촉한 먹이를 소화해 자기 몸 안으로 흡수한다. 자신의 주변을 소화하는 것이다.

균사체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균사의 끝부분인 ‘정단’에는 세포 조성물이 초당 600회에 이르는 속도로 표면에 융합하면서 자라나고, 수많은 정단은 군집처럼 행동한다. 균사체에는 수송관처럼 물과 영양분이 흘러 다닌다. 일부 실험에선 전기적 파동이 전달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균사는 서로 견고하게 겹치고 몸을 수분으로 급속하게 부풀림으로써 버섯이라는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의 압력은 아스팔트도 깨고 올라오는 먹물버섯의 사례처럼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버섯은 포자를 퍼뜨리는 수단 중 하나이고 사실 곰팡이종의 대다수는 버섯을 만들지 않고도 포자를 방출한다. 열매가 식물 일부이듯이 버섯은 곰팡이의 자실체, 즉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포자가 생산되는 일부분이다. 버섯은 균류의 세계가 품은 다양성의 특별한 단면이다. 버섯 같은 형태가 나타나기 위해선 수만 개 이상의 균사 정단이 생장 규칙과 전환을 동시에 따를 수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밝혀지지 않았다.

지름길을 아는 곰팡이

갈색먹물버섯, 이 종이 국내에서 아스팔트를 뚫은 사례가 있다.
갈색먹물버섯, 이 종이 국내에서 아스팔트를 뚫은 사례가 있다.

곰팡이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연한 네트워크를 진화시켰다. 곰팡이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카디프대학교 미생물 생태학 교수 린 보디는 목재분해곰팡이를 나무 블록에서 자라게 했다. 균사체는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다가 아주 작은 한 부분만 새 나무 블록에 닿았는데 균사체 네트워크 전체가 변화를 일으켰다. 새 먹이와 접한 연결을 강화하고 성과 없는 다른 부분은 거두어들였다. 더 확장된 실험도 진행했는데, 도시의 인구와 비례한 크기의 나무 블록을 영국의 도시 분포대로 배치했다. 각 블록에서 자라난 곰팡이는 실제 영국 고속도로망 같은 연결을 만들었다.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소통하는 곰팡이

곰팡이가 환경에 반응하고 생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균사체 안과 밖을 넘나드는 소통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질과 신호를 모두 아우르는 소통이다.

먼저 균사체의 물질 수송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러 개의 균사가 모여서 만든 파이프는 영양분과 수분을 빠르고 멀리 이동시킬 수 있다. 단거리는 균사 안의 세포 골격인 미세소관과 그 위에서 물질을 운반하는 단백질 모터에 의한 수송도 가능하다. 적은 에너지로 먼 거리를 수송할 때는 세포액으로 균사를 따라 흘러가게 한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물질 수송체계가 있기에 축구장 100배 면적의 뽕나무버섯 같은 거대한 균사체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균사체 일부가 먹이에 닿자 전체가 형태를 바꾸는 것과 같은 행동 조율을 위해선 균사체 안에서 신호가 전달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신호 물질이 균사체 내부를 따라 확산할 수 있는데, 이는 생물발광 부채버섯에서 발광 부위가 퍼져나가는 빠른 속도의 사례처럼 조율이 물질 확산 속도보다 빠른 경우는 설명할 수 없다. 여러 관찰과 이론이 있지만 전기 신호가 전달되는 이론이 이목을 끈다. 룬드대학교의 스테판 올손은 느타리버섯 등의 균사체에 측정을 위한 전극을 심고 실험을 진행했다. 균사체가 나무토막에 닿자 평소보다 전기파 발생 속도가 두 배로 뛰었다. 추가연구가 필요하지만 여러 단서가 균사체에 정보처리 경로가 있음을 보여준다.

곰팡이는 자기 몸 밖으로 소통할 때 화학물질을 이용할 수 있다. 곰팡이는 표면에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분자와 수용체가 결합하면 신호를 흘려보내 곰팡이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곰팡이도 다른 유기체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화학 정보를 이용한다. 깊은 땅속에 있는 송로버섯은 수십 가지의 냄새 분자를 만들어 낸다. 땅을 뚫고 나온 복합적인 냄새가 동물을 유혹해 버섯을 찾아 파헤치고 먹으면 이들이 포자를 운반하는 매개체가 된다. 수천 종이 넘는 송로버섯은 유혹하는 동물도 다양하다.

균사체의 성장을 포함하여 곰팡이의 한 살이 중 대부분은 이보다 더 미묘한 유인과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균사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균사끼리의 융합은 자신을 유인하는 물질을 분비함으로써 가능하다. 곰팡이는 화학적 소통으로 자신과 타자를 구분한다.

곰팡이는 식물의 뿌리와 공생체인 ‘균근’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 균근 곰팡이도 화학적 밀고 당기기를 한다. 나무뿌리는 포자 방출과 균사의 생장을 촉진하는 화합물을 흙 속에 발산하고 곰팡이는 식물이 잔뿌리를 많이 뻗도록 식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한다. 결합 후에는 신호 물질로 서로의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대사 과정도 새롭게 구성한다.

생태계를 연결하는 균근

확대경으로 본 뿌리, 사진 중앙부 뿌리에 붙은 가느다란 균사가 보인다.
확대경으로 본 뿌리, 사진 중앙부 뿌리에 붙은 가느다란 균사가 보인다.

어떤 곰팡이들은 토양에서 식물 뿌리와 연결되어 균근이라는 공생관계를 이룬다. 식물 성장의 가장 큰 제약요인은 인의 부족인데, 균사가 흙 속에서 식물 뿌리보다 가늘고 더 멀리 나아가 인을 캐내 식물에 공급한다. 식물이 흡수하는 인의 거의 100%, 질소의 80%를 균근 곰팡이가 책임지며 아연이나 구리 같은 무기질도 공급한다. 식물은 보상으로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 낸 에너지원인 당분과 지질을 파트너 곰팡이에게 내준다. 인이 부족한 환경에선 인 한 단위당 많은 탄소를 교환하고 풍부한 환경에선 반대로 작동한다. 심지어는 인이 풍부한 곳에서 부족한 곳의 나무로 수송하여 비싼 값을 받는 섬세한 거래 전략도 관찰된다.

어떤 식물과 곰팡이가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균근 관계의 결과는 달라진다. 균근 곰팡이 무리의 차이가 식물의 생장과 목질, 잎, 과육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밀, 딸기, 상추, 토마토 같은 작물의 품질에 차이가 났고 나무는 발육 상태가 달랐다.

자연에서 균근 네트워크는 여러 식물과 곰팡이가 연결된 더 큰 연결망, ‘공유 근균 네트워크’를 만든다. 다른 식물끼리 영양분, 신호 물질 등 여러 가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어린 난초에 영양분을 빌려주었다가 성체가 되면 돌려받기도 한다. 한 식물이 해충의 공격을 받자 다른 식물이 방어에 돌입하는 현상도 있다. 영양분을 빌림으로써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수정난풀 같은 식물도 존재할 수 있다. 공유 균근 네트워크가 생물간 상호작용 경로의 다양성에 이바지한다.

균근은 약 4억 년 전 화석에서도 발견되고 오늘날의 식물종의 90% 이상이 균근 곰팡이에게 의지해 살아간다. 태곳적부터 계속된, 다양한 식물과 곰팡이의 협력관계가 만든 융통성은 식물의 서식지와 종이 다변화하고 번성하는 토대가 되었다. 경운법과 화학비료, 살균제 도포 등을 동원한 집약적 농업은 균근의 수를 감소시키고 곰팡이 집단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연구가 있다.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비료의 사용량은 700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전체 농작물 생산량 그래프는 수평선을 그리고 있다. 균근은 토양 보전에도 중요하다. 흙을 붙들어주는 곰팡이 조직이 빽빽한 그물망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흙은 빗물에 금방 쓸려 내려가 버린다. 곰팡이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지 지구촌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곰팡이는 오랜 생명의 역사 동안 다양하고 강력한 대사 능력을 발전시켰다. 식물의 질기고 단단한 셀룰로스와 리그닌을 분해하고 어떤 종들은 암석, 원유, 폴리우레탄 플라스틱, 제초제, VX 신경독까지 분해할 수 있다. 에코베이티브라는 기업은 영지버섯의 균사체를 배양해 건축자재와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 곰팡이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인류가 마주한 여러 문제를 위한 해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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