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기후위기 대응 역량, 정부‧시민에게 분명히 밝혀야
국민 체감 재해 규모 불확실성··· 도시별 대응력은 비대칭

기존 재난 시스템, 기후위기 대응‧적응 중심으로 변환해야
“지역 정책 기조 바꾸는 데 시민들 지지와 협조는 필수”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은 “지역 단위 지속가능성 관리 책임주체인 지방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공적 책무로 인식하고, 이 책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이클레이 한국사무소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은 “지역 단위 지속가능성 관리 책임주체인 지방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공적 책무로 인식하고, 이 책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이클레이 한국사무소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지방정부가 좀 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25일, 박연희 이클레이(ICLEI, 세계지방정부협의회) 한국사무소 소장이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기후금융·산업컨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기후변화로 직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지방정부를 위한 대책을 국가가 마련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연희 소장은 해당 컨퍼런스에서 2045 탄소중립 실현을 선포한 인천시를 예로 들어 “인천시는 탄소배출량의 77%를 차지하는 산업 부문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기후위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시를 포함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지방정부의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국정 목표로 내걸고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 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7월10일부터 시행 중인 이 법의 취지는 지역 간 불균형 해소, 지역 특성에 맞는 자립 발전 및 지방자치분권, 궁극적으로 지역주도형 균형발전을 추진해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국민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지방시대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특별법에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 지방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및 적응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를 뒷받침할 국가 지원도 명시되지 않았다.

특별법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 생활 기반 확충과 지역 발전역량 강화(13조)를 위해 지역산업 육성, 인재 양성, 과학기술 진흥, 교통·물류시설 확충, 문화·관광 육성, 환경 보전, 복지·보건의료 확충 등에 대해 관련 부문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체계적으로 연계하고, 관련 부문에 대한 재정 지원 및 규제 완화를 추진(2항)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지역 발전역량 강화를 위해 환경보전 규제를 완화할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5월 발표된 ‘30대 국정과제 핵심 성과’ 항목에 환경 분야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시민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박연희 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는 지방정부를 지원하는 국가의 책무를 강조했다.

박 소장은 “지역 단위 지속가능성 관리 책임 주체인 지방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공적 책무로 인식하고, 이 책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지방정부는 정책 의지와 목표 달성 과정의 난점을 정부와 시민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25일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은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기후금융·산업컨퍼런스에 패널로 참가해 "기후변화로 직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지방정부를 위한 대책을 국가가 마련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지난해 10월25일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은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국제기후금융·산업컨퍼런스에 패널로 참가해 "기후변화로 직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지방정부를 위한 대책을 국가가 마련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모든 행동주체, 기후위기 적응 역량 강화할 때

올해 여름에는 특히 폭우와 폭염을 통해 재해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을 온 국민이 체감했다. 매년 극한의 기후변화 한계치가 경신되는 상황 속에서, 기존의 재난시스템을 기후위기 대응 중심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지난 7월 충북 오송 참사가 계기가 됐다. 재난안전 대책에 대한 지방정부의 책임과 기후위기 대응 인프라 확충을 국가가 신속히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3차 국가기후위기적응대책(2021~2025)은 기후리스크 적응력 제고, 감시·예측 및 평가 강화, 적응 주류화 실현이라는 3가지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추진 중이다. 이 중 적응 주류화 실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동주체의 적응 역량을 강화해 적응이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게 하려는 정책기조다.

올해 6월, 환경부를 포함한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적응대책 중간평가 결과, 부처와 지자체, 공공과 민간 등 적응주체 간 협업 및 협력 체계가 아직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는 기존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의 한계다.

“지방정부, 지역의 지속가능성 관리 책임 주체”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는 점점 커지고, 도시별 대응력은 비대칭적이다. 홍수, 폭염, 가뭄, 태풍 등으로 인한 지방정부의 피해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IPCC(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종합보고서는 ‘모두에게 살기 좋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기회는 신속히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영향 예측 등을 추진하고, 국민에게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통과제를 가진 세계 지방정부들은 난점, 노하우 등 대응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위기를 공감한 226개 지자체는 2020년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단일 국가에서 200개 이상의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세계 최초다. 2021년 5월 서울에서 열린 녹색성장 정상회의(P4G) 지방정부 특별세션에서는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2050 탄소중립’을 공동으로 선언했다.

박 소장은 “지방정부는 지역의 지속가능성 관리 책임주체다. 지방정부가 구체적 전략을 세우고 성공사례들을 만들어야 하고, 노하우 등의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지방정부 역할이 계속 논의돼 왔다”며 “이제 유엔협약이행보고서 제출 시에도 지방정부와의 협력과 성과를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결정문에서 ‘지방정부는 글로벌 협약 실현을 위한 공식 역할자’임을 명시했다.

“국가 역할 필요한 곳에 목소리 높여야”

박 소장은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지방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책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응 역량은 지방정부가 단독으로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지방정부가 역량을 갖추려면, 국가와 지역민이 추동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추동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 고무하고 격려하는 힘이다.

현실적으로 지방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전략을 구체화할 역량이 없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방정부가 지역 내 배출량을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곳에는 지방정부 총책임자의 권한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인천공항이나 인천산업단지에는 인천시장의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 이런 경우 국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박 소장은 “국가 역할이 필수적인 일에는 국가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시민 역할도 강조했다. 박 소장은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서는 시민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정책 기조를 바꾸는 데 시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받을 수 있다면, 장기적인 정책 실현에 있어 큰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5월3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이클레이 한국사무소에서 열린 2023년 제1차 이클레이 한국집행위원회 회의에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 손봉희 부소장,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이클레이 한국 대표시장 대행), 차성수 경기도 기후환경 에너지국 국장이 참석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5월31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 이클레이 한국사무소에서 열린 2023년 제1차 이클레이 한국집행위원회 회의에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 손봉희 부소장,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이클레이 한국 대표시장 대행), 차성수 경기도 기후환경 에너지국 국장이 참석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지속가능한 지방정부 위한 ‘말뫼의 약속’

이클레이는 지방정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네트워크다. 지방정부가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정보나 네트워크 등을 지원한다. 또한 지방정부가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동기와 정보를 제공한다.

세계지방정부협의회는 ‘지방정부는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주체’라고 정의한다. 세계지방정부협의회는 지속가능발전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방정부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국제단체다. 전 세계 2500개 지방정부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남을 포함한 56곳의 지방정부가 가입돼 있다.

5월31일 경기 고양특례시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이전 개소식 /사진제공=이클레이 한국사무소 
5월31일 경기 고양특례시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이전 개소식 /사진제공=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이클레이 한국사무소는 5월31일 경기 고양특례시 킨텍스 제2전시장으로 이전했다. 사무실 입구에는 2021년 스웨덴 이클레이 세계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채택한 말뫼(스웨덴의 지명)의 약속과 비전이 있다. 이는 2024년까지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이클레이의 구체적인 행동전략이다. 말뫼 계획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방정부는 어떤 접근 방식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밝힌 것“이라고 박 소장은 설명했다.

말뫼 전략 계획에는 ▷저탄소에서 탈탄소까지 이르는 총괄적인 저탄소 도시를 위한 전략 실현 ▷순환의 가치를 통해 지속가능한 도시 실현 ▷생물다양성의 중심주제인 자연기반해법(NBS)을 활용한 자연기반의 도시 실현 ▷다가올 재난과 충격을 예상하고 그 피해를 극복해 신속하게 본래의 도시기능을 되돌리는 회복력(Resilience) 증대 ▷사람 중심의 형평성 실현이 포함됐다. ‘사람 중심의 형평성 실현’이란, 약자에게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집중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약할수록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지속가능성’에 이르는 길, 내 집 골목에서 세계로 이어져

박 소장은 ”구체적 행동, 실천 없이 변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 이슈는 글로벌 이슈다. 전 세계 각 지역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한 글로벌 이슈인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 내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 필수라는 의미다. 혹 기술혁신이 일어난다고 해도, 결국 변화는 지역에서 적용해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지구적 지속가능성’에 이르는 길은 내 집 골목에서 세계로 이어져 있다. 국내 ‘지속가능성’ 개념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미래세대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시키지 않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경기도와 고양특례시의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유치에는 지속가능발전을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는 곧 세계의 도시와 협력하겠다는 의미다. 이클레이는 두 도시가 약속한 지속가능발전을 계속 협조하고 국제사회에 알려 지방정부가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하게 한다. 박 소장은 이것을 ‘국제협력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 소장이 전하는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살리는 한마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마지막 시간인 것이다. 이제는 약속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를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탄소중립 2050을 실현한다면, 재난이 와도 우리의 의지와 정책, 기술, 네트워크, 사회적 역량으로 피해를 상쇄하며 살아갈 수 있다. 만약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더라도 재난을 극복할 수도, 회복할 수도 없게 된다. 탄소중립에 대한 약속, 기후정책에 대한 국제적 약속을 실현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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