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은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

[환경일보] 지난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시민사회단체가 가해 기업 임직원에 대한 유죄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3년 가까이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을 지켜보며, 이들은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를 담아 가해 기업들의 유죄를 촉구했다.

홍지호 SK케미칼 전 대표와 안용찬 애경산업 전 대표 등 CMIT/MIT를 원료 물질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신세계이마트 등 가해기업 전직 임직원 13인에 대한 선고공판은 2024년 1월11일에 열릴 예정이다. 이들은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다가오는 12월 중순에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피해자 조인재씨는 “가습기살균제 이야기만 하면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문을 열었다. 폐암 피해자인 그는 10년의 투병생활로 많이 지쳤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어요. 무해하고 안전하다기에 사용했는데 병을 얻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어요. 호흡이 곤란해질 때는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아요”라며 “안전하다고 판매한 건 기업인데, 우리는 왜 당해야만 하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라며 애통한 심정을 전했다.

피해자 채경선씨는 “제품사용으로 인한 피해자의 생사고락이 문제의 본질인데 재판정에서는 지엽적인 논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초코파이가 있지만 제품에 대한 공통의 이미지를 상상하듯이, 가습기살균제도 건강상의 효과를 기대한 점이 공통적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지난 10월26일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결심공판이 진행된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환경시민사회단체와 피해자들이 유죄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지난 10월26일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결심공판이 진행된 서울고등법원 정문 앞에서 환경시민사회단체와 피해자들이 유죄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환경운동연합

이는 제품의 원료물질을 구분해서 대응하는 가해기업의 변호전략을 비판한 것이다. 이를테면 PHMG 원료에 기반한 옥시 제품은 위해성이 입증됐지만,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CMIT 물질기반 제품들은 아직 문제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욱 민변 환경보건위원회 변호사는 이 사건의 의의를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생산·유통 기업 관계자들의 형사책임을 묻는 재판이면서, 동시에 제품성분과 천식, 폐손상 등의 원인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남 변호사는 “만약 피고인들에게 다시 무죄가 선고된다면, 피해자들은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향후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어렵게 될 것”이라며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형사사건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의 특수성과 현재까지 제출된 증거 등을 종합할 때, 사건의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강산 반올림 활동가는 “정부도 걸러내지 못한 제품 안전성을 시민들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판단할 수 없다”며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 가해기업들에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또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강화된 화학안전 제도들을 윤석열 정부가 ‘킬러규제’로 몰아세우는 현실이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항소심 공판이 진행된 3년의 시간 동안 피해자들은 여전히 “내 몸이 증거”라고 호소했다. 법원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절규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홍지호‧안용찬 피고인을 비롯한 임직원 13인에게 1심과 동일형량을 구형했다. 지난 2021년 1월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고 다양한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함에도 보조적 연구수단에 불과한 ‘동물실험을 통한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사건의 인과관계를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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