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은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해이면서 동시에 교토체제(2008~2012년) 이후, 즉 포스트 교토에 대한 협상이 개시되는 해이기도 하다. 즉 이번 11차 당사국총회는 1차 감축기간에 대한 글로벌 기후정책의 불확실성이 제거된 것을 축하함과 동시에 2차, 3차 감축기간에 대한 체재 정비를 위해 전 인류의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는 교토의정서의 모체인 기후변화협약으로 다시 돌아가 그 명분에 부합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합리적인 인류의 자원 배분 차원에서 마련돼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인류의 자원 배분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합리적인 인류의 자원 배분은 환경정책의 주요 평가지표와 맞물려 효율성·효과성·형평성에 의거해 도출돼야 한다. 즉 환경개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적은 비용으로 개선효과(effectiveness)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환경개선의 비용 및 편익이 어느 한 그룹에 치우치지 않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여기서 효율성과 효과성은 비교적 기존의 환경경제 범위 내에서 최적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온실가스 감축의 노력을 교토 체제와 같이 선진국 주도로 지속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지, 느슨한 형태로라도 개도국의 참여를 촉구해야 하는지는 사실상 정도의 차이, 효율성의 차이가 있을 뿐 형평성 면에서 어느 것이 더 옳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올해부터 논의될 포스트 교토에 대한 협상은 아주 기본적인 과거 경제·환경 지표에 대한 리뷰에서부터 초장기 지표 예측을 둘러싼 책임 분배의 문제로 마라톤회의가 될 소지가 높다.
특히 교토의정서가 마련되기 이전의 상황과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현재의 시점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므로 교토의정서를 마련하는 데 들었던 시간과 경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즉 Cap&Trade의 닫힌 시스템의 교토방식에 의해 체제 전환을 이미 시도한 유럽연합과 온실가스의 기후변화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Baseline&Credits 방식의 열린 시스템으로 배출권거래를 자발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미국과는 커다란 시각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배출 규모가 작은 선진국과 경제성장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개도국들은 유럽연합과 미국 간의 힘의 균형에 따라 각자의 편익이 증대되는 곳에 손을 들 것이다. 따라서 올해 회의의 대부분은 교토 체제를 2013년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할 경우 얼마나 큰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하는지와 그 짐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효율성과 형평성간의 줄다리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무력하게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는 기후변화협약을 둘러싼 당사국간의 힘의 균형을 환경정책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환경정책면에서 볼 때 기후변화협약은 당사국들에게 ‘Non-zero sum’ 게임인 동시에 협조게임이다. 그러나 시장 면에서 볼 때 기후변화협약은 ‘Zero-sum’ 게임이다. 따라서 환경정책으로 해석을 시도하면 오히려 일부 당사국들의 배반으로 인해 목표한 환경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불확실성이 더욱 가중된다. 이를 우리는 미국의 교토의정서 탈퇴라는 이벤트로 목격했다. 그러나 이를 배출권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해석하면 기후변화협약의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제도로서의 기능’이 살아 있는 한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가치는 ‘0’이 아니므로, 기업의 전략은 배출권 시장에 대한 예측에 종속된다. 즉 온실가스 배출권에 대한 가치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한다면 우리나라 기업은 국내 기후정책이 자리를 잡기 이전에도 비용효과적인 저감사업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포스트 교토에 대한 배출권의 가격예측을 하락세로 본다면 기업의 생리를 감안할 때 winner’s curse를 자초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배출권 시장예측은 어떻게 보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현재 유럽연합 국가들은 온실가스 규제를 법제화해 국가간 감축목표 및 할당에 따른 배출권거래를 2005~2007년을 제1차 감축기간, 2008~2010년을 제2차 감축기간으로 각각 설정해 시행하고 있다. 배출권거래 가격은 교토의정서 발효 이전의 8.40유로에서 9일 현재 22.63유로에 이른다. 향후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 가격은 유럽연합 회원국에 할당된 배출권의 공급곡선, 즉 유럽연합 회원국의 한계저감 비용과 공동이행(Joint Implementation: JI)이나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를 통해 유입된 감축 크레디트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교토메커니즘 방식의 감축 크레디트가 개발될수록 배출권거래의 비용절감 효과는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연구 자료에 의하면 유럽연합의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0년 대비 7% 상회하고, 러시아의 시장 내 역할이 1차 감축기간 내에서 판매자에서 후반기로 갈수록 구매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배출권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교토메커니즘 방식의 감축사업 개발은 상승 가능성이 큰 배출권시장 내에서의 포지션을 유리하게 확보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토 체제와 비슷한 수준의 글로벌 감축목표가 포스트 교토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강력한 가정이 깔려 있으나, 교토체제가 기후친화적인 기술개발을 유도하는 촉매로 작용한다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비록 미국 주도의 ‘기후변화에 관한 아·태지역 기술파트너십’이 포스트 교토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로 작용하고, 유럽연합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권시장을 붕괴할 만한 힘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자동차와 반도체산업에 적용되는 sectoral commitment는 그 부문이 확대되면 확대되지 축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온실가스 배출권시장의 붕괴 요인은 오히려 배출저감 리포팅 및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견되는 부정이나 등록 오류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험 등 리스크관리 차원의 비용이 배출권거래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협약의 11차 당사국총회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은 온실가스 시장의 국제적 추이와 기후변화협약의 연속성에 문제가 없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그동안 환경관련 협약 및 규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데는 협약 및 규제의 명분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대응 방안에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가격 왜곡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협약은 교토의정서와 다르다. 기후변화협약의 적용 대상과 범위가 보다 포괄적이기 때문에 기업의 대응은 그 기업의 태생이 위험요소 회피적(risk-averse)일수록 기후변화협약의 명분을 수긍하는 것이 현명하다. 즉 장기적인 차원에서 비용효과적인 대응을 마련하고 이러한 기업의 노력이 충분한 경제적 유인 속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정부의 숙제를 덜어주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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