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교장(충북 진천중학교)


인간은 끊임없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살기 좋은 환경이란 풍족함·안락함·편리함이 조화된 환경을 말한다. 이런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쉴 새 없이 문명을 찾고, 찾은 문명을 일으키고, 일으켜 세운 문명에 광채를 씌워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우리는 만족할 만한 삶의 환경을 창조해 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인간 승리, 인간 극복이라고 칭송하고 찬양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참’일까. 한 번쯤 영혼의 눈을 들어 양심으로 자연을 바라보자. 거짓이고 역설이다.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수많은 세월 동안 환경을 파괴해 왔다. ‘살기 좋은 환경’ 속에서 희희낙락하는 삶이 아니라 역설적으로는 황폐하게 만들어진 환경 속에서 인간은 인간이 저지른 죄의 참혹한 대가를 치르면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과 환경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늘날 지구는 45억 년의 오랜 역사 중에서 매우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0여 년 동안 인간들이 저지른 환경 파괴는 45억 년의 역사 중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대규모적이고 그 정도에 있어서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행성이다. 아직까지 태양계 외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다른 행성이 있는지 분명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 중에서는 지구만이 유일한 생명체의 동산일 뿐이다.
60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이래 지구 자원을 가장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종으로 발전한 인류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또 과밀한 인구, 혼탁한 오염, 그리고 무자비한 자연 파괴 끝에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스스로를 몰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 과학 기술이 애초에는 이런 자연 파괴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뒤에는 과학 기술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과학 기술은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꿔놓았다. 지금 우리들의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안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환경오염이 더 이상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학 기술은 이제 성장 위주의 기술개발 대신 환경을 살리고 지키는 과학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야 한다.
지금까지 환경오염과 관련된 기술은 주로 오염물질이 발생한 후에 이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오염물질의 해가 사람이나 동물 등을 통해 드러난 후에야 그 대책을 세우는 식이었다. 따라서 수많은 기술이 인류와 자연 환경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무모한 생체 실험을 계속한 셈이다. 그러므로 당장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발생시킨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기술의 출현이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화석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를 줄이면서 오염물질의 발생 원인을 처음부터 없애거나 극소화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게 더 중요하다. ‘청정 기술’의 출현을 의미하는 말이다.
청정 기술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새로운 생산 공정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공정을 개량해 오염물의 발생 및 에너지, 원료, 물 등의 소비를 극소화한다.
둘째, 발생한 폐기물에서 에너지, 원료, 물 등을 회수해 다시 이용하거나 폐기물을 가공해서 2차 생산품을 만든다.
셋째, 기존의 제품과 성능은 유사하지만 환경에 대해 유해성이 적은 신제품을 개발한다.
이와 같은 공학적인 개발 외에도 앞으로는 창의에 가득 찬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장구한 앞으로의 세월을 지구 환경에 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후세 교육에도 보다 힘써 실질적인 효율성을 강구해야 한다.
학생들의 과학 교육도 환경 보존 교육을 전제로 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 경쟁력을 갖춘 신진 과학자, 미래 과학자, 환경 과학자를 길러낼 수 있다. 환경을 존중하지 않는 과학은 빛 좋은 소멸일 뿐이요, 인간 파괴의 진원일 뿐이다. 내서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자연친화적인 소설이 우리 시대에 무지개로 다시 떠올라야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그 아늑하고 정겨운 갈밭의 배경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일렁거리고 있음을 지금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허먼 멜빌의 ‘백경’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자연이 살아서 숨 쉬는 그런 자연, 그런 환경에서 우리도, 우리 후손들도 살고 싶어 한다.
‘살아 있는 환경 교육, 간절한 환경 보존’의 의식이 우리 성장하는 학생들은 물론이요, 전 인류가 가슴에 품고 빛나는 태양을 향해 미사를 올리고 푸른 자연의 제전에 참배하는 경건함을 마음으로 다짐하고 생활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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