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삼희 전문위원
[환경일보] 겸재가 한강변 경승지를 그려 모은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독백탄(獨栢灘)이 등장한다. 독백탄은 한성백제 시대 신성시하던 하남 검단산과 남양주 예봉산 사이 형성된 협곡부의 강 바닥에 암반과 굵은 자갈로 이루어진 물살이 거센‘여울(灘)’이었다. 한편 이런 협곡부의 시점 및 종점 부근에는 오히려 토사가 쌓여 넓은 모래섬이 생기기 마련이다. 겸재의 진경산수화인 독백탄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풍광과는 달리 뗏목을 실어 나르는 뱃사공한테는 이곳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을 게다. 조선시대 대건축가인 다산의 생가가 위치하기도 한 이곳에 2600만명의 생명줄인 팔당댐이 들어서서 잔잔한 호수로 탈바꿈했다.
하필이면 이곳에 언제 누가 어떤 계기로 댐을 쌓아 팔당댐으로 명명했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지인인 정상천 박사가 집필한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의 목차에서 ‘팔당댐, 프랑스 자본과 기술 지원으로 건설되다’라는 타이틀이 하천 및 수자원에 대해 연구하는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저자가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근무하는 동안 근대사 중심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한-프랑스 관계 자료를 발굴해 기록해 둔 자료집이다. 우리나라 수자원개발에 따른 기술과 자본의 원천은 주로 미국이나 일본 혹은 독일일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팔당댐의 탄생은 당시 빈곤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한국인의 모습에 감동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샹바르’ 대사(한국 주재기간: 1959~1969)의 역할과 헌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팔당댐은 1980년대 초 중화학공업 시대를 펼치고자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경제개발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전력 생산을 1차 목표로 삼으면서 추진되었다. 한국전쟁으로 남북이 갈라져 전력이 턱없이 부족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물길이 협곡부로 이루어져 수력발전소를 짓기에 좋은 북한강 수계를 중심으로 기존의 청평댐 수력발전소에다가 의암댐, 춘천댐 등 수력발전전용 댐을 축조하던 즈음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력발전뿐만 아니라 장래를 위해 생활·공업용의 용수도 확보하고 관광자원으로 동시에 활용할 댐이 더 효율적이겠다고 판단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만족시킬 댐 위치로는 수도 서울에 인접하고 남한강, 경안천의 물을 동시에 충분히 담을 수 있는 독백탄이 최적지였던 셈이다.
50년 전 어려운 시절 주한프랑스대사 나서 명물 완성
‘팔당 샹바르 댐’으로 개명하고, 한-불 우호 증진해야
하지만 국가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당시 190억원이라고 하는 엄청난 건설비 확보도 난제이고 댐 축조 및 운영 기술자도 태부족이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어려운 상황을 잘 이해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샹바르 대사였다. 그는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높지 않다고 보던 프랑스 본국을 적극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1963년 팔당댐 설계 및 시공에 대한 기술용역을 체결하고, 1965년에는 프랑스 차관 5625만 프랑의 계약도 이끌어 내면서 기적을 일구었다. 이로써 프랑스에 의한 한국인 기술자 양성과 함께 1973년 12월 10년간 설계 및 공사기간을 거쳐 수력발전기 4호기까지 마련한 팔당댐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수력발전기의 시운전을 거쳐, 정확히 50년 전인 1974년 5월 24일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공식적인 준공식이 열렸다.
현재 연간 전력생산량이 2억5600Kw인 팔당댐의 1차 목표가 전력 생산이었다. 이런 연유로 한국전력주식회사(KECO)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후신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전력 생산량과 홍수조절 기능은 비단 미약하지만, 시간을 거치면서 용수 기능을 강화해 왔다. 이 덕분에 체류기간 5.4일, 평균수심 6.5m(최대수심 24.3m), 호반둘레 77km, 만수면적 36.5㎢, 저수용량 2.44억톤, 상수원수 공급능력 817만톤/일으로써 수도권 2600만명의 생명줄이 되었다. 팔당댐 가까이 잔잔한 호숫가의 카페를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등 원래에 기획했던 관광자원으로도 가치를 더하고 있다.
우리나라 댐 등 수자원시설을 관리하는 주체는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지자체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하다. 2023년인 작년 소양강댐 준공 50주년을 맞이해 환경부와 강원특별자치도 주관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치른 바 있다. 팔당댐의 저수용량은 29억톤의 소양강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물 부족 국가로서 수도권 시민들이 물 부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용수공급 능력에서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소양강댐 못지않은 수자원시설물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4년 5월 24일 공식적인 준공식을 가진지 올해 50주년이 되는 팔당댐을 둘러싸고 기념행사를 한다는 어떠한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통상 5월이면 물 관련 각종 학회나 협회에서도 학술발표회가 많이 열리지만, 팔당댐 이력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팔당댐 준공 50주년을 맞이하면서 팔당댐 건설을 위해, 또한 한국을 위해 헌신 봉사한 당시 주한프랑스 대사관의 샹바르 대사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한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현 팔당댐을 ‘팔당 샹바르 댐’으로 개명해 영원히 기리고자 제안한다. 이를 계기로 한·불 우호관계도 한층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