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상(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김홍상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10월 19일 제67회 국정과제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물관리정책’ 차원에서 ‘물관리기본법’ 제정과 ‘물관리위원회’(가칭)의 신설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제한된 자원으로서 물에 대한 합리적 이용 및 관리,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구성요소로의 물 환경의 보전과 건전한 물 순환체계의 유지가 지속가능한 물관리정책의 핵심 과제로 제기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이다. 이러한 논의에서 핵심적인 논란거리는 물관리체제 개편과 수리권의 정비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를 풀어가는 궁극적인 방안이 바로 유역물관리체제 구축이라 할 수 있다.
통합적 물관리체제로서 유역물관리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들 동감하는데, 그 실천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물의 배분과 관리 방식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물관리체제는 자연 환경적 배경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된 사회·경제·문화적 특성을 지니면서 발전해왔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경우 연중 강우 패턴이 안정되어 수량관리의 문제가 거의 없음으로 인해 수질관리에 중심을 두어 환경부서 중심의 관리체제가 유지되어 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강우의 계절적 집중과 가뭄기에 집중된 영농작업(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 농작물의 생산)으로 관개용수 개발을 위한 대부분의 계곡이나 하천에 저수지나 보를 개발하여 왔다. 어느 것이 선진적이고 합리적이냐고 논란 삼을 필요가 없다. 수질과 관련해서도 우리의 선조들의 인식과 유럽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시골 할머니께서 여름철 물놀이 하는 아이들이 하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보며 아이들을 나무라시는 도시 엄마에게, “괜찮다. 곧 태풍이 온다. 태풍과 함께 온 큰 비가 말끔히 청소해줄 것이다”며 말씀하신다. 실제 여름철 수질 오염으로 이끼가 생겨 미끌미끌하던 물 속 돌들이 태풍과 큰 비 후에 까치까칠해지고 물이 깨끗해진다. 그리고 치수와 관련해서도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여 큰 물길이 치받는 곳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안전한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냥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살아 왔다. 너무나 환경친화적인 삶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 발달, 물의 이용자는 하천의 하류 지역에 집중되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자연친화적인 삶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되었다. 그 결과 어느 곳은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어느 지역은 홍수 피해로 난리이다. 물 이용을 둘러싼 갈등만이 아니라 물이용에 따른 규제 피해자와 물 이용자간의 비용분담 등을 둘러싼 갈등도 생기고,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를 벗어난 물의 이용과 이로 인한 환경오염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제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모든 사람과 자연이 서로 합의하여 생존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이를 위해서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현존하는 사람들간의 이해 갈등 조정,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를 위한 합의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유역이다. 유역내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간의 합의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물의 배분, 자연의 허용 범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사회경제적인 성장 과정에서의 인간들의 삶의 질 제고 등 다양한 과제를 동시에 풀어나가야 한다. 수리권 정립 과제도 유역단위에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 총량 관리 개념이 성립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수리권 거래 제도가 성립될 수 있으며 나아가 물의 배분 문제가 나름대로 효율적인 경제적 제도 속에서 풀려나갈 수 있다. 도시의 성장과 발달도 바로 유역 단위에서 물 환경의 허용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 관리계획과 분리된 도시계획, 국토개발계획의 남발은 유역변경을 요구하게 되고, 자연환경을 크게 훼손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억제하는 일은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이해갈등을 부추긴다. 그만큼 유역관리체제의 구축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필자는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구축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환경부, 건교부, 농림부, 산자부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물관리체제를 통합적 관리체제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행정조직도 조직이기주의 문제와 별도로 우리나라의 물 이용·관리 관련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지니고 발전되어 왔으며, 각 시대적 상황하에서 합리성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유역물관리위원회 등의 신설은 장기적으로 가칭 ‘국토환경부’의 신설(국토 및 물 관리 관련 부처통합)을 고려하면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때 가능할 것이다. 단순히 행정편의 차원에서 환경부, 건교부 등 어느 한 부서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실효성도 적고 부작용도 클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용수의 절반을 사용하고 있는 농업용수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는 농업인의 농업용수이용료 납부 등 효율적 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기초적 식량인 쌀의 안정적 생산기반 구축과 농업인의 소득 안정 문제 등이 선결되어야 한다. 농업의 구조개선과정과 맞물려 농업 부문에서 농업용수이용료 부담, 수리권 거래제도의 도입은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요컨대 물관리체제 개편 논의, 유역관리체제의 구축은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외국의 경험에서도 거의 30-4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지금 정부에서 준비 중인 물관리기본법 제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첫걸음을 내딪는 것에 불과하다. 유역물관리체제 구축을 위한 물 이용 관련 체계적인 자료 정비, 행정조직 재편 방향 정리 및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단군신화에서 미련하지만 우직한 곰은 인간이 되어 우리의 조상이 되었으며 참을성 없는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상징을 우직한 곰이 아니라 참을성 없는 호랑이로 삼고 있다. 너무나 쉽게 과거 경험과 역사를 잊어버리고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인내가 부족한 우리의 문화는 왜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와 곰이 바뀐 것일까 ? 곰의 후손은 모두 일본 구마모토(熊本) 지역으로 이동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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