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곤(서울대 교수·국제경관 및 생태공학 컨소시엄 부회장)



쌀 협상결과에 대한 비준 동의안이 여러 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쌀 개방과 관련한 농민들의 대규모 항의 집회가 전국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쌀시장의 개방에 대비해 119조원 규모의 초대형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늘어만 가는 휴경지 습지의 보전과 지속가능 이용에 대한 대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
현재 습지는 거의 모든 휴경지와 한계농지에서 발달되고 있다. 휴경지란 쌀생산조정제에 의해 일정 기간 농사를 안 짓는 농지를 말한다. 반면 한계농지는 물이 고이거나 주변 경작조건이 좋지 않아 농사짓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지를 말한다. 우리나라 휴경지와 한계농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 자료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지만, 기존의 통계자료(농림부)를 활용해 유휴농경지 면적을 산출해 보면 유휴농경지 면적은 2004년을 기준으로 약 2만9380ha이다. 이는 농지면적의 1.6% 정도에 해당되고, 전국적으로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유휴농경지의 면적이 계속적으로 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고, 이는 우려되는 사안이다. 한편 농지 습지면적의 증가는 유휴농경지 면적의 증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즉 습지학적으로 볼 때 농지 자체에도 물이 고이는 지역 혹은 습윤 토양에 발달된 인공적인 2차 습지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휴농경지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유휴농경지 습지가 새로운 형태의 환경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따라서 유휴농경지 습지를 현명하게 관리해 쌀시장의 개방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를 줄여주는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방향은 지속가능농업이 농지정책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휴경지 정책도 유역단위 습지관리 차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이 시점에서 관련 정책들을 수립함에 있어 도움을 주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농업생산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속가능농업의 입장에서 자연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농업재화 및 서비스 생산과 통합하는 전략(Natural and Agricultural Inter-cropping Strategies)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휴경지 습지의 현명한 관리를 통해 생태관광 상품의 창출, 생물다양성 증진을 통한 생명과학 원료의 생산, 국토생태축의 제공, 그리고 농촌 어메니티(Amenity)의 향상을 통한 부가가치의 창출은 물론 자연재해 없는 농촌 등 새로운 농업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유휴농경지 습지보전과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에서 ‘맑은물법’ 404조와 ‘식량안보법’에 의거해 1985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농지 습지보전프로그램(Swampbuster)은 주목해 볼 만하다. 이 습지보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농민에게는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혜택을 받는 농지에는 벼를 포함한 습지 작물을 재배하는 지역도 포함된다.
물론 습지지역을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규정에 따른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유럽에서도 EU회원국가에 매년 할당되는 휴경지를 이용해 생태네트워크를 조성토록 유도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토지 소유주는 환경보조금이나 인센티브의 수혜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와 같은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지 않아 유휴농경지 습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혜택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앞으로 유휴농경지 습지 직불제나 보조금제도 등이 검토되고, 관리 거버넌스 구조도 마련돼야 한다.
한편 유휴농경지 습지는 공유화하거나 대체습지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셋째, 유휴농경지 습지의 정확한 실태를 하루빨리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 유휴농경지의 유형별 습지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다음 이들 습지에 대한 기능과 가치평가를 통해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할 습지와 지속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습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존해야 할 유휴농경지 습지지역을 지정하지 않고 있어 각종 개발 사업으로 매년 상당한 면적의 유휴농경지 습지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 문제는 거의 모든 분야와 상호 관련성을 가지는 것으로 지구촌 통합경제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화개발아젠다(DDA)’ 협상을 비롯한 어떠한 개발의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한 대책의 관점에서 휴경지 습지가 다뤄지길 기대해 본다. 그동안 휴경지와 한계농지 습지는 그 기능과 가치에 걸맞은 관리가 되지 못했다. 정부는 농촌습지시스템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관리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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