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우리 시대 언론의 자화상

[환경일보] 공인(公人)이란 본래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하는 기자와 같은 직군도 여기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까지 공인이라는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이유에서. 그래서 연예인에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고,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할리우드의 연예인들이 마음껏 정치적 표현을 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정치에 대한 소신 발언을 했다가는 곧장 ‘좌빨’, ‘극우’와 같은 수식어가 달리고 섭외가 줄면서 생계에 막대한 영향이 미친다.

물론 우리의 문화는 할리우드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여전히 조선시대 유교문화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단지 만만한 연예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진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공직자나 정치가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대하거나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걸그룹인 블랙핑크의 제니는 이탈리아 카프리 행사 참석 비하인드를 담은 영상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중 실내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면서 지적을 받았다.

SM의 걸그룹인 레드벨벳의 슬기는 공항에서 매니저와 신발을 바꿔 신었다는 이유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불쌍한 매니저에게 하이힐을 신기고 자신은 운동화로 바꿔 신었다는 이유에서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사과를 했지만 후속 보도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다른 기사와 엮어 확대 재생산됐다. 물어뜯을 수 있을 때 마음껏 물어뜯는 언론의 하이에나 근성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을 제공한 탓이다.

솔직히 말해 그게 그렇게 전국민적으로 욕을 들어먹을 일인가? 신발 바꿔 신은 거야 발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고, 실내흡연은 잘못된 일이지만 끽해야 과태료 감이다. 누구를 모욕한 것도 아니고 상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나?

천만 유튜버 쯔양은 자신의 매우 불행한 과거사를 고백했다. 돈을 지급해서라도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어쩔 수 없이 고백한 것은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유튜버들 때문이었다. 불행한 과거를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약점으로 삼아 돈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수사단계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돈을 받은 정황이 이미 드러난 사람도 있다.

대중은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이들을 욕하지만 필자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화류계 출신임을 속이고 연예인으로 데뷔한 여성을 상대로 돈을 뜯어냈다는 전설의 기자 선배가 떠올랐다.

재벌 회장의 스캔들을 발견했지만 보도하는 대신 막대한 금액의 광고로 입막음을 해서 회사의 귀여움을 듬뿍 받았다는 전설의 기자 선배도 생각났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자신의 인맥을 뽐내기 위해 여자 연예인을 그 늦은 시간에 불러냈다는 전설의 기자 선배 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리고 사회를 감시해야 할 기자들이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고, 회사는 광고를 뽑아먹으며, 인맥 과시에 동원되는 행위는 사이버 렉카 따위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다. 게다가 사이버 렉카와 달리 사회적인 존경까지 받는다.

사실 연예인들보다 더 스캔들이 많은 직업은 정치인과 재벌이다. 하나는 권력으로, 다른 하나는 권력+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벌과 정치가의 성 추문은 신기하리만치 적다. 아무리 정적이라도 아랫도리 이야기는 서로 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이라도 맺었기 때문이리라.

또 다른 이유는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살점에 뼈까지 발라먹어도 뒤탈이 없지만, 정치인이나 재벌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언론중재위원회는 물론이고 소송을 포함한 뒤탈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 진정한 ‘분노 조절 잘해’ 직업은 기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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