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수 국립산림과학원장

[환경일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숲이 기후변화와 자연천이, 대형산불과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점차 쇠퇴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소나무숲 보전 전략이 필요하며, 소나무만은 적극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는 2005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을 제정하며 확인했다.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매년 많은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소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소나무를 왜 가장 좋아하게 되었을까? 앞으로도 한국인은 소나무를 가장 좋아할까? 이 글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질문에 답하기 전 우리나라 소나무를 소개한다. 소나무는 중생대 백악기부터 한반도에 살고 있는 자생수종이다. 소나무는 한반도에 가장 넓게 분포하는 수종으로, 소나무숲은 현재 한반도 산림의 약 20%를 차지한다. 한반도 고유종인 소나무는 우리에겐 흔한 나무이지만 지구로 넓혀 보면 귀한 나무다. 한반도와 일본, 중국 동부 일부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은 분포 범위가 좁고 일본은 소나무재선충병 대발생으로 많이 사라졌다. 한반도 소나무가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까닭이다.
전국 산림 25%, 소나무 가치 찾고 지속가능 관리 방법 찾아야
먼저, ‘한국인은 왜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1991년부터 2023년까지 8차례 수행한 수종 선호 조사에서 소나무는 예외 없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선정됐다. 북한 정부는 2015년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 국수(國樹)로 소나무를 지정했다. 분단과 관계없이 한국인은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요한 나무로 인식하고 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740종 나무 가운데 소나무는 우리나라 국민 절반 정도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애국가 2절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나무 가운데 으뜸 나무”라는 상징성만으론 한국인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한국인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를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세 가지 특성에서 찾았다. 즉,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하게 된 원인은 모든 나무 가운데 소나무가 으뜸이라는 유교적 상징성(으뜸 나무), 송정(松政)으로 대표되는 국가로부터 강제된 소나무의 중요성(중요한 나무),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소나무의 접근성(늘 보는 나무)에 있다고 보았다.

첫째, 소나무는 ‘모든 나무 중 으뜸 나무’(百木之長)로 인식됐다. 특히 성리학을 국가 통치와 윤리 바탕으로 여겼던 사대부가 그렇게 인식했다. 변하지 않는 절의의 상징으로 사용된 ‘세한송(歲寒松)’, 천자의 시신을 모신 관으로 사용된 소나무의 상징성은 ‘많은 나무 중 소나무가 으뜸 나무’라는 위치를 낳았다. 이러한 인식은 교육과 문화적 계승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쉼 없이 재생산됐다.
둘째, 소나무는 국가의 중요한 나무였다. 조선 후기 산림정책은 한마디로 소나무를 보호하는 정책, 송정(松政)이었다. 조선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보호해야 할 중요한 나무였던 반면 다른 수종은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수종으로 인식됐다. 해안 방어에 필요한 전함 건조에 쓰이는 소나무를 국가가 독점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소나무가 잘 자라는 땅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해군 수영(水營)이 주도적으로 관리했다.
국가로부터 소나무의 중요성이 장기간 강제되다 보니 소나무는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나무’가 됐다. 두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우리 선조는 국가의 송정으로 여러 나무 중 소나무를 가장 중요한 나무로 인식하며 살았다. 이러한 인식이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며 소나무를 가장 선호하게 만든 배경이 됐다고 생각한다.
셋째, 소나무는 가정마다 온돌이 설치되며 늘 보는 나무가 됐다. 가정용 온돌이 확대될수록 소나무 분포 역시 늘어났다. 17세기 음력 6월 동해에 살얼음이 낄 정도로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했다. 우리 선조는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온돌을 사용하게 됐다. 조선전기까지 양반집조차 노인과 환자를 위해 방 하나 정도만 온돌을 설치했지만, 19세기가 되면 제주도의 평민 집까지 온돌을 사용할 정도로 확산됐다.
소나무 벌채를 금지하는 강력한 송정이 추진되고 있는 시기였으니, 소나무를 제외한 나무들이 베어졌고 가지와 잎까지도 채취됐다. 땅은 그대로 노출돼 건조하게 됐고 건조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가 점차 늘기 시작했다. 200년 넘게 지속된 송정과 가정용 온돌 확대로 마을 주변 숲은 소나무숲으로 점차 변해갔고, 우리는 소나무를 ‘늘 보는 나무’로 인식하게 됐다.
조선 후기 얼마나 많은 소나무숲이 분포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1910년 제작된 조선임야분포도다. 조선임야분포도를 수치화해 다양한 공간 정보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지역 산림 중 70% 이상이 소나무숲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이 장기간 안정되면 점차 쇠퇴하는 소나무가 이렇게 넓게 분포했다는 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간섭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마다 설치된 온돌에 들어가는 땔감을 채취하는 인간 활동이 주된 간섭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앞으로도 한국인은 소나무를 가장 좋아할까?’에 대한 답이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산림청이 조사한 ‘2023년 산림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국민과 전문가 모두 소나무를 가장 좋아한다는 인식이 앞선 조사와 비교해 10% 이상 크게 낮아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조사에서 소나무 선호도가 62.3%였으나, 2023년에는 46.2%로 감소했다. 전문가는 같은 기간 49.5%에서 37.2%로 소나무의 선호도가 줄었다. 최근 대형산불로 소나무숲이 사라지고 소나무재선충병의 지속적 발생으로 소나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언론에 자주 노출된 것이 선호도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좋아하게 된 세 가지 특성을 설명해 보겠다. 으뜸 나무라는 인식은 앞으로도 한국인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재생산될 것이다. 다만 조선 후기 소나무만을 정책 대상으로 삼은 송정과 달리 현재는 나무마다 다양한 장점과 특성을 고려한 산림정책이 추진되며 국민이 좋아하는 나무 역시 다양하게 변할 것이다. 중요한 나무라는 인식 역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소나무의 중요성 역시도 과거 목재라는 경제적 가치보다는 경관적 중요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난해 국립산림과학원 조사 결과에서도 국민과 전문가 모두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로 선택한 높은 순위는 경관적 가치였다. 국민은 1순위, 전문가는 2순위로 경관적 가치 때문에 소나무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늘 보는 나무라는 특성은 장기간 유지되겠지만 그 비중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기후변화와 자연천이라는 거역하기 어려운 변화와 대형산불과 소나무재선충병에 취약하다는 소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는 현재 큰 변화와 위기에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기후변화와 자연천이를 거역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나무의 쇠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적극적으로 보전해야 할 가치 있는 나무라 말한다. 전국 산림의 25%를 차지하는 소나무를 모두 같은 방법으로 보전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나무의 가치를 찾고 이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인이 소나무를 왜 좋아하는지를 안다면, 앞으로 지혜로운 소나무숲의 관리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