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플라스틱 문제 해결 위해 감축 지지 밝혀야”
재활용만으로 국제 플라스틱 오염 방지 이행 어려워

“국제협약 아니더라도 플라스틱 생산 산업구조 전환해야”
협약 국가 간 신규 재원 형성··· 국제공동기금 조성 제안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협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고 이 과정에 시민과 기업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협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고 이 과정에 시민과 기업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환경일보] 박선영 기자 =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재활용만으로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이행할 수 없다. 플라스틱 제품 순환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이 우선 돼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6월26일 한국환경한림원이 주최한 ‘유엔 플라스틱 국제협약 우리의 대응 전략과 역할’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홍 소장은 제5차 INC에서 협약 성사 가능성이 낮고 협상 기간은 연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제5차 INC에서 협약 성사 가능성이 낮고 협상 기간은 연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제5차 INC에서 협약 성사 가능성이 낮고 협상 기간은 연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박선영 기자 

홍 소장은 ​11월 25일 유엔 플라스틱 오염 대응 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 개최를 60여일 앞두고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감축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안 가능성 자체가 높아졌다기보다는 미국의 입장 표명이 감축이라고 하는 단어가 협약에 들어 갈 수 있는 유리한 변수가 된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같은 산유국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 영국 등은 플라스틱 생산부터 제한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 일본은 감축 대신 재활용이 우선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란 등 산유국은 1차 폴리머 생산 감축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 소장은 “국내에서 협약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고 이 과정에 시민과 기업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플라스틱 문제와 관련된 온·오프라인 공개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전망을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과의 일문일답으로 확인해 봤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은 장기적인 산업 전환
기관·산업계·시민 간 소통 플랫폼 필요

Q. INC-5 개최를 60여일 앞둔 시점에서 미국 정부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감축을 지지할 것으로 알려지며 협약 성안 기대감이 높아졌다

미국의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감축 지지 표명이 ‘감축’이라고 하는 단어가 협약에 들어 갈 수 있는 유리한 변수가 된 것은 맞다. 11월25일 INC-5 개최 전에 미국 대선이 끝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변수는 있다. 하지만 협약에서 감축 부분만 합의되면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같은 산유국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는 시대는 아니다. 미국이 감축을 지지한다고 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감축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은 업계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미국 업계에서도 정부가 산업을 배신했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 플라스틱 협약에 감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고 해서 즉각적인 조치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생산감축은 장기적인 산업 전환이다. 당장 산업이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다. 플라스틱을 바로 없애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석유화학 기업 입장에서 석유 등 1차 원료가 줄면 대체 원료가 공급되면 된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아니더라도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플라스틱 밸류체인 속에서 중국이 성장할수록 우리나라 관련 업계가 설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플라스틱 국제협약도 있고 장기적으로 구조 전환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업계에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하겠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Q. 현재까지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규제는 국가별 자율 조치가 전제여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위상 정도라면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감축을 지지한다’ 정도는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감축을 지지하더라도 이를 이행하는 방법론은 수없이 많다. 전략상 자율성을 강조하는 감축 경로를 염두에 두고서라도 이 정도도 이야기 못하는 것에는 아쉬움이 있다. 국가산업이 중요하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라도 이익에만 매몰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글로벌 공동체 이익을 위해 무엇을 기여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Q.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석유화학산업 생산국이다. 이와 관련해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국내 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우리나라는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다. 글로벌 환경 문제와 우리 산업 이익을 절충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석유화학산업 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석유로 만든 1차 폴리머에 대한 방향성이 드러나야 한다. 탈플라스틱 방향은 다이용, 재사용, 재생원료 바이오 3축이다. 이 3축에 대해 투자를 가속화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조속한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

각국이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의안을 만들기에는 이미 산업계와 생활 속에서 너무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각국이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의안을 만들기에는 이미 산업계와 생활 속에서 너무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사진=환경일보DB

Q. 각국이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의안을 만들고 이해관계를 양보하기에는 이미 산업계와 생활 속에서 너무 많은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대안들이 모든 분야에 걸쳐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100% 퇴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1회용품과 수명이 짧은 플라스틱, 포장재 중심으로 감량 논의를 하고 있다. 우선 이 부분에 대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가능성이 높은 영역부터 찾아 나가야 한다. 이는 줄여야 할 명확한 방향성에 따라 투자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Q. 협약 성안이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로 플라스틱 물질 및 제품 유해성과 관련된 데이터 부족, 통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점이 지적된다

우리나라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 통계는 신뢰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통계가 국제협약 걸림돌은 아니다. 일단 협약을 만들고 국가 간 서로 기준이 일치된 통계를 구축해 나가면 된다. 문제는 법적 구속력을 동원해서 강제로 감량 조치를 해야 할 정도로 플라스틱이 유해한가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유해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로 유해한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유해성과 관련된 연구가 많이 진전되지 않은 상황이다. 플라스틱을 써도 된다라는 의견에 가까운 산유국들과 중국 같은 국가들의 주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 팩트가 명확하지 않다. 팩트가 분명하다면 산유국과 중국이 지금 같은 주장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Q. 바이오메스 원료 전환, 석유 대체 원료 활용을 위한 투자를 포함한 대체재와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플라스틱 국제협약 내에서도 대체재와 대안에 대한 의견이 있다. 종이, 목재, 금속, 유리 등 플라스틱이 아닌 재질로 가야 하지만 이 같은 소재가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플라스틱만큼의 생산량, 경제성, 플라스틱을 대체한 소재는 생태계 파괴에서 자유로운가 등이다.

석유로 만들지 않은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생분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만큼의 생산량을 담보하지 못한다.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영역을 세분화시켜 놓고 우선 순위를 정해 전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처럼 플라스틱 전체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는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Q. 협약 목표 연도 명시에 대한 생각은

명시가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협상 난이도를 높이는 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명시를 주장하는 국가들도 있다. 사실 그것이 유엔 플라스틱 국제협약 결의안 목적에도 맞다. 연도 명시는 국제 외교 협상에서 신기원을 이룩할 정도의 획기적인 성과다. 하지만 현재까지 봤을 때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낮고 그런 합의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Q. 성안 이후 플라스틱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플라스틱세는 플라스틱 협약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개방형 실무 그룹에서도 2040년까지 석유로 만든 1차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30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신규 재원조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내 각 국가들 간 재원을 형성해 국제공동기금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세에 대한 논의는 더 연구하고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세를 플라스틱 부담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플라스틱 부담금보다 훨씬 큰 스케일로 많은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Q. 환경부가 남은 기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협약 동향 공유와 의견 수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부가 협약의 입장, 방향과 관련해서 산업계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현재도 의견 수렴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참고만 하기 위한 의견 청취는 의미가 없다. 우선 환경부와 산업부가 플라스틱 국제협약과 관련해서 가능한 선에서 입장을 밝히고 전략적으로 무엇을 위해 산업계 의견을 들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석유로 만들지 않은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생분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만큼의 생산량을 담보하지 못한다. /사진=환경일보DB
석유로 만들지 않은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생분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만큼의 생산량을 담보하지 못한다. /사진=환경일보DB

Q. INC-5 협약 성안 가능성과 기대하는 바는

협약 성안이라고 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협약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큰 의미가 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해 시민과 기업이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산업과 시민 간 이견을 좁히고 오해도 풀 수 있다.

정부 협상 전략 성공 여부로만 INC-5 개최 의미를 좁히지 말고 이번 기회에 사람들이 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까지는 너무 우리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만 매몰돼 논의가 협소하게 진행됐다. 정부 개최 포럼이 있었지만 진짜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다. 소통에 대한 정부 노력이 부족했다. 산업 쪽도 시민과 소통하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이제 시작이다. 이 정도 규모의 국제회의를 개최하면서 이렇게 조용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플라스틱 문제와 관련해 기관, 산업계, 시민이 조금 더 폭넓게,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 이제라도 플라스틱 문제와 관련된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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