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9일부터 26일까지 필자를 포함한 환경정의 ‘다음을지키는사람들’ 5명은 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스웨덴 등 4개국을 다녀왔다. 유럽의 아동환경정책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실 필자에게 유럽이라는 지역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 이후 근 20년 가까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유럽이 ‘EU’라는 체제를 갖춘 것도 신문지면의 일이었고,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갖게 된 것도 그저 먼 나라의 일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유럽방문을 통해 유럽이 아동환경정책이라는 창을 통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단면을 엿보게 됐다.

우리가 이번에 방문한 곳은 ▷WHO EU의 환경과 건강센터 중 어린이 건강과 환경 담당하는 곳-로마 주재 ▷독일의 연방정부와 주 정부 ▷네덜란드의 그린피스 본부 ▷스웨덴 정부 및 천식 알레르기 NGO협회 등이다.

첫 번째 방문지인 로마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대기오염 때문이고, 또 하나는 길거리 흡연 때문이다. 로마의 거리를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이 컬컬해지고 5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니 마치 최루탄 가스에 노출된 것처럼 목과 눈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멍해졌다. 오래된 차와 오토바이들 때문인데,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길거리 흡연자의 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유럽은 여성흡연자로 인한 저체중아·사산아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자동차 매연에 담배연기까지…. 지표로는 서울이 로마보다 더 오염된 도시라는데, 체감오염도는 로마가 더 심한 것 같았다.

로마에서 우리가 만난 사람은 WHO EU의 어린이 건강과 환경담당자이다. WHO EU는 세계보건기구 중에서 어린이 환경보건정책에 있어 가장 앞선 나라다(EU는 국가 위의 국가다. 단일 통화 체계에 국경도 없다).
유럽은 1980년대부터 환경부장관과 보건부장관의 국제회의를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2004년 부다페스트에서 진행된 환경보건장관회의에는 총 52개국의 환경·보건장관들이 모였는데, 주요 의제는 ‘아동건강’이었다. 이를 주요 의제로 삼은 이유는 아이들은 미래이고, 아이들의 생물학적 조건을 볼 때 같은 환경에서도 어른에 비해 훨씬 더 오염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약 50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환경오염으로 매년 사망한다. 2004년 부다페스트회의에서 환경·보건장관들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CEHAPE(Children’s Environment and Health action plan for Europe)를 채택했다. 목표를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EU에서 장관회의를 통해 합의한 내용은 각 국가의 아젠다로 설정됐으며, 각 국가는 자국의 목표치를 정해 이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EU는 강제하고 있다. 내년에 중간 점검회의를 하고, 2009년에 최종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환경문제는 환경문제, 보건문제는 질병문제로 이원화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부러운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환경보건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며, 그러한 정책을 입안하는 데 ‘우리 NGO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유럽에서 주요하게 설정하고 있는 목표는 ▷안전한 물과 위생문제 ▷사고나 손상으로부터의 안전문제 ▷청결한 실외와 실내의 공기 ▷유해화학물질 및 환경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유럽에서는 7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 사이에 천식 유병률이 200%가량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아동 천식 유병률이 약 30%인데, 유럽도 대체적으로 이 수준이었다. 알레르기 질환도 몇 몇 나라 어린이의 경우 25%가량이 앓고 있다고 한다. 질병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유럽 수준이다.
천식을 악화하는 요인이 대기오염과 간접흡연이라고 설정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하게 하며, 지침서를 만들어 나누어주고 교육을 실시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질병의 약 40%가 전 세계 인구의 10%인 5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서 발생하고, 이로 인한 재정적 손실도 막대하므로 이를 최대한 예방하고자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진 측면은 천식과 아토피다. 천식과 아토피는 그간 가정의 몫이었다. 부모와 병을 앓는 아이들이 온전히 그 부담을 지는 상황이어서, 유럽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했다.
독일을 방문했을 때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산업단지인 뒤셀도르프에서는 아이들의 건강문제에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뒤셀도르프 주정부의 담당자에 의하면 독일은 산업단지 내에서 다이옥신과 미세먼지, 중금속 등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수년간 독성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고, 오염을 줄이기 위해 공장폐쇄·정기 검진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아직 없는 실정이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독성연구나 실험 등을 통해 인과관계가 명확해질 경우 대책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이 급한 것에 비해서는 흡족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수준도 되지 않으니,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나온 정도로 복지혜택이 잘 돼 있는 스웨덴의 경우 지난해에 어린이 환경에 집중해 ‘어린이 환경보고서’를 작성했다. 스웨덴은 이 보고서를 준비하기 위해 2003년부터 ‘어린이 환경 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는 100여 개의 상세한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전국 약 4만 명의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 배포해 이 중 71%가 응답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이렇듯 유럽에서는 아동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및 조사가 꾸준히 진행돼 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부에서 환경보건 10개년 계획을 세워 올해부터 천식과 아토피 유병률을 전국적으로 조사한다고 하니,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환경부만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발부처인 건교부나 산자부 등이 정책의 우선과제를 ‘환경파괴 저지’ ‘아동환경권 보호’의 관점에 두지 않으면 여전히 개발정책 따로, 환경정책 따로인 절름발이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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