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속 내몰리는 인권침해··· 책임 있는 선진국 지원·원조 지속돼야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진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진

[환경일보] 조혼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사회가 핵가족화됨에 따라 조혼은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나 어울리는 말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조혼이 성행하고 증가하는 추세까지 보이는 지역이 있다. 바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다. 

조혼의 근본적인 원인은 성 불평등과 가부장적 사회 구조이지만, 경제가 약한 개발 도상국의 경우 장기적인 기후재난과 기후위기가 또 다른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가뭄과 식량 부족으로 큰 피해를 본 에티오피아의 일부 지역의 경우, 2022년 조혼 비율이 그 전해와 비교해 119% 증가했다. 짐바브웨에서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혹은 소나 돈, 곡물을 대가로 여아의 조혼이 이뤄지고 있고, 2022년 파키스탄의 대홍수로 약 64만 명의 10대 여아가 성폭력과 조혼의 위험에 놓이게 했다. 

조혼은 소녀들에게 신체적, 사회적 측면에서 위해를 가한다. 자기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조혼은 소녀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을 잃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집을 떠나 시댁에 보내진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고, 교육과 고용의 기회도 제한된다. 특히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결혼한 소녀들은 통계적으로도 학력이 낮다. 말라위에서는 공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의 2/3는 조혼한 소녀들이며, 고등학교나 더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 중에서는 조혼한 소녀들이 5%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통계는 소녀들이 조혼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잃는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또한, 조혼은 소녀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신체적 준비와 위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성관계로 HIV(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 등의 성병에 노출되며, 조기 임신의 가능성이 크다. 조기 임신은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영유아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으로 기후위기는 한 가정과 소녀의 삶을 파괴할까. 답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와 정부에 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회는 기후위기가 일어날 시 예방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뭄이 일어나도 식수를 공급하지 못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주거를 잃은 난민들에게 집을 제공하지 못한다. 극한의 열이 산모의 건강을 악화시켜도 의료 지원이 힘들고 매 끼니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형편이 좋지 못했던 가정들은 이처럼 기후재난이 발생하면 생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말라위에서는 공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의 2/3는 조혼한 소녀들로 나타났다. /사진=환경일보DB
말라위에서는 공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의 2/3는 조혼한 소녀들로 나타났다. /사진=환경일보DB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거대한 사회문제에 휩쓸린 가정들은 결국 조혼을 선택한다. 당장 하나의 입을 줄이는 것이다. 딸아이만큼은 조금이라도 부유한 가정에서 보호받기를 바라며, 또 사위로부터 지참금을 받아 가난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려고 한다. 결국 사회문제에 부딪힌 가정의 사적 대처가 조혼이 된다. 이는 공적 개입이 실패한 결과이자 정부가 유명무실한 까닭이다.

그러나 잘못된 사적 대처가 관습이 돼 또 하나의 악순환이자 사회문제가 됐다. 우선 여아를 물적 거래 수단으로 삼는 것부터 윤리적으로 큰 문제다. 한 인간이 인격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물건과 다름없이 취급되는 것은 인권 침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도 조혼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개인이 이길 수 없는 위기가 닥칠 때, 인간은 갈등에 사로잡힌다. 끔찍한 고통에 눈이 멀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할지 고민에 빠진다. 가난해도 자신의 꿈과 희망을 말하는 소녀들의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고귀하며, 존중받아야 할 존엄이다. 기후위기 탓에 박탈당하는 무수한 것 중에서도 인격은 끝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재난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특히 기후위기의 원인이 선진국들의 개발로 초래된 사실을 고려하면, 선진국들이 더욱 나서서 개발 도상국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먼저 극심한 빈곤에도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경제적 원조가 이뤄져야 하며, 그와 함께 조혼의 위험성과 무의함을 깨달을 수 있는 교육과 의료 지원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진 lsjelee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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