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와 체질, 에너지 여건 고려한 탄소중립 필요

[환경일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이하 ‘COP29’)와 관련, 시대적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경제의 역동성도 제고하는 합리적 기후변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환경·경제성을 모두 충족하는 기술의 개발 속도에 발맞춰, 현실 가능한 목표를 수립해 이행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21일 김소희 국회의원과 사단법인 한국환경정책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유엔기후변화협약과 우리나라의 대응: COP29를 중심으로’ 정책 세미나가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COP29의 주요 현안·쟁점, 당사국의 기후변화 대책 추이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동주최한 김소희 의원(국민의힘, 비례대표)이 먼저 개회사에 나섰다.

김 의원은 “국제사회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중지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선 발 불확실성으로 인한 글로벌 기후 목표 달성의 어려움이 커질 우려가 있다”면서 “한국은 기후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환경정책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범철 강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축사에서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 원활한 에너지 수급 체계 마련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난제가 우리 인류 앞에 놓여 있다”며 “글로벌 중추 국가의 국격에 맞는 기후변화 대응 실천에 임하면서, 동시에 우리 경제에 줄 부담을 최소화하는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는 등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더욱 다양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5선의 나경원 의원도 참석했다. 국회 대표단 자격으로 이번 COP29에 직접 참석하기도 한 나 의원은 COP29의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전하면서 “때로는 과감한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전체 구조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유엔기후변화협약과 우리나라의 대응: COP29를 중심으로’ 정책 세미나 /사진=한국환경정책협의회
‘유엔기후변화협약과 우리나라의 대응: COP29를 중심으로’ 정책 세미나 /사진=한국환경정책협의회

본격적인 세미나는 학계와 행정부, 공공기관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대표적인 산업·에너지 정책 전문가 이승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발제는 국내 산업구조와 에너지 수급 현황에 대한 이해가 깊은 박주헌 동덕여자대 경제학과 교수, 당정 간 환경정책을 조율하며 정부·여당의 환경정책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전인성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이 나섰다.

박주헌 교수는 “현재 한국 산업구조와 체질, 에너지 여건을 고려해서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핵심은 바로 기술적 뒷받침이며, 기술개발 속도에 맞는 질서 있

는 에너지 체계 전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미국의 차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美 행정부 에너지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전망되는 점을 언급하며 석유·가스 등 전통 에너지원의 활용도도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탄소중립 정책이 초래할 경제적 부담을 지적하며 원자력 발전원의 중요성도 짚었다. 이어서 전인성 전문위원은 발제에서 COP29 논의에 있어 이른바 ‘기후재원’의 마련과 관련해 선진국-개발도상국 간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윤석열 정부 역시 기후변화 대응에 더욱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전문위원은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매개하는 유엔기후총회 당사국이자 기후경제의 행위자로서, COP에서 결정된 국제적 협약과 규칙 등을 준수하는 한편, 현실적으로 국제 거버넌스가 작동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위상을 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진 토론 순서에서는 더 구체적인 업계와 현장의 목소리가 주로 나왔다. 김주홍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무는 “현재 전기차 캐즘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수요 회복을 위한 전기차 지원책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경제 시스템 내에서 석유·가스를 충분히 대체하기까지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탄소배출을 빠르게 감축하는 것은 결국 비용 문제이고, 그 비용을 정부·기업·소비자 중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한국이 세계적인 수출 공업국이면서도 예상보다 적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환경 죄책감을 자극하는 대신,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에너지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수출 중심 기업 전략 등 한국 특유의 상황과 기업 여건을 고려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의 단계적 탄소중립 정책이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ESG 공시 측면에서는 기업 부담을 고려하여 투자자에게 중요한 범위로 한정하여 공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토론에 나선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정책 수립의 과학적·경제적·민주적 절차를 다시 점검해 보고, 국익 관점에서 초당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를 기획한 한국환경정책협의회는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 간담회, 시민 동참 캠페인, 정부 정책 건의 등을 통해 과학적 진실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인 환경운동 문화를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협의회 측은 “막연하고 불분명한 인식에 기반하여 설계된 환경정책은, 정작 환경보호, 기후변화 대응의 효과는 내지 못하고 시민의 불편과 기업의 비용 부담만 가중 시키는 측면이 있다”면서 “현실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의 환경정책부터 점진적으로 실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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