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7명 중 4명이 악성중피종으로 사망, 13일 에릭도 별세
[환경일보] 세계 최초이자 최대 석면시멘트 회사인 에터니트(Eternit)로부터 어릴 적 석면에 노출돼 2021년 63세에 석면암인 악성중피종(폐를 둘러싼 막에 암이 발병하는 치명적인 석면암)이 발병해 3년간 투병하던 에릭 존키어(Eric Jonckheere) 벨기에 석면피해자단체(abeva) 대표가 2024년 12월13일 66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지구촌의 석면추방운동은 에릭과 같은 석면피해자단체들이 앞장서고, 환경단체 및 노동단체들 그리고 의학전문가, 독성전문가들이 협력해서 이끌어왔다.
그 결과 지구촌 70여개 나라에서 석면사용이 금지됐고 지금도 석면사용 금지 및 기존 석면제품, 석면건물의 안전관리 및 안전철거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석면문제의 특성상 석면에 노출되면 즉시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최소 10년, 길게는 50여년의 긴 잠복기를 거친 후 에릭에게 나타난 석면암인 악성중피종(malignant mesothelioma), 석면폐암, 석면폐(asbestosis) 등이 주로 나타나고 후두암, 난소암도 발병한다.
이들 질환들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확인한 석면이 유발하는 질병이다.
에릭 존키어의 경우는 석면피해 사례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우다.
에릭의 부모와 남동생 2명 등 모두 4명이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했고 에릭 존키어가 2024년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했다. 한가족의 부모와 자식 7명 중 5명이 희귀하다는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 일은 에릭의 가족이 석면시멘트공장인 에터니트의 사옥에서 살면서 석면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에릭의 아버지는 에터니트의 직원이어서 벨기에의 카펠레(Kapelle) 석면파이프생산 공장의 사택에서 살았고 거기서 태어난 5명의 아들과 어머니가 모두 환경성으로 석면에 노출됐다. 그리고 30~50년의 긴 잠복기를 거친 후 한명씩 석면암이 찾아왔다.
다행히 남은 2명의 아들인 에릭의 셋째 남동생 캐비어 존키어(1961년생 63세)와 다섯째 남동생 베노이트 존키어(1965년생 59세)는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언제 이들에게도 석면암이 덮쳐올지 모른다.
에릭은 부모와 형제를 죽게 만든 에터니트 회사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했고 결국 승소했다. 에릭의 어머니가 생전에 에터니트의 회유를 뿌리치고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에릭과 형제들이 끝까지 싸워서 승소했다.
에터니트는 세계 최초로 석면에 시멘트를 섞어서 석면시멘트 제품을 개발해 석면수도관, 석면지붕재(슬레이트)를 생산해 보급한 회사이다.에터니트는 에릭의 부모와 형제의 죽음 그리고 다른 많은 석면 피해자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했지만 에릭과 abeva의 법정투쟁으로 책임을 인정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석면회사 가운데 캐나다 퀘벡과 아프리카의 석면원료가 한국으로 수입됐고, 일본 니치아스의 석면방직 시설이 한국으로 수출돼 석면피해를 확산시켰다.
에릭은 벨기에와 프랑스 석면피해자협회(abeva)를 만들어 다른 석면피해자들과 함께 석면추방운동에 앞장섰다.
2012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1회 국제 석면 피해자의 날이 조직돼 유럽 전역과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의 석면피해자 및 석면추방운동가들이 모이는 대회를 가졌는데 이 운동도 에릭이 크게 기여했다.
에릭은 가족의 석면피해 이야기를 써서 책으로 세상에 알렸다. [석면-악마의 먼지와의 전쟁, ASBESTOS-My War with The Devil's Dust]가 그것이다. 2009년 프랑스어로 냈고, 2021년 영어로 보정판을 냈다.
에릭의 직업은 화물비행기 조종사였다. 에릭은 화물기를 몰고 아시아를 올 때마다 아시아의 석면추방운동가들과 교류했다.
2009년 홍콩에서 발족한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웤(ABAN)에 참석해 발족인으로 함께 했고, 201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INABAN)에도 참석했다.
이때 한국의 악성중피종 환자로서 대회에 참석한 레이첼 이정림씨와 만나 석면피해자로서의 연대를 다졌다.
특히, 에릭은 석면사용이 계속되고 있는 인도에서의 석면피해자 지원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지원했다.
2024년 9월 초 에릭이 사는 벨기에의 한 도시에서 석면피해자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에릭 가족의 법정투쟁 승리와 수많은 에터니트 석면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동상으로 제막식에는 시장 등 여러 사회인사들이 함께 했다. 악성중피종으로 투병 중이던 에릭은 휠체어를 타고 제막식에 참여했다.

우연하게도,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열리는 에릭의 장례식일은 2011년 12월21일 레이첼 이정림씨가 사망한 날이다. 에릭은 하늘나라에서 레이첼 이정림씨를 만나 반가운 해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에릭의 부고 소식은, 2022년 1월28일 사망한 한국의 석면추방운동가 정지열 선생을 떠올리게 한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어릴 적 살다가 석면광산에서 일을 하고 또 석면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살다가 석면에 노출돼 석면폐가 발병했던 정지열 선생은 석면폐 2급에서 1급으로 악화됐고 다시 폐암으로 악화된 경우다.
홍성, 보령 지역의 석면광산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석면피해구제법이 제정돼 석면피해자들을 구제하는데 앞장섰다.
정지열 선생은 생전에 에릭을 2009년 홍콩, 2010년 인도네시아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나 교류했다. 지금쯤 지구촌의 대표적인 석면추방운동가인 에릭과 정지열 선생이 하늘나라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