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이념, 빈부 갈등에 불 붙은 미국··· 한술 더 뜬 한국

[환경일보] 미국의 정치적 다양성, 혹은 PC가 역풍을 맞고 있다. PC주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나 행동을 반대하고, 편견을 줄이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말한다. 

미국에서 다양성이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DE&I다.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의 약자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답게 다양한 인종과 출신,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으므로, 그러한 이유로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이런 다양성이 강조되면서 원작에서 빨간 머리 여성이었던 인어공주가 디즈니 실사 영화에서는 흑인이 됐고, 눈부시게 하얀 피부를 지녔다는 백설공주는 모계가 중남미계인 배우가 맡았다.

다만 남자주인공은 둘 다 백인남자였다. 백인여자가 유색인종과 사랑을 나누거나 배드신을 찍지 않는 것은 헐리웃의 불문율 중 하나다.

과거 아메리카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그곳이 인도라고 착각했고, 그 결과 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이후 수천년간 평화롭게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식민지를 세웠으며 식민지와 본국 간 분쟁이 계속되자 결국 자신들이 떠나온 본국마저 쫓아내고 독립을 이뤄내고 만다. 

미국이라는 특성상 백인이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고, 미국에 먼저 정착한 순서대로 좋은 직업과 부를 획득해 상류층으로 올라섰다. 이른바 방장 사기맵이라 불리는 미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 없이 자립이 가능하고, 수출까지 하는 나라였다.

유대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등이 차례차례 미국에 도착했고, 백인들은 자신들이 하던 잡다한 일을 다음에 오는 이민자들에게 떠넘겼다. 트럼프 역시 할아버지 역시 독일 출신의 소년 노동공으로, 이후 골드러쉬를 따라다니며 여관을 차려 큰 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한 백인은 대기근이 발생한 아일랜드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서양에서는 ‘여자가 빨간 머리를 하면 불길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빨간 머리와 녹안을 가진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아일랜드다.

우리가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은, 사실 같은 백인이지만 빨간 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모습 때문에 불길한 취급을 받는 아이가 구박을 받으면서도 차츰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인어공주의 머리색이 빨간색인건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핍박 받는 아일랜드인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 인어공주 캐릭을 갑자기 흑인으로 바꾸고, 헤어디자인에 2억원이나 들여 드래드록을 한 모습을 보면서, 좀 심각하게 말하자면 프레데터가 떠올랐다. 

만약 춘향이가 드래드록을 하고 부채 대신 맥주병을 들고 빠른 비트에 맞춰 춘향가 버전 2.0의 속사포 같은 래핑을 한다면 우리는 그걸 보면서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흑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흑인이 주인공이 아닌 원작조차 흑인으로 교체하려는 블랙워싱이다. 흑인이 주인공인 마블 시리즈 '블랙 팬서'는 대박이 터졌고,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다르다.

아일랜드는 8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를 받으며 지독한 수탈과 핍박 속에 살았다.

생산된 고기와 밀은 잉글랜드에 빼앗기고 주식을 감자로 삼으며 배고픔을 버텼지만, 감자의 잎이 마르는 병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감자 농사를 망쳐 무려 7년에 걸친 기간 동안 대기근이 발생했다.

그런 참혹한 상황에도 잉글랜드인들은 수탈해갈 고기와 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일랜드 국민들이 굶어 죽는 건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 결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굶어 죽는 참사가 발생했으며 지금도 아일랜드의 인구는 고작 수백만에 불과하다.

그렇게 굶어 죽고, 항의하다 맞아 죽던 아일랜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에 도착해 사회 하위층에 편입됐다. 앞서 도착한 다른 인종이 그런 것처럼.

그래도 수많은 목숨이 죽어 나가는 아일랜드에 비해서는 사정이 훨씬 나았기에 현재 아일랜드인들은 수천만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백인이라도 출신에 따라 얕잡아 보는 것은 여전하다.

백인 중에는 아일랜드인보다 늦게 와서 하층민 자리를 대신해줄 인종이 없지만,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색깔부터가 달랐기에(?) 대놓고 차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탈리아계든, 독일계든, 유대계든 모두 사다리를 타고 상류층으로 올라갔지만,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만큼은 인간이 아닌 노예로 만들었다.

이후 링컨 대통령 시절 남북전쟁을 거쳐 노예해방이 이뤄졌고, 1960년대 미팅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역사에 길이 빛나는 연설과 함께 흑인 인권 신장 운동이 진행됐다.

그러나 흑인과 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우상향을 그리던 상황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인 ‘트럼프’를 만나면서 혼란에 빠졌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지나친 PC주의와 다양성 강조로 인해 역으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취직에 실패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성할당제 때문에, 다양성 정책 때문이다”라고 분노하던 젊은이들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벌어진 워싱턴 비행기 사고에 대해 트럼프는 “능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다양성을 가진 능력 없는 사람을 뽑았기 때문”이라며 다양성 이슈라는 불길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사고의 책임을 대통령이 아닌, 전임 정부의 취업정책 때문이라고 떠넘긴 매우 교묘하고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여기에는 항공회사와 관제탑 직원들의 구성비와 같은 과학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2년 후에도 트럼프는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바이든이 만든 다양성에 기초한 시스템 때문이다"라고 우길지 모르겠다. 지금의 모습을 봐서는 2년 후 중간선거까지 지금의 지지율을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너무 빠른 제도 개선은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반면 시대에 뒤떨어진 법과 제도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 딱 반 발자국만 먼저 나서 비전을 제시하며 생산적인 논의를 벌이는 정치권과 언론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효과를 거둬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펼쳐진 다양성이 퇴화할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트럼프의 미친 짓에 학을 뗀 미국인들이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다만, 다양성과 관련된 세계적인 추세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현상은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게 정치가 됐든, 사회가 됐든.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하면 남여 갈등과 세대간 갈등,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렇게 태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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