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기념, 수원 출신 민족대표 김세환과 3·1운동 재조명

[수원=환경일보] 김성택 기자 =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함성이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수원에서도 만세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그 중심에는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인 김세환(1889~1945)이 있었다. 김세환의 주도로 방화수류정에서 횃불시위가 점화됐고, 이후 한 달간 20여 차례의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김세환, 독립과 교육 발전에 헌신한 수원의 정신적 지주
김세환은 수원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교육과 체육 발전에 헌신한 인물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020년에는 국가보훈부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할 정도로 그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수원상업강습소(현 수원중·고등학교)와 삼일여학교(현 매향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항일 의식을 높이는 교육에 힘썼다. 1919년 2월에는 3·1운동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여해 서울과 충남 지역의 조직 책임자로 활약했으며,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20년 출소 후에는 일제의 감시로 교직에 복귀하지 못했지만, 수원에서 곡물상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과 지역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신간회 수원지회장과 수원체육회장을 맡아 민족운동을 지속했고, 1945년 광복 42일 만에 생을 마쳤다.
1919년 3월, 들불처럼 번진 수원 만세운동

수원에서의 3·1운동은 김세환과 깊은 연관이 있다. 3월 1일 밤,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된 횃불시위는 창룡문과 서장대로 번졌으며, 이후 한 달 동안 수원군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3월 16일 수원 서장대와 연무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21일에는 동탄면 오산리에서 평화적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23일 수원역 부근에서는 700여 명이 참여했고, 29일에는 화성행궁 앞에서 기생 김향화와 동료 33명이 만세운동을 벌여 많은 시민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4월 3일에는 수원군 최대 규모인 2500명의 군중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우정면과 장안면에서 벌어졌으며, 일제 경찰과의 충돌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수원의 열망은 꺼지지 않았다.
광복 80주년, 선열의 희생을 기억하는 수원

수원시는 광복 80주년과 김세환 서거 80주기를 맞아 독립운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수원박물관에서는 6월 29일까지 ‘항거, 수원 1919’ 특별기획전을 열어 수원 만세운동의 역사를 조명한다. 또한, 김세환의 생애와 교육·독립운동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일 열린 106주년 3·1절 기념식에서는 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이 진행됐으며, 김세환 서거 80주기를 기리는 헌화 행사도 열렸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수원의 독립운동가와 민중을 시민과 함께 기억하며 존경하겠다”며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