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시대 건축의 역할 재정립 필요··· 도시 생존 위한 회복력 갖춰야

[환경일보] 2023년, 뉴욕은 단 하루 동안 쏟아진 200mm의 기록적 폭우로 도시 전체가 침수됐다. 교통망은 마비되고 시민 수백만 명이 대피해야 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가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도시를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 그리고 도시가 무너질 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무너진다.

기후변화와 도시의 위기: 현재 진행형의 재난

도시는 밀집된 인구와 인프라가 집중된 만큼, 기후재난의 충격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홍수, 폭염, 해수면 상승, 지진 등 복합재난이 도심을 강타할 때, 가장 먼저 마비되는 것은 도시의 구조와 시스템이다. 도시는 더 이상 무조건 견고하다고 안전한 것이 아니다. 위기에 맞서는 유연함, 그리고 회복 가능한 구조야말로 지금 도시가 갖춰야 할 생존 조건이다. 그렇기에 건축은 단지 미관을 위한 설계가 아니라 도시의 생존을 설계하는 근본적 도구가 돼야 한다.

이러한 재난 구조의 핵심은 인프라 자체의 한계에 있다. 고온을 흡수하는 아스팔트, 불투수층으로 인한 침수, 밀집된 고층 건물의 지진 취약성 등은 도시의 구조적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2025년 3월, 미얀마 사가잉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지진으로 4000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 중 다수가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자였다.

지난 3월 28일 발생한 미얀마 대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사진=국제구조위원회
지난 3월 28일 발생한 미얀마 대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사진=국제구조위원회

한편, 기후위기와 도시재난의 연결고리에 대해 UN-Habitat는 “도시는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강력한 대응 주체다. 도시 인프라가 얼마나 회복탄력적인가에 따라 수많은 생명이 달려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단순히 폭우와 폭염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로 도시를 지을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해법: 기후변화와 도시 재난에 대응하는 그린빌딩

이런 상황에서 ‘그린빌딩(Green Building)’은 단순한 환경 트렌드가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린빌딩은 에너지 효율과 자원 순환, 탄소 저감뿐 아니라, 극한 기후와 재난 상황에서 물리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건물 생애주기를 고려한 고효율 단열재, 자연 채광과 통풍, 재생에너지 시스템, 자립형 배수 및 물관리 기술이 그 핵심이다.

대표적 사례로 네덜란드의 워터부엔(Waterbuurt)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는 부유식 주택단지로 주목받는다. 수위 변화에 따라 건물이 물 위에서 수직으로 부력 이동하며, 침수를 방지한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원(Marina One)’은 도심 한가운데 수직 정원과 자연환기 구조를 배치해 열섬현상과 에너지 소비를 동시에 줄이고, 도심 생태계를 회복한다. 대만의 ‘타이페이 101’은 지진에 견디는 구조의 상징이다. 660톤 규모의 동조질량댐퍼(Tuned Mass Damper)는 지진이나 강풍의 진동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상쇄해 초고층 건물의 흔들림을 최대 40%까지 줄인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원(Marina One)’은 도심 한가운데 수직 정원과 자연환기 구조를 배치해 열섬현상과 에너지 소비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사진=현대건설
싱가포르의 ‘마리나 원(Marina One)’은 도심 한가운데 수직 정원과 자연환기 구조를 배치해 열섬현상과 에너지 소비를 동시에 줄일 수 있다. /사진=현대건설

건축은 재난을 견디는 기술이자,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도구

이러한 사례들은 각각 다른 위기 속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도시를 살리는 건축이란, 아름다운 건물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도 기능을 멈추지 않는 ‘회복력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이렇다.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구조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는 실행의 문제다. 

한국 역시 더 이상 기후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폭우, 부산 해안의 침수, 제주도의 열대야는 모두 우리 일상의 위협이 됐다. 지금이 바로 도시계획과 건축정책의 우선순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때다. 재난 이후 복구에만 예산을 쏟아붓는 낡은 구조에서 벗어나 애초에 재난을 견디는 구조를 짓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린빌딩으로 선정된 국립산림과학원 한그린 목조관  /사진=국립산림과학원
그린빌딩으로 선정된 국립산림과학원 한그린 목조관  /사진=국립산림과학원

이에 따라 건축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는 정책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예산 지원을 넘어, 인허가 기준과 건축물 인증제도, 교육 커리큘럼, 공공건축물 설계지침 등 전방위적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 짓는 건물 하나가 30년 후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시민과 행정, 전문가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건축은 도시를 구할 수 있다. 단, 그것은 우리가 위기에 대비해 어떻게 지을 것인지, 그리고 지금 당장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달려 있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함예림 yelim97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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