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익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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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임기를 시작했다.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산적한 국정과제를 해결해 나갈 첫날이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는 그 무엇보다 ‘국민통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여대야소의 정치 지형은 마치 무엇이든 가능한 듯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신뢰에 기반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분열과 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

그중에서도 환경정책은 국민통합이라는 가치를 가장 상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분야이며, 구조적 전환을 통해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험대가 된다. 우리는 수많은 정책들이 신뢰의 결핍 속에서 좌초되거나 지연되는 장면을 목격해 왔다. 환경정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세대, 복지의 전 분야와 결합되는 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다. 새 정부는 ‘신뢰’라는 이름의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뢰를 가로막는 요소는 무엇인가. 다수결에서 패배하면 대변되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신뢰보다 포기와 저항을 낳는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숙의과정은 사전 결정된 결론이라는 의심과 분노를 낳는다. 정책 설계과정이 복잡하고 공개되지 않으면 시민사회의 의견은 책상 위에 올라가지 못한다. 속도가 우선이고 성과가 최고라는 습관은 이후 더 큰 갈등과 비생산적인 송사를 거친다. 법제화 과정의 의견 제출과 참여, 예산 수립과 집행과정의 꼼꼼한 반영이 없으면 피해의식을 확산시키고 신뢰는 사라진다. 그래서 신뢰는 슬로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호의 용골이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새 정부가 환경정책을 중심으로 신뢰 기반의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한 열 가지 실마리를 제안한다. 이 실마리들이 산적한 국정과제를 해결할 정책들의 구조와 수단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과학기반 해법: 수치와 검증으로 이뤄지는 신뢰
탄소중립 로드맵, LCA(Life Cycle Assessment, 전과정평가), 오염물질 총량관리, 환경영향평가 등은 수식과 기술의 방정식풀이가 아니라 공공정책의 신뢰를 구성하는 핵심 언어다. 모호한 목표는 논쟁을 부르고, 모호한 근거는 저항을 정당화시킨다. 탄소예산을 포함하여 실측 가능한 기준에 바탕을 둔 정책설계가 시발점이다.

▷신뢰 기반 해법: 반영의 경험이 신뢰를 만든다
재생에너지, 매립지, 소각시설 등 입지 갈등은 단지 혐오시설을 둘러싼 문제가 아니다. 사전 정보의 비공개, 형식적 절차, 결정 이후 번복 불가능한 구조가 불신을 만든다. 진짜 숙의는 형식이 아니라 반영의 경험이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결정의 내용이 정해졌을 때 반대의견과 보완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영향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뢰는 동의를 강요하는 절차가 아니라 이해에 기반하여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신뢰는 느리게 올 수 있다.

▷지역을 중심에 둔 해법: 지방의 수용성과 자율성
탄소중립, 산업단지 리모델링, 에너지 고속도로, 재생에너지 입지 선정 등은 이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과제는 지역과 지방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중앙이 설계하고 지방이 지원받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의 특성과 맥락, 주민의 생활권과 산업구조, 공간계획과 장기비전이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 지역은 중앙정책에 대한 수동적 동의의 대상, 정책의 수혜자 내지 수용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역기반 정책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 간 협업 해법: 부처 간 칸막이 넘는 원팀 행정
국정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정부조직법의 많은 중앙행정기관이 그토록 원팀을 강조하는 이유는 ‘원팀’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싸늘한 평가가 있다. 전기차 폐배터리 등 순환자원 정책, 화학물질의 유해성, 위해성 등 위해도에 따른 물질 및 제품관리의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과 국민과 시민사회는 원팀으로 이루어진 정부를 기대한다. 규제기관과 산업부처 간의 조정 메커니즘이 설계단계부터 구조화되어야 한다. 부처간 협업도 제도다.

▷취약계층 보호를 우선순위에 놓는 해법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전환, 디지털 전환, 산업구조 재편 등의 과정에서 저소득층·이주민·노령층·장애인 등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정책은 불공정하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모든 분야에서의 대책 마련과 비용추계가 동시에 필요하다. 사후적 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국의 자활센터와 사회적 경제를 위한 조직과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전문인력의 활용과 양성 해법
온실가스 감축, 수질관리, 환경영향평가, 오염정화, 순환경제, 자연환경복원, 통합환경허가, 생태. 모두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이다. 우리 사회를 환경적 측면에서 ‘닫힌 원’(Closing Circle)이 되게 하려면 우리 사회가 양성하고 훈련시켜 놓은 환경기술사, 환경기사 등 현장의 전문인력들이 공공분야에서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야 한다. 숙련된 전문가의 경험이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와의 동행 해법
시민사회는 공공정책에 대한 감시, 피드백, 대안의 제시, 정책의 실행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기후위기 완화 및 적응, 환경정의, 지역개발에 따른 갈등은 현장 속에서 실천적 해법이 중요한데 시민사회가 제도화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정보접근권, 공익활동 목적 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이 보장되고 주인 없고 목소리 없는 환경훼손 등의 피해가 공론의 장에서 대변될 수 있을 때 시민사회는 갈등의 조정자 그리고 신뢰의 중간 매개자가 될 수 있다.

▷이해충돌 방지와 투명성 해법
토지이용규제와 개발행위 허가, 각종 보조금 행정, 환경규제, 환경영향평가, 국가 R&D 자금 지원 등 민감한 정책 분야일수록 이해당사자의 개입 여지를 차단하고, 이해충돌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관리할 장치가 필요하다. 누구도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재판할 수 없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구조적 상황은 사회적 신뢰를 좀먹는다. 시작부터 의심받는 제도는 설 자리가 없다. 복잡한 사회의 고차방정식 문제의 해법은 이해충돌방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속가능성 금융 재정 해법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재정정책이 필수적이다. 재원을 마련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사회 각 분야의 모든 구성원들과 산업의 행동변화를 야기하려면 기후예산, 환경기금, 녹색채권, ESG 금융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 정책이 일관되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녹색분류체계(Taxonomy)를 고도화하여 민간금융의 흐름을 공공정책과 일치시키고, 환경기금의 전략적 배분으로 취약계층과 지역사회에 재정적 뒷받침을 제공해야 한다.

▷미래세대 참여 해법
미래세대를 넓게 보자. 앞으로 태어날 세대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세대가 모두 미래세대이다. ‘우리 공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가 미래세대라고 생각한다. 정권은 가고 또 가지만 공동체는 여기에 남아 미래세대와 함께 한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할수록, 미래세대를 위한 현재의 부담은 약화되고 생략된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함께 덜어줄 정책을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마련해야 한다.

이상의 10가지 정책 실마리는 비단 환경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정책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지속가능성을 실현해야 하는 분야인 만큼 이러한 원칙들이 가장 먼저 시험받고 적용되어야 할 영역이다. 이러한 실마리로부터 말로만 국민통합이 아니라 신뢰가 경험되고 축적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자연은 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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