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과 정부조직 개편 방향 놓고 본격 논의
전력망 독점 구조로는 전환 불가··· 공공 운영체 도입 제안
전문가들 “기존 산업부·환경부 체계론 불가능··· 전담 부처 필수”

지난 6월20일, 국회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를 본격화한 첫 공개 토론장이 열렸다. /사진=에너지 전환 포럼
지난 6월20일, 국회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를 본격화한 첫 공개 토론장이 열렸다. /사진=에너지 전환 포럼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우리는 아직도 기후위기를 정책의 선택지 중 하나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생존의 문제로 대응하고 있죠.”

지난 6월20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기후에너지부 시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정책 방향 토론회’는 단순한 학술 세미나가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특별위원회와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기후에너지부' 신설 논의를 본격화한 첫 공개 토론장이었다.

200석이 채 안 되는 공간은 오전 9시40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기후 정책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학계, 산업계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고, 다수의 보좌진과 기자들도 좌석을 찾기 위해 줄을 섰다. 여느 정책 행사와 달리, 현장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토론회의 중심 의제는 단순한 ‘탄소 감축’이 아닌, 우리 사회가 ‘어떤 체제로 에너지 전환을 감당할 것인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처가 바뀌어야 할 시간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키워드는 단연 ‘기후에너지부’였다. 이는 기존의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분산돼 있는 기후·에너지 정책 기능을 통합하고, 보다 일관된 정책 추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새로운 정부조직 구상이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회사에서 “기후위기는 정치적 논쟁이 아닌, 국가 생존의 문제”라며 “기후 대응을 위한 전담 부처 신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에너지부는 단지 하나의 부처 신설이 아니라, 탈탄소 사회로의 국가 구조 전환을 상징하는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구성된 탄소중립위원회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에도 ‘기후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논의가 있었으나, 명확한 조직 개편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국정 아젠다로 삼아 조직 개편을 본격 추진 중이다.

“재생에너지 로드맵 없이는 전환도 없다”

첫 발제를 맡은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목표에 날을 세웠다.

“지금의 정책 속도로는 2030년까지 21%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OECD 평균보다 낮은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기후 리더십을 얘기하겠습니까?”

윤 교수는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이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인허가 지연, 전력망 미비, 제도적 지원 부재 등의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에너지고속도로'로 불리는 전국 단위 전력망 재설계와, 한전과 민간 발전사업자 간의 이해충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전력망 공공운영체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한전은 발전 자회사를 통해 시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동시에 송전·배전망을 독점하고 있다”며 “이해충돌을 해소하지 않는 한, 에너지 전환은 속도를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에너지부, 전력시장 개편에서 시작하자”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전문위원은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기후에너지부를 만들자고 하면, 행정력 낭비니 중복 기능이니 하며 저항이 생긴다”며 “정말 중요한 건, 무엇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영국의 기후에너지부(DECC, Department of Energy and Climate Change)가 2008년 출범했으나, 2016년 DESNZ(Department for Energy Security and Net Zero)로 재편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도 실패하지 않으려면 초기 전략을 뚜렷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제안은 명확했다. 우선 전력시장을 개편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전력도매시장 운영 주체를 한국전력에서 분리하고, 가격 체계를 시장 기반으로 전환해 재생에너지와 신기술이 제대로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계 “정책 혼선은 기업 생존에 치명적”

현장에서는 산업계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최종서 상무는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너무나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R&D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고, 전기요금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정부가 말하는 ‘녹색전환’은 공허하게 들린다”며 “기후에너지부가 만들어진다면,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위성곤 의원은 “정쟁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을 위한 부처가 돼야 한다”며 “이번 정기국회 안에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사진=위성곤 tv
위성곤 의원은 “정쟁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을 위한 부처가 돼야 한다”며 “이번 정기국회 안에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사진=위성곤 tv

“정쟁을 넘어 생존의 틀로”

기후에너지부 설치에 대해 정치권 내부의 입장 차도 감지됐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주관으로 이뤄졌으며,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일부 보좌진은 현장을 지켜보며 당의 공식 입장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좀 더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토론 말미, 위성곤 의원은 “정쟁을 위한 부처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을 위한 부처가 돼야 한다”며 “이번 정기국회 안에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발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해외는 지금, 기후위기 대응 어떻게 하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 주요국의 기후부처 사례도 소개됐다. 독일은 이미 환경부를 넘어 기후보호부(BMWK)를 통해 산업과 에너지를 통합 관리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총리 직속 에너지전환 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또한, 덴마크는 ‘에너지·기후부(Ministry of Climate, Energy and Utilities)’를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수출을 국가 산업 전략으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도 국제 기후정책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이날 행사 곳곳에서 반복됐다.

“행동은 지금, 부처는 언제?”

‘기후위기는 느린 재난’이라는 말이 있다. 매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천천히 축적시킨다는 의미다.

6월20일 국회 토론회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 논의를 넘어, 우리가 어떤 속도와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의 시작이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곧 정부가 국민의 생존을 어떻게 다루는가의 문제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그 구조적 응답의 첫 걸음이 될 수 있을까. 정치권의 진정성, 시민사회의 압력, 그리고 현장의 실천 의지가 맞물릴 때, 그 가능성은 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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