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이용 활성화 로드맵, 실행력 있는 제도 뒷받침 필요”
“LFP 배터리, 금속가치 낮아 기존 방식으론 재활용 한계”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없이는 국내 수요 확보 어려워”
“전주기 관리 체계 미흡, 폐배터리 회수량 자체가 부족”

재활용 시장이 아직 수익성 위주로만 돌아가는 한계, 폐배터리 회수량 부족, LFP 등 폐배터리 순환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제공=성일하이텍
재활용 시장이 아직 수익성 위주로만 돌아가는 한계, 폐배터리 회수량 부족, LFP 등 폐배터리 순환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제공=성일하이텍

[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6월23일, 서울역 대회의실. 이곳은 폐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가늠하려는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산업계, 학계, 정부, 공공기관 관계자 60여명이 모인 이 자리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 토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원 안보’라는 거대한 시대 담론 속에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통제하고, 어떻게 민간 산업과 균형을 이룰지를 둘러싼 치열한 실험장이었다.

“재활용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이날 행사는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공동 주최한 ‘배터리 순환이용 전문가 포럼’. 주제는 분명 ‘배터리 재활용’이지만, 핵심 질문은 보다 구조적이었다. “지금의 제도로 이 전환이 가능한가?”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이차전지순환이용지원단은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배터리 순환이용 활성화 방안’의 후속 로드맵을 상세히 공개했다. 발표는 철저히 현실 기반이었다. 재활용 시장이 아직 수익성 위주로만 돌아가는 한계, 폐배터리 회수량 부족, LFP 등 저가 배터리의 처리비용 문제··· 이어지는 문제 제기는 “이제는 실행”이라는 간명한 결론으로 정리됐다.

“우리는 순환경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진짜 경제성’에는 손대지 못하고 있다. 폐배터리는 기술보다 제도의 문제다.” 이 말은 단지 한 발표자의 견해가 아니라, 이날 포럼 전체를 관통한 함축된 명제였다.

LFP 배터리는 진짜 ‘재활용 불가’인가?

두 번째 발표에선 날카로운 기술적 질문이 제기됐다. 국립환경과학원 엄남일 연구관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리튬 함량이 2~3%로 낮아 기존 재활용 방식으로는 채산성이 없다”며 기존 '블랙매스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 진단이 던진 메시지는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기술보다 제도의 한계가 먼저 온다”

엄 연구관은 “양극재를 직접 분리해 재제조하는 방식이 차라리 낫다”며,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재활용의 철학 전환’을 제안했다. 이 말은, 지금껏 우리가 '재활용 기술'이라 불렀던 것이 실은 산업 구조와 결합하지 못한 단절된 기술에 불과했다는 자성이기도 하다.

“재생 원료 안 쓰면 해외로 다 빠져나갑니다.” 가장 뜨거웠던 건 단연 패널 토론이었다. 특히 성일하이텍 김형덕 이사의 발언은 현장을 관통하는 긴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안 하면, 지금 모인 전문가들 다 헛고생이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 폐배터리 반출 막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눈치만 봐야하나.” 현장에선 수긍하는 고개와 조심스러운 침묵이 동시에 흘렀다. 정부와 민간의 입장은 다르지만, 최소한 위기의식은 공유되고 있었다.

품질 인증은 수출용? 아니면 ‘면피용’?

또 다른 쟁점은 재생 원료의 품질 인증 제도다. 한국환경연구원은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등 재생원료의 국제 품질 기준 대응을 위한 생산 인증제 시범 사업을 제안했고, 환경부는 2027년 본격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 몇몇 참석자들 사이에선 “이 인증이 실제 산업계에서 사용할 수준이 되겠느냐”, “수출입 요건 맞추기 위한 면피용 절차 아니냐”는 냉소도 존재했다. “진짜 품질 경쟁 하려면, 국내 소비처부터 재생원료를 쓰게 해야죠. 국내에서 안 쓰면서 수출만 바라보는 건 결국 외화 낭비다.”

회의장 밖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

포럼이 끝난 뒤, 회의장 복도에서 만난 한 중소 재활용업체 대표는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기술은 준비돼 있어요. 다만, 쓸 수 있는 배터리가 없어요. 해외로 다 나가버리거든요. 정부가 3년 전부터 이야기만 하고, 똑같은 이야기 반복해요. 오늘도 똑같았어요.”

그의 말은 비관이라기보단 절박함이었다. 배터리 순환이용은 기술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수요, 그리고 국가의 ‘우선순위’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언이었다.

‘재활용’이 아니라 ‘재편’이 필요한 때

2025년의 배터리 순환이용 논의는, 단지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라는 새로운 시선에서 다시 설계되고 있다. 그리고 이 재편의 중심에는 단순한 기술이나 산업 논리가 아니라, 정책의 결단, 제도의 설계, 그리고 실행의 의지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건 리사이클링이 아니라 리디자인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교수의 말은 이날 포럼 전체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한 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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