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달성률에도 불구, 주류화·지속가능한 이용은 정체
외래종 차단은 성공··· 그러나 산업·도시 전략은 아직 공백
국민과 함께 만든 전략, 그러나 참여의 실질적 권한은 과연
ESG 연계·정보공개·공간계획, 주류화를 위한 3대 조건

[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6월25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의 회의장은 ‘생물’이라는 단어가 단지 숲속 이야기로 머물 수 없다는 자각으로 가득 찼다. 이날 열린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 이행현황 공유회’는 단지 정책 보고에 그치지 않고, 보존 중심의 행정을 넘어서 사회 시스템 전반의 구조 변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뚜렷하게 부각된 자리였다.
이번 공유회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주최로 관계부처 실무자, 전문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전략 이행 1년 차의 성과와 문제점, 정책 방향성을 입체적으로 진단했다.
첫해 성과 85%, 수치 너머의 해석이 필요한 이유
국립생물자원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5차 전략에 포함된 294개 사업 중 252개가 정상 이행되며 전체 목표의 85% 달성률을 기록했다. 형식적으로는 준수한 성과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협 저감’ 분야에 치우친 성과라는 한계도 분명했다.
예컨대, 외래생물 유입 차단, 훼손된 생태계 복원, 생태통로 설치 사업 등은 계획대로 추진됐지만, 정작 생물다양성을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거나 주류화하는 과제는 대부분 미흡하거나 정체 상태였다.
한 참석 전문가는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이제 특정 부처의 고립된 책무가 아니라, 도시계획·농업·교육·복지 등 모든 정책에 생물다양성의 원칙을 녹여야 하는 ‘정책 구조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1. 정책의 주류화(Mainstreaming)
공유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주류화’였다. 이는 생물다양성을 생태 전문가나 환경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정책·산업 결정에 고려해야 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도시 재개발, 도로 설계, 식량안보, 관광 정책 수립 시 생물다양성 영향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의 공공계획에서 생물다양성은 ‘사후 영향 검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 지속가능한 이용
공유회에서는 “보존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하게 쓰는 법을 배우는 게 더 급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야생식물의 전통 지식 활용, 생물자원 기반 산업 육성, 자연친화적 농업·산업 시스템 구축 등이 중요한데, 관련 실적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3. 지역 주민 참여와 이익공유 구조
일방적 보존이 지역 갈등을 부르지 않으려면, 주민이 생물다양성 보호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한 정보공개 강화, 참여형 공간계획, 커뮤니티 기반 생태산업 육성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유호 관장 “국민이 전략의 공동 설계자여야 한다”
공유회에서 유호 국립생물자원관장은 “이번 전략은 국민과 함께 기획했고, 이행도 국민과 함께 점검해 나갈 것”이라며 정책 결정에서의 시민사회 참여 확대를 선언했다. 실제로 전략 이행 평가에는 13개 관계부처와 시민 자문단이 포함된 평가단이 구성돼 있다.
하지만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시민 참여의 실질적 권한이 부여됐는가?”, “평가 결과가 정책 예산에 반영되는 구조가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이 이어지며, 형식적 참여를 넘어선 ‘실질적 공동 설계권’ 확보 필요성이 제기됐다.
생물다양성의 현재는 ‘진행형’··· 정량 지표의 그늘도
이번 공유회가 유의미했던 지점은, 정책이 단순히 얼마나 많이 시행됐느냐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느냐를 되묻는 방식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행정 보고서는 정량 지표(숫자 달성률)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 정책의 실효성, 생물다양성에 대한 체감도는 수치화되지 않은 채 소외되고 있다. 이는 단지 환경 정책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전체 행정의 ‘보고 방식’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
공유회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며 “더 늦기 전에 보존-이용-참여를 모두 연결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이번 공유회에서 제시된 제안들을 바탕으로 하반기 중 전략 보완안을 마련하고, 관련 부처와의 협업 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공유회는 생물다양성을 단지 ‘숲을 보호하는 일’로만 한정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되묻고 설계하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물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가?”
그 질문에 응답하지 않는 한, ‘85%의 이행률’은 종이 위의 숫자일 뿐이다. 진정한 전략은 지표가 아니라 방향이며, 숲이 아니라 시스템을 보는 눈에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