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더는 환경문제 아냐” 전문가들 산업전환 해법 제시
“재생에너지 30% 목표 상향, 사회적 불평등 해소 열쇠”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기후위기가 더 이상 환경만의 문제가 아닌 시대, 대한민국은 ‘전환’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까.
6월25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한국형 기후에너지 산업정책 방향 토론회’는 이 질문에 대한 집단적 사고 실험이었다. 이 자리에는 위성곤 국회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이하 민탄위), 학계, 에너지 전문가, 산업계, 시민사회 등이 머리를 맞댔다. 단순한 정책 발표를 넘어선 이 토론회는, 전환기 국가의 ‘새로운 질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설계하려는 첫 걸음이었다.
“기후정책, 이제는 산업전략이다”
개회사에서 위성곤 의원(민탄위원장)은 “기후위기는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경제·산업의 존속을 결정짓는 생존의 문제”라며 단호하게 운을 뗐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온실가스 감축 수치가 아니라,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한 산업 정책의 구조 개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기후정책이 환경부 중심의 행정 분야에 한정됐다면, 이날 논의는 산업정책, 세제, 기술혁신, 노동전환 등 전 방위적 개입을 전제로 했다. 특히 위 의원은 “거버넌스 개편 없이는 어떤 계획도 공허하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의 필요성을 공식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기후위기는 과학적 사실이자 구조적 불평등”이라고 정의하며, 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한 산업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2030년까지 30%) ▷송배전망 개편 ▷기후산업 육성 인프라 구축 ▷민간 투자 촉진을 위한 제도 설계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정책이 기술과 현장을 이해해야 하고, 그 언어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영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부처 간 권한 다툼이 불가피한 만큼, 명확한 정책 주체와 우선순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력시장 개편 문제를 두고, “공공성과 경쟁 체제를 조화시키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없으면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계 “시장과 정책, 둘 다 숨통 트여야”
이날 토론회에 산업계에서도 드문 ‘직접 발언’이 있었다. 유재열 한화솔루션 상무는 “태양광과 ESS(에너지저장장치) 산업이 의지보다 계통망과 규제에 막혀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의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수도권 수요지로 전기를 보내려면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산업 정책이라 부를 수 없다”는 유 상무의 발언은 현장의 절박함을 드러냈다. 그는 “정부의 목표가 현실이 되려면, 산업계와 지방정부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도록 전력계통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또 하나 주목받은 지점은 ‘지방 분산형 정책’이다. 대부분의 기후산업·에너지 인프라는 지방에 위치하지만, 정책 결정권은 중앙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문제로 제기됐다.
김정희 에너지전환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지방정부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주민 반발과 규제에 막혀 표류하고 있다”며, “지역 맞춤형 인센티브, 주민 참여형 발전 모델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 일자리와 주민 소득이 연결되는 분산형 에너지 모델 없이는 정의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전반을 관통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여부였다. 이는 단순한 부처 하나의 설치를 넘어, 정책 권한의 재구조화를 의미한다.
김성환 전 의원은 “현행 체계는 환경부, 산업부, 기재부, 국토부가 따로 움직이고 있다”며 “기후위기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와 실행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는 “중앙정부는 민간의 에너지 전환 투자 리스크를 줄여줄 구조를 설계하고, 책임 있는 부처 하나가 이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에너지부’는 이제 공론장에 오르내리는 제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기후정책 실행력 확보를 위한 전제조건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한국형 기후에너지 산업정책 방향 토론회’는 단순히 “탄소중립 해야 한다”는 선언이 아닌, 어떻게, 누구와, 어떤 제도로 해낼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묻는 자리였다. 정책의 이상과 현장의 간극, 과학과 정치, 산업과 정의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정책이 아니다. 산업정책이고, 노동정책이며, 복지정책이다. 대한민국이 그 사실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실행할지에 따라, 탄소중립 이후의 미래가 결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