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한국까지··· 문화 콘텐츠로 확산되는 친환경 축제, 선택 아닌 의무
[환경일보] 뜨거운 리듬과 수십만 명의 관객. 반짝이는 야외 무대, 뮤직 페스티벌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행사이자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상상 이상의 환경오염이 뒤따른다.
국제 환경 NGO에 따르면, 대규모 음악 축제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단 3일간 약 500톤에 달하며,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 코첼라(Coachella)에서는 하루 평균 12만5000여 명의 이동과 함께 약 1600톤의 폐기물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된다. 이는 단순한 쓰레기 문제가 아닌, 기후위기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이란?
지난날 극심한 가뭄과 속에 열린 워터 페스티벌 등을 계기로 축제가 남기는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Zero Waste Festival)’이다. 말 그대로 ‘쓰레기 제로’를 지향하는 축제로, 탄소배출과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뤄진다.
대표적으로는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 식기와 컵을 사용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현장에서 퇴비화한다. 이외에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교통수단이나 전력 사용에도 제한을 두거나 대체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식도 함께 도입된다.

최근에는 뮤지션이나 기획사 차원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전기를 생산하는 댄스 플로어 설치, 항공 이동 감소 등 12가지 지속 가능성 계획을 통해 이전 투어 대비 탄소 배출량을 59% 줄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제 환경 친화적 축제는 선택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
세계 각국은 일찍이 뮤직 페스티벌의 환경 부담에 주목하고, 다양한 방식의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호주의 메레디스 뮤직 페스티벌(Meredith Music Festival)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개최되고 있는 호주의 가장 오래된 축제이다. 메레디스는 한 달 강우량이 약 8mm 남짓의 지역이다. 이에 따라 축제에서는 퇴비화 화장실과 빗물 샤워 부스를 운영하며, 화장실에서는 약 80%의 물을 절약하고, 샤워 용수로는 약 7만L의 물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영국의 글랜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은 2019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병 판매 및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2023년에는 페스티벌 역사상 처음으로 100%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축제를 운영하며 전 세계에 지속 가능한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축제의 모든 시설은 태양광과 폐식용류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하이브리드 배터리로 운영하는 등 더 이상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표적인 친환경 페스티벌의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이렇게 큰 규모의 페스티벌뿐 아니라, 개인 콘서트에서도 저탄소 공연 문화를 주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국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은 틴들 기후변화 연구소와 협업해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100% 콘서트를 기획했다. 콘서트장에는 친환경 화장실과 비건 케이터링이 마련됐으며, 관객에게는 플라스틱 사용 자제와 도보·자전거 이동을 권장했다. 이외에도 빌리 아일리시, 콜드플레이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저탄소 투어를 이어가며 새로운 관객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뮤직 페스티벌, 어디까지 왔나
국내에서도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점차 축제 문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 ‘제로웨이스트 서울’을 선언하고, 이후 69개 축제에서 총 87만 개의 다회용기를 사용해 일회용 플라스틱 378톤, 온실가스 약 1039톤을 감축했다. 2023년부터는 1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2026년까지 폐플라스틱 1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4년 열렸던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서는 다회용기 배달 시스템을 도입하고 스테인리스 용기에 음식을 제공해 2만4890개 이상의 일회용기를 줄였다. 또한 같은 해 개최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도 15만 명이 찾은 대규모 행사였지만, 27만5000개의 다회용기를 사용해 약 2.8톤의 폐기물을 절감했다.
가장 최근에는 ‘랩비트 2024 (RAPBEAT 2024)’가 주목을 받았다. 이 축제는 리사이클링 원단으로 제작된 재생 현수막, 사탕수수 기반의 친환경 다회용기, 고도 위생 세척 시스템, 통합 폐기물 관리 부스, 친환경 워터바 운영 등 종합적인 제로웨이스트 전략을 적용했다. 그 결과 미화 인력은 20% 감소하고, 회수율은 오히려 높아지는 성과를 보였다.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해
축제는 찰나의 즐거움이지만, 그 뒤에 남는 쓰레기는 오래도록 지구를 괴롭힌다. 더 이상 이 현실을 축제의 그림자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제는 무대를 설계하는 방식부터 음식을 담는 그릇 하나까지 바꿔야 할 때다.
개인에게도 선택의 책임은 있다. 텀블러 하나, 다회용기 반납 한 번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사소한 행동이 쌓여야만 축제의 지속 가능성도 현실이 된다. 관객은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함께 축제를 만들어 가는 공동 책임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과 지자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다회용기 보증금 시스템, 탄소 감축형 무대 설계, 실시간 폐기물 관리 인프라 등은 말이 아닌 수치와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축제를 기획할 때는 ‘제로웨이스트 달성률’과 같은 구체적 목표를 사전에 설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플라스틱을 줄였다는 말 한마디가 아닌 얼마나 줄였고,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공개해 다음 회차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축제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기대 속에 책임도 함께 담겨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축제를 위해 이제는 선택이 아닌 실천이 필요한 때다.
<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이서영 muveszet060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