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절충안으론 플라스틱 위기 못 막아··· 한국 정부 결단 보여야
[환경일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담판을 짓기 위해 각국 정책 관계자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모였다.
5일(현지시간)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속개회의(INC-5.2)’는 기후위기 대응과 자원순환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중대한 갈림길이다.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질적 이행을 위한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시민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막에 앞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시민들이 팔레 데 나시옹 앞에 모여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했다.
시민사회는 이번 협약이 단순한 재활용 권고 수준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전체 생산량 자체를 줄이고, 유해 화학물질을 통제하며, 재사용 체계로의 실질적 이행을 담보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포함돼야 한다. 또,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 변화에 대해 정의로운 전환 원칙을 명시하고, 원주민과 취약계층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도 담겨야 한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생태계적 약속이지, 산업계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느슨한 절충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회의장 안팎에서는 여전히 다국적 석유·화학기업과 일부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협상도 자칫 지난해 부산에서처럼 무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협약 도출에 있어 명확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번에도 이런 우려는 반복되고 있다. 14일 국제회의 종료 시점, 이제는 누가 협상을 막고 있는지, 누가 행동을 주저하고 있는지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탈플라스틱 사회를 향한 정책 비전을 밝힌 지는 오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좌초, 생산 감축보다 재활용에 치우친 정책 방향 등은 말과 행동의 괴리를 보여준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글로벌 환경협약의 수동적 참여자로 남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 문제는 더 이상 환경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우리 몸속 혈액, 폐, 태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으며, 해양 생태계와 먹이사슬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공중보건 위기다.
이번 협상이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날 틀을 만드는 자리가 되기 위해선, 각국 정부가 산업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정치적 결단과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동하겠다는 명확한 의지다. 한국 정부 역시 뒤따라가는 나라가 아닌, 선도적 책임을 지는 국가로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