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 화석연료 보험 182조원··· 석탄 부문 82%↑
보험·금융·농업 전문가 “보험 산업, 기후 대응 주체 돼야” 

13일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13일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세미나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환경일보] 국내 주요 보험사들이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화석연료 산업에 의존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석탄 보험은 1년 새 82% 급증했고,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13% 남짓에 불과하다.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이 석탄 단계적 폐지와 화석연료 배제를 선언하며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이러한 실태와 제도 개선 방안이 국회에서 집중 논의됐다. 

13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기후솔루션,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주최한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폭염·집중호우·태풍 등 재난이 매년 반복되는 상황에서 보험산업이 피해 복구를 넘어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촉진자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국내 10대 손해보험사의 화석연료 보험 규모는 182.7조원으로 재생에너지 보험의 7배에 달한다. 석탄 부문은 불과 1년 만에 82% 이상 증가했으며, 신·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13.6%에 불과했다. 신규 재생에너지 금융 투입액은 2년 새 급감하면서, 국내 보험산업이 에너지 전환 의지를 사실상 거꾸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로 지적됐다. 

반면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은 북극·타르샌드 등 고위험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배제하고, OECD·유럽 기준 2030년, 글로벌 기준 2040년까지 석탄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하는 등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됐다.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보험사 선정 시 기후금융 실적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 재생에너지 발전량 변동을 보완하는 지수형 날씨보험 활성화, 기후대응을 위한 산업 차원의 공동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면책 규정 마련 등이다. 

석탄 보험은 1년 새 82% 급증했고,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13% 남짓에 불과하다.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이 석탄 단계적 폐지와 화석연료 배제를 선언하며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사진=환경일보DB
석탄 보험은 1년 새 82% 급증했고,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은 13% 남짓에 불과하다.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이 석탄 단계적 폐지와 화석연료 배제를 선언하며 전환 속도를 높이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사진=환경일보DB

토론에 앞서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며 “재난 피해와 복구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보험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지원하는 날씨보험, 재난 예방 조치에 따른 보험료 인센티브 등 새로운 상품 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남영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ESG금융실 실장은 “보험감독당국과 보험사는 기후 관련 위험을 관리하고, 신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기술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며 “탈석탄 선언과 이행 로드맵, 재생에너지 투자 실적, 글로벌 기후 이니셔티브 참여 현황 등을 평가지표로 삼아, 기후투자에 적극적인 보험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표에서는 해외 사례도 공유됐다. 호주 아다니(Adani) 석탄광 개발과 미국 북극 석유·가스 개발이 글로벌 보험사의 인수 거부로 지연되거나 좌초된 사례, 그리고 기후위기와 산불로 인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주요 보험사들이 주택보험 인수를 중단해 지역사회 재건 프로젝트가 멈춘 사례 등이 소개됐다. 

이대건 한국은행 기후리스크관리팀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금융안정과 직결되는 과제”라며 “보험사들이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전환 위험까지 아우르는 기후리스크 관리 역량을 높이고, 국제 기준에 맞춘 공시와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보험사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한 축임에도, 여전히 화석연료 중심의 투자·인수 행태를 고수해 소비자 피해를 키운다”며 “한국 보험 산업도 책임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채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선임전문위원은 “기후위기 심화는 보험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민간 보험사의 자발적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식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본부장은 “농업, 축산, 수산업에 걸쳐 기후위기로 재해보험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보험산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감독당국과 업계가 함께 기후리스크 평가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은 재해 복구를 위한 후속적 조치인 만큼 재해 예방과 관련된 선제적 조치와 연계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보험산업이 피해 복구를 넘어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촉진자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이번 세미나는 보험산업이 피해 복구를 넘어 기후위기 완화와 적응,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촉진자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제공=기후솔루션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박상혁 의원은 축사에서 “한 손으로는 타격을 가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치료해 주겠다는 (현 보험산업의) 모순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보험업계 스스로 기후위기가 촉발한 경영 위기, 생존 위협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내실 있는 ESG 경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식 의원은 “보험산업은 정부와 기업의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자금 흐름을 통해 산업 전환의 방향을 결정하며, 친환경 사업을 실행으로 이끄는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주체”라며 “재난 예방조치에 따른 보험료 인센티브 설계, 기후위험 정보 공개 강화, 기후금융 실적을 반영하는 평가 기준 등 제도적 기반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시대에 보험산업이 단순한 재난 피해 복구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산업 구조 전환에 기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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