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해역에 번지는 푸른 파도, 그 빛의 정체와 생태적 뜻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환경일보] 강준혁 학생 기자 = 한여름 밤바다를 푸른 불빛으로 물들이는 ‘야광 파도’가 전국 해변의 화제가 됐다. 파도가 부서질 때 번쩍이는 파란 빛의 주인공은 발광 플랑크톤 야광충(노티룩카 스틴틸란스, Noctiluca scintillans). 보기엔 환상적이지만, 그 출현 패턴과 생태적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연안 장기 관측과 학술 연구를 종합해, ‘아름다운 빛’ 뒤에 숨은 과학과 현실을 짚었다.

미국 킹스턴 해변 /사진제공=국립해양박물관
미국 킹스턴 해변 /사진제공=국립해양박물관

 

왜 푸른빛이 번쩍일까

 

야광충의 빛은 ‘화학발광(바이오루미네선스)’이다. 야광충 세포 안에는 ‘스킨틸리온(scintillon)’이라는 소기관이 있고, 물리적 자극(파도, 물살, 손 휘젓기 등)을 받으면 루시페린과 루시페라아제가 반응하며 짧고 강한 청록색 섬광을 낸다. 최근 정리 논문들은 이 과정이 막전위 변화 → 산성 소기관의 양성자 이동 → 효소반응 점화라는 연쇄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즉, 우리가 물을 휘저을수록 더 밝게 번쩍이는 이유다.

한국 바다에서 ‘언제·어디’ 잘 보이나

장목만 등 우리 연안의 20년 장기 연구와 항만·만(灣) 단위 조사에 따르면, 야광충은 수온이 비교적 높은 시기에, 파도가 잔잔하고 담수·영양염 유입이 있는 반폐쇄적 해역에서 대량 출현(블룸)하기 쉽다. 계절·해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10~26℃ 범위에서 많이 관찰되고, 저염(강우 뒤 염분 저하)이나 27℃ 이상의 고수온에서는 급감·사멸하는 경향이 보고됐다. 실제로 포항 영일만, 광양만, 인천 연안, 독도·울릉도 주변 등에서 반복 관측·보고가 누적돼 왔다.

사례 1: 2014년 포항 영일만에서 ‘무해성’ 야광충 적조가 띠 모양으로 발생(200~500개체/mL). 양식장 피해는 없었고, 비·파랑으로 수일 내 소멸했다. 낮에는 바다가 붉게 보이지만, 밤에는 푸른 섬광으로 보이는 전형적 사례다.

사례 2: 독도·울릉도 해역에선 수주간 지속된 대발생이 기록되었고, 식포(먹이 주머니) 분석 결과 규조류 외에도 분변립·원생생물·꽃가루·요각류 알·어란 등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는 잡식 성향이 확인됐다.

‘무해성’이지만 무해하진 않다? — 생태계에 미치는 양면성

야광충은 대체로 독소를 생성하지 않는 ‘무해성 적조’로 분류되지만, 개체수가 급증하면 용존산소 고갈 등으로 어류 질식사를 유발하거나 먹이망을 흔들 수 있다. 반대로, 일부 상황에선 다른 유해 적조생물(독성 와편모조류 등)을 포식해 독성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먹이경쟁·영양염 재순환·포식이 뒤얽힌 ‘양날의 검’이다.

밤바다 파란 불빛은 야광충? …그렇다면 왜 요즘 더 자주 볼까

과학기자·연구진 분석을 종합하면, 해수면 온난화로 여름철 고수온 기간이 길어지고, 연안 부영양화(영양염 증가)와 잔잔한 내해 조건이 겹치면서 블룸 빈도·범위·지속기간이 늘어나는 경향이 관측된다. 한국 장목만 20년 데이터에선 수온·염분·엽록소 a, 강수·풍 패턴 등과의 정량적 상관이 분석됐고, 중국 연안 장기 자료에선 피크 시기 조기화·지속기간 연장이 보고됐다. 한국 서해 표층 수온 상승폭이 글로벌 평균보다 가팔랐다는 보도도 있다. ‘아름다운 야광’이 기후 리스크의 지표가 되는 이유다.

현장에서 들여다본 ‘한국형 야광 파도’의 지금

야광 파도는 어느 해변에서도 ‘조건’이 맞아야만 볼 수 있다. 잔잔한 밤바다, 비교적 따뜻한 수온, 약간의 영양염·담수 유입, 그리고 사람·파도에 의한 미세한 물리 자극이 겹쳐야 빛난다. SNS의 ‘인생샷’ 열기가 커질수록, 우리는 더 자주 바다로 달려간다. 그러나 같은 장면은 연안 수질·기후의 ‘이상 신호’일 수도 있다. “예, 그 파란 불빛은 야광충입니다.” 동시에, 바다가 보내는 경고등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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