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국 한 그릇, 우리 세대가 지켜내야 할 자연과 문화의 약속
환경부와 에코나우는 생물자원 보전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실시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및 생물자원 보전’에 대한 대국민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된 ‘생물다양성 녹색기자단’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매월 선정된 기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녹색기자단 = 학생기자 전윤빈] 추석 음식 하면 송편과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토란국이다.
예전에는 시장에만 나가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토란을 찾기가 한결 어렵다. 토란을 키우는 농가가 줄고, 재배 환경도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밥상에서 익숙하던 음식이 점차 귀해지는 현실은 단순한 식재료의 문제가 아니다.

토란국의 전통과 유래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가 ‘토란국’이다. 쇠고기와 다시마로 우려낸 맑은 장국에, 미리 삶아 둔 토란을 넣어 한소끔 끓여내는 국이다. 땅속에서 알처럼 맺힌 토란은 조선시대 요리 관련 저서에도 실릴 만큼 유래 깊은 명절 절식(節食, 명절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다. 서울·경기에서는 맑은 장국으로, 전라도에서는 들깨를 갈아 넣은 걸쭉한 탕으로, 경남에서는 조개나 새우를 더해 끓이는 등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해졌다.
주재료인 토란은 껍질을 벗기면 동글고 하얀 알맹이가 드러난다.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고기와 잘 어울려 국거리로 널리 쓰였고, 이름 그대로 ‘땅의 알(土卵)’이라 불리며 풍요와 다산을 상징해왔다.
토란의 특성과 조리 지혜
토란은 껍질을 벗길 때 손에 끈적임을 남기고, 특유의 아린맛을 지닌다. 이러한 성질은 식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점질물인 갈락탄은 뿌리가 쉽게 마르지 않도록 수분을 붙잡아 주며, 호모겐티신산은 동물이나 곤충이 뿌리를 먹지 못하게 하는 방어 물질로 작용한다. 또한 토란에는 미세한 바늘 모양의 수산칼슘 결정이 있어 손질 과정에서 손이 가렵거나 따가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이를 극복해 왔다. 전통적으로는 쌀뜨물에 데쳐 아린맛을 줄였고, 삶거나 데치면 안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추석 절식의 중심 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토란이 알을 무리지어 맺는 특성은 가족과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로 확장되었고, “토란이 잘 열리면 집안이 화목하다”는 속담으로도 전해졌다.

사라지는 습지, 무너지는 기반
토란은 논두렁이나 하천 인접 습지, 즉 수분이 풍부하고 배수가 잘되며 반그늘인 토양에서 가장 잘 자란다. 이러한 환경이 토란 뿌리가 알처럼 단단하게 자라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토교통부 주관의 하천 정비사업, 도시 개발, 도로 및 택지 조성 확대로 이 같은 환경이 빠르게 줄고 있다. 특히 홍수 예방과 개발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진행된 하천 직강화 공사, 제방 축조, 습지 매립은 물길을 단순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토란이 뿌리내리던 습지가 차례로 사라졌다.
실제로 국립생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내륙습지 2,704곳 중 176곳(약 6.5%)이 사라졌으며, 연안습지는 5년 동안 약 5.2㎢가 매립되어 여의도 면적(약 2.9㎢)의 1.8배에 해당하는 규모가 소멸했다. 이는 단순히 특정 식생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토란과 같은 전통 작물의 생육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토란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줄어들면서 국내 재배 면적 역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집중호우는 재배 환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또 농업의 기계화 과정에서 토란은 경제성이 낮은 작물로 취급되어 재배 면적이 축소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의 추석 차례상에서 ‘토란국’을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토란국, 생물다양성의 약속
토란이 다시 밥상에 안정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통 재배법을 보존하고 습지를 지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개발을 위한 하천 매립이 아니라, 생태와 농업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별로 남아 있는 토란 재배지를 문화 자원으로 연결해 축제나 로컬푸드 소비 촉진으로 이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토란 품종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재배 기술을 연구한다면, 명절 음식의 뿌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추석 차례상에 국산 토란을 올릴 수 있게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보전해야 할 생활 속 생물다양성의 의미를 보여준다. 곧, 토란국 한 그릇은 우리 세대가 지켜내야 할 자연과 문화의 약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