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기반 전환 열쇠는 ‘독립 규제’와 ‘가격 기능 정상화’
입찰제·보조서비스 시장화론, 설비·민원 제약 고려한 점진론 맞서

[환경일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예상하면서도 현행 전력도매시장 구조로는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발전사 가격입찰제 도입, 보조서비스의 시장가격화, 독립‧전문 규제기관 권한 강화, 소매요금체계 연계 등 전면 개편을 주문했으며, 에너지경제연구원 역시 공급 변동성 확대에 대응한 계통 신뢰도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해 왔다.
이처럼 전력시장 개혁 요구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회 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과 기후솔루션은 9일 국회의원회관 제10간담회의실에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시스템 전환: 전력 거버넌스 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국회 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 소속 김정호·박정현·박지혜 의원의 축사로 시작됐다. 김정호 의원은 영국 에너지 독립규제기관 ‘오프젬’(Ofgem) 사례를 들어 전문성과 중립성에 기반한 독립 규제체계가 시장 신뢰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박정현 의원은 급변하는 전력산업 환경 속에서 여전히 미비한 감독체계를 지적하며 전력 거버넌스 개편 논의의 시급성을 언급했다. 박지혜 의원은 올해 상반기 72.3GWh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계통 불안정으로 폐기된 사실을 경고하며, 거버넌스 개혁 없이는 대규모 정전과 같은 해외 사례가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오프젬 시난 쿄페올루(Sinan Küfeoğlu) 선임정책담당관은 발제에서 전력산업 자유화 이후 영국이 송전·배전망 운영의 독립성 확보, 비용 산정의 투명화, 소비자 보호 제도 정착을 통해 전력망 투자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동시에 달성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독립 규제기관이 어떻게 시장 경쟁과 공공성, 계통 안정성을 조화시켰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한국에 주는 교훈을 강조했다.
한국 전력산업의 구조적 한계를 진단한 기후솔루션 김건영 변호사는 유일한 망사업자인 한전의 206조원에 달하는 부채 및 화력발전 기반 자회사와의 재무적 연결성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계통 투자와 유연성 자원 확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탄소중립 시대에 부합하는 전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전력시장·계통운영자의 공정성과 규제기관의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패널 토론에는 한국전력거래소, 한국전력공사, 에너지경제연구원,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에너지전환포럼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좌장은 하정림 변호사가 맡아 전력시장과 계통 운영의 독립성 강화, 공정 경쟁 환경 조성, 재생에너지 계통 접속 확대 등의 과제가 논의됐다. 패널들은 해외 사례와 한국 현실을 연결하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며, 전력시장 개혁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이번 토론은 시장개혁과 규제 거버넌스의 동행, 정보 투명성 강화, 가격기능 정상화, 유연성 자원 조기 확충이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 안정성을 함께 달성하는 핵심 축이라는 점을 공통 인식으로 확인했으며, 한국 현실에 맞는 점진적·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데에 참석자들이 대체로 뜻을 모았다.
최영진 전력거래소 기획처장은 영국 사례의 실용성을 평가하면서도, 거버넌스와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간의 인과관계를 단정하는 주장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공공요금 통제 등 제도 환경이 달라 해외 모델의 단순 이식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며, 에너지 위기기에는 가계 전기요금이 급등했던 영국의 가격경험까지 함께 논의돼야 현실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정책과 규제의 분리를 통해 정권과 무관하게 소비자 보호를 수행하는 ‘규칙 기반(Rule rather than discretion)’의 독립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고, 인력·재원 부족으로 전략적 검토 여력이 제한된 현실을 짚었다. 정보공개와 관련해서 최 처장은 ‘원칙적 공개·예외적 비공개’를 제도화하되, 공개·비공개 목록을 기관이 자의적으로 정하지 않도록 이해당사자와 함께 규칙화하면 절차적 정당성과 오해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김일경 한국전력공사 지역별 전기요금 TF팀장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더디다는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LCOE와 실제 구입단가의 괴리, 각종 부대비용과 물리적 제약 등 ‘숫자의 통합’이 부족해 논쟁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전원 차별이 아니라 신뢰성·경제성·환경성의 균형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거버넌스 변경만으로는 대규모 설비 전환과 민원·재정 제약을 단기에 해소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영국식 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모두 보며, 망 증설·배전망 투자·민원 처리 등 현실 과제에서 소비자 후생으로의 연결 가능성을 실무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전력운영 체계를 ‘안정적 공급을 위한 과도한 가격규제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현행 도매시장이 실질적 시장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독립 규제의 역할이 퇴색했다고 평가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개혁의 ‘트리거’였음을 짚으며, 가격 기능 정상화와 유연성 자원 보상시장(보조서비스 고도화, 가격입찰 전환)의 조속한 도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한 망의 중립성을 위해 회계 분리에서 법적 분리까지 단계적 개편을 검토하고, 시장감시·분쟁조정·요금규제·계통운영 감독을 수행할 독립·전문 규제기구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금의 비용 반영 없이는 전환정책 추진이 어렵고, 시장 기반이 마련되면 재생에너지가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자문위원은 개인 의지와 무관하게 조직 이해가 작동하는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며, 독립 규제기관 설립, 망 분리, 경쟁도입, 요금 유연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은 인구밀도와 사회적 수용성 제약으로 물리적 인프라 확충이 더디므로, 동적선로정격(DLR)과 정밀 예측 등 소프트웨어 기반의 운영 혁신을 통해 계통 수용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기 자유화 지연으로 혁신 기회를 상실했다는 점을 아쉬워하며, 외부 충격에 앞서 선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박성열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은 정부가 그리드 코드(신뢰도 기준) 개편을 검토 중이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기준 완화·강화 논점을 전문가 논의를 거쳐 정합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일부 구간에서 DLR의 실효가 제한적이어서 도체 증설 등 물리적 개선으로 대응해 온 현실을 설명하면서도, 제도 개선의 여지를 인정했다.
아울러 박 사무관은 거래소·한전의 이원화 구조가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 향후 통합운영(TSO+시장운영) 검토 시 강력한 외부 감독기구 신설로 공정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고, 노조 등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자 측 의견으로는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곽영주 회장이 거래수수료 인상 과정의 논의 부족, 소규모 재생사업자의 의결기구 배제, 출력제어·가격결정의 불투명성 등을 지적하며, 다양한 발전원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조로 투명성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급증과 계통 불안정, 출력제어 증가라는 현실 속에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전력 거버넌스 체계 마련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으며, 논의된 내용은 향후 한국 전력시장 제도 개편과 독립 규제기관 설립 논의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